신불경[神佛經]

2004년~2006년

 

여기에 실린 글은

백화불(白華佛)과 안나불(安那佛)께서

해탈지견(解脫知見)의 완성 과정(完成過程) 및

마라(魔羅 Satan)와의 대전쟁(大戰爭)에서 받은

섭리(攝理)의 말씀으로,

책 두 권 분량이 됩니다.

 

그 가운데서 발췌(拔萃)하여 실었습니다.


            ♡  차   례 ♡

65. 조판 대일(肇判大日)

66. '별을 삼키는 Hell'

67. 관세음불(觀世音佛)

68. 참스승과 거짓 스승

69. 백안불(白晏佛)의 미션과 소명

70. 모세(Moses)의 위대성

71. 공양(供養)에 대하여

72. 종교적 편견(偏見)과 예수님

73. 회개(悔改)의 눈물

74. 내 얼을 새로이 부어주리니

75. 사랑과 지혜의 빛으로

76. 나의 분신(分身)이여!

77. '은총(恩寵)'에 '은총(恩寵)'을

78. 주(主)님의 말씀


마라와의 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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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조판 대일(肇判大日)

 

[섭리]

이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마지막 메시지(Message)일 수 있다.

 

너희들은 이미

역대(歷代) 부처(佛)들이 해탈(解脫) 후(後) 겪게 되는

해탈 지견(解脫知見)의 기간(期間)을 훨씬 넘겼다.

 

[석가부처님은 해탈 지견(解脫知見)의 기간(期間)이 7년이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너희들이 서로를 이해(理解)하고 파악(把握)하고

조율(調律)하는 기간(期間)을

다른 역대(歷代) 부처(佛)들보다 더 주었노라.

 

불과(不過) 얼마 전(前)

나는 너희들에게

강력(强力)한 경고(警告)의 메시지(Message)를

보냈다.

 

미륵불(彌勒佛)이라고 세워진

두 개의 흉측(凶測)한  돌덩어리들을

보았느냐 ?

 

[2003년 12월 30일 영양(英陽)  칠성리(七星里)

'쌍둥이 미륵불(石佛)'을 보고 왔다]

 

너희들이 알지 못할까

'조판대일(組版大日, 肇判大日)'이라는

메시지(Message)까지 보냈노라.

 

그것은 내 강력(强力)한

경고(警告)의 메시지(Message)였다.

 

아름다운 부처상(佛像)으로 나타나야 할

그 상징물(象徵物)들이

흉측(凶測)한 돌덩어리로 굳어져

온갖 잡(雜)스러운 사악(邪惡)한 마귀(魔鬼 ; 巫魔)들의

우상(偶像)이 되었구나.

 

너희들이 그렇게 될 경우(境遇)

나는 조판 대일(組版大日)을

고려(考慮)해야만 한다.

 

내가 새로운 판(版)을 짜겠다는

너희들에게 내리는

경고(警告)의 메시지(Message)였다.

 

천수 천안(千手千眼) 부처(佛)의 모습은

모든 부처[諸佛]가 가지고 있는

완성(完成)된 모습이다.

그대들은 천수 천안(千手千眼)을 갖춘 부처(佛)가

되기 위(爲)한

온갖 시련(試鍊)과 연단(鍊鍛)을 거쳐야 했다.

 

안나불(晏那佛)은

내 안에서 내 계획(計劃)대로

천수 천안(千手千眼)을 갖추는 노력(勞力)을 해왔다.

그로인(因)해 그의 영적 능력(靈的能力)은

부처(佛)가 갖추어야 할 초자연적(超自然的)인

기본적(基本的)인 능력(能力)은

해탈(解脫) 전(前)보다 많이 발전(發展)했다.

 

육안(肉眼)과 영안(靈眼)만을 갖추고 있던

해탈(解脫) 전(前)과는 다른

비약적(飛躍的)인 발전(發展)을 꾸준히 해왔다.

부처(佛)가 갖추어야 할

천수 천안(千手千眼)을 갖기 위(爲)해...

 

반면(反面) 백화불(白華佛),

그대는 그러지 못했다.

사탄(Satan)의 그 어둠의 파워(Power)를,

그 존재(存在)를 부인(否認)했고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능력(能力)을

무시(無視)했다.

 

안나불(晏那佛)의 비유(譬喩)는

적절(適切)했다.

'대양(大洋)과 대양(大洋)에서

떨어져 나온

한방울의 물방울'

 

대양(大洋)은 그 가없는

생명(生命)의 근원적(根源的)인 창조력(創造力)으로

숱한 뭇중생(衆生)을 품고 키우고 태어나게 한다.

그 대양(大洋)에서 떨어져 나온 한방울의 물은

그 본질(本質)은 대양(大洋)과 같지만

작은 물고기 하나도

한 잎의 해초(海草)조차도 기를 수 없다.

대양(大洋)에서 떨어져 나온 그 순간(瞬間)

그 한방울의 바닷물은

즉시(卽時) 증발(蒸發)하여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로 파견(派遣)된

예수(Jesus Christ)는

내가 선택(選擇)한 자(者)이고

나로부터 창조(創造)된 존재(存在)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중재자(仲裁者)로서

위대(偉大)하게 쓰인

'나의 아들(the Only Begotten Son)'이라 불리는

진보(進步 Advanced)된 존재(存在)이다.

 

그는 나의 뜻에 순종(順從)하여

인간(人間)의 색신(色身)으로는 겪지 못할

엄청난 희생(犧牲 Sacrifice)이 되었고

하늘과 땅을 잇는

중재자(仲裁者)로서의 소명(召命)을 완수(完遂)하였다.

 

그가 십자가(十字架)에서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을 기억(記憶)하는가 ?

 

"다 이루었다 !"

 

그렇다, 그는 나로부터 파견(派遣)되었고

그의 미션(Mission)을 완성(完成)하였다,

아주 훌륭히...

 

그로인(因)해 그의 이름이

사탄(Satan)과 그의 졸(卒)개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무력화(無力化)시키는

위대(偉大)한 이름이 되었노라.

 

그가 모든 이름 위에

악(惡)을 굴복(屈服)시키는

악(惡)을 제압(制壓)하는

가장 위대(偉大)한 이름으로 떠오른 것은

우연(偶然)한 것이 아니다.

 

그도 마지막 순간(瞬間)까지

나에게 순종(順從)했으며

엄청난 시련(試鍊)과 고통(苦痛)에도

굴(屈)하지 않고

나로부터 받은 미션(Mission)을 완성(完成)했노라.

 

이 세상(世上)에서

예수(Jesus Christ)의 이름을 더럽히고 모독(冒瀆)하고

그의 위대(偉大)한 공덕(功德)을  폄하(貶下)하는 것은

오직 하나  사탄(Satan) 뿐이다.

 

사탄(Satan)과 그에 속(屬)해 있는 권속(眷屬)들만이

그런 신성 모독(神聖冒瀆)을 감행(敢行)한다.

 

그래서 너 스스로가

사탄(Satan)의 어둠을 불러들였고

그것은 무지(無知 Ignorance)가 되어

그 '원공 무비(元空無比)'의 지혜(智慧)를

덮쳐 버렸다.

 

['원공 무비(元空無比)'는  전생(前生)에

수기(授記)를 받을 때 백화불(白華佛)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원공(元空)' 즉 본체지(本體智)의 파악(把握)과 해설(解說)에는

견줄 이가 없다는 뜻이다.

'자수 혜미(紫秀慧美)'는 안나불(晏那佛)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자(紫)'와 '자(慈 : 慈愛, 사랑)'는 동음(同音)이므로

'자수 혜미(慈秀慧美)'이기도 하다.

즉 사랑이 풍부(豊富)하고 지혜(智慧) 곧 작용지(作用智)가

탁월(卓越)하고 아름답다는 뜻이다]

 

네가 여기서 타락(墮落)한다면

너는 사탄(Satan), 마라(魔羅)의 꼭두각시가 되어

그런 흉측(凶測)한, 모든 악인(惡人)을 불러모으는

우상(偶像)이 되어 버릴 것이다.

 

안나불(晏那佛)은

내 계획(計劃)대로

내가 안배(按配)한 코스(Course)대로

가고 있었지만,

 

내 본래(本來)의 계획(計劃)은

그대들에게 반반(半半)의 미션(Mission)을

부여(賦與)했고

그대들 둘이

해탈 지견(解脫知見)을 완성(完成)할 때만이

천수천안(千手千眼) 부처(佛)가 되어

내 구원(救援)의 계획(計劃)을 이루도록

창조(創造)되어 있었다.

 

조판 대일(組版大日),

나는 새로운 창조 계획(創造計劃)을

세워야 한다.

 

질투(嫉妬) 또한

하느님을 대적(對敵)하는 사탄(Satan),

그 사탄(Satan)의 속성(屬性)인, 그 본질(本質)인

그 교만(驕慢)으로부터 나온다.

 

이제 때가 다 되었구나.

마지막 선택(選擇)의 기로(岐路)에

너희들을 두겠다.

 

예수(Jesus Christ)를 본받으라.

내가 그에게 부여(賦與)한 사명(使命)을

그가 어떻게 이루었는지.

 

백화불(白華佛),

네가

그 본질(本質)이 같다고 하여

대양(大洋)과 분리(分離)되어,

모든 것을 품고 기르는 대양(大洋)의 창조력(創造力)을

그 위대성(偉大性)을,

할 수 있느냐 ?

 

그 바닷물 한방울이

대양(大洋)과 분리(分離)되지 않을 때만이

그 가없는 바다의 위대(偉大)함을,

그 위대(偉大)함과 하나되어

바다의 창조(創造)를 이룰 수 있나니.

 

시간(時間)이 다 되었다.

이미 너희들에게 부여(賦與)된 시간(時間)보다

더 많은 시간(時間)을  충분(充分)히 주었다.

 

이것이 너희들에게 주는

내 마지막 메시지(Message)가 되지 않도록

최선(最善)을 다하라.

 

지혜(智慧)의 시작(始作)은 어디로부터이며

지혜(智慧)의 근원(根源)은 어디에 있는가 ?

 

오만(傲慢)에는 약(藥)이 없나니,

그 악(惡)의 뿌리가 지옥(地獄)의 깊은 심연(深淵)과

연결(連結)되어 있으니

그 끝을 알 수 없어라.

 

대양(大洋)에서 떨어져 나온

단(但) 한방울의 물은 아무것도 아니다.

 

대양(大洋)에서 분리(分離)되 나오지 않은,

대양(大洋)과 하나된 바닷물 한방울이야말로

대양(大洋)의 위대성(偉大性)을 그대로 간직하고

표현(表現)하나니,

대양(大洋)의 창조력(創造力)을

모든 중생(衆生)을 기르는  그 위대(偉大)한 모성(母性)을

실현(實現)할 수 있으리...

 

['조판대일(肇判大日)'에서 '조판(肇判)'은

'비롯할 조(肇), 바로잡을 조(肇)'와 '나눌 판(判), 쪼갤 판(判)'으로

우주 만물(宇宙萬物)을 처음으로 음(陰) 양(陽)으로 나누어 새롭게

창조(創造)하는 것을 뜻하고,

'조판대일(組版大日)'에서 '조판(組版)'은 판(版)을  짠다는

뜻으로 미륵불(彌勒佛)로서 자격(資格)을 상실(喪失)하게 되면

새로운 판(版)을 짜겠다는 섭리(攝理)의 경고(警告)  말씀이다]


     태백산 반야 백화도량 2004. 1. 11. A.M.1:00

 

 

 

             66. '별을  삼키는  Hell'

 

[이 제목(題目)은 섭리(攝理)께서 주셨다]

 

[섭리]

태초(太初) 이래(以來) 인간(人間)은

반복(反復)되는 윤회(輪廻)의 삶 속에서도

쉽게 깨닫거나 진보(進步)하지 못하는 아둔함과

고집(固執)을 가졌으매,

그들를 응징(膺懲)하기도 하고

축복(祝福)을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그들의 무지(無知)는

악(惡)을 불러들였고

그 악(惡)은 가장 큰 교만(驕慢)을 불러들였다.

 

그로부터 흑암(黑暗)의 권세(權勢)가 그들를 덮쳤고

그들을 예속화(隸屬化)시켰다.

 

그 어둠을 물리칠 빛은,

그 무지(無知)의 원죄(原罪 Original Sin)를 깨뜨릴,

그 흑암(黑暗)의 권세(權勢)를 깨뜨릴

유일(唯一)한 빛,

바로 지혜(智慧)의 빛은

오직 하느님을 경외(敬畏)하는 자(者)로부터 나오나니.

 

무지(無知)의 악(惡)이

교만(驕慢)을 부추겼고

그 교만(驕慢)은 지혜(智慧)를 차단(遮斷했다.

 

그로부터 그들은

교만(驕慢)과 무지(無知)의 흑암(黑暗) 속을

반복적(反復的)으로 거의 영속적(永續的)으로

헤매게 되었다.

 

나의 연민(憐憫)이 수천 년(數千年)에 이르러

그들을

그 흑암(黑暗)의 무지(無知)로부터 구(救)해줄

메시아(Messiah)를 파견(派遣)하게 된 것이다.

 

악(惡)으로 물든 세상(世上)에서 깨어있는

소수(少數)의 자(者)들,

하느님께 대(對)한 경외(敬畏)로 자신(自身)을 지키는

자(者)들을 위(爲)해

오랫동안 깨어 기다리며 준비(準備)한 자(者)들을 위(爲)해

세상(世上)  이 끝에서 저 끝으로부터

내가 파견(派遣)한 그 구원자(救援者 Messiah)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爲)해

그들을 모으기 위(爲)해,

그리고 나의 구원(救援)이

나의 자비(慈悲)가 드러났음을

만천하(滿天下)에 알리기 위(爲)한 징표(徵表)로

'구원(救援)의 별(the Star of Salvation)'을

하늘에 뚜렷이 건다.

 

그것은 '구원(救援)의 별(the Star of Salvation)',

'예수의 별(the Star of Jesus Christ)',

'메시아의 별(the Star of Messiah)',

'길성(吉星 the Auspicious Star)'이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졌다.

 

[<격암유록(格菴遺錄)>에는 '길성 조림처(吉星照臨處)'

또는 '천신가호 길성조(天神加護吉星照)'로 나온다]

 

마음이 깨끗한 자(者)들은 하느님을 배우리니,

깨어있고 기다리던 준비(準備)된 영혼(靈魂)들이

그 별의 징표(徵表)를 보고

구원(救援)의 메시지(Message)를,

그 징표(徵表)를

알아봤나니...

 

별은 준비(準備)된 자(者)들,

겸허(謙虛)하게 자신(自身)을 낮추고

하느님께 의지(依支)하고

그 구원(救援)과 자비(慈悲)를 갈구(渴求)하는

준비(準備)된 자(者)들의 것이다.

 

 

너를 포기(抛棄)하려 했으나

나의 'Blessed Child' 그가

별을 삼키려는 그 Hell을 보고도

네 그 Hell 속에서 드디어

별이 떠오른다고 기뻐하며

선의(善意)로 해석(解釋)하는 것을 보고서,

 

본래(本來) 그 싸인(Sign)은

별을 삼키는 너의 그  Hell을,

너의 지금(只今)의 상태(狀態)를

극명(克明)하게 보여주려던 것이었는데,

그래서 이제 너를 포기(抛棄)하려 한 것이었는데,

내 은총(恩寵)의 아이가 반대(反對)로 해석(解釋)했구나.

 

내 은총(恩寵)의 아이의 반응(反應)을 보고

난 내 공의(公義)를 얼마간

아주 짧은 동안이라도 유보(留保)하기로 했다.

 

내가 선택(選擇)한 그 은총(恩寵)의 아이의 선의(善意)가

너를 지옥(地獄 Hell)으로부터 막아 주었고,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機會)를

얼마간의 짧은 말미(末尾)를 너에게 유여(有餘)한다.

 

대양(大洋)과

대양(大洋)의 물방울의 비유(譬喩)를

잊지 말라.
 

        태백산 반야 백화도량 2004. 1. 23. 金  P.M.8:00

 

 

 

               67. 관세음불(觀世音佛)

 

[단양(丹陽) 구인사(救仁寺)의

관음전(觀音殿)에서 받은 메시지(Message)이다]

 

질문 :

말씀하소서.

[관세음불(觀世音佛)에게 안나불(晏那佛)이 질문(質問)하다]

 

[섭리]

나의 본질(本質)

나의 법신(法身)

나의 하느님(天主)

 

그가 말하고

그가 울고

그가 웃는다.

 

그가 나이고

내가 그이니

나는 바로 너이고

너는 바로 나이다.

 

말해야 할 때

할 것이고

행(行)해야 할 때

행(行)할 것이다.

 

이미지 화(Image 化)된

너의 본(本) 모습을 보라.

 

[안나불(晏那佛)은

관세음불(觀世音佛)의 표상(表象)임]

 

너의 영안(靈眼)과

강렬(强烈)하게 연결(連結)된

나의 법신(法身 Dharma-kaya, 眞理의 몸)을 보라.

 

[관세음불(觀世音佛)의 법신(法身)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이기도 하고,

성관음불(聖觀音佛 Arya-avalokitesvara)이기도 하다]

 

나는 그이고

너이기도 하다.
 

     단양 구인사 관음전(觀音殿)에서 2004. 4. 6. (P.M.4:05)

 

 

 

           68. 참스승과  거짓 스승

                 (스승의 날 메시지)

 

질문 :

참스승과 거짓 스승에 대(對)하여 말씀해 주십시요.

[스승의 날(04. 5. 15.) 메시지(Message)]

 

[섭리]

참스승의 모습을 그려보라.

그대들이 그리는 스승은 어떤 모습인가 ?

인류(人類)에게 파견(派遣)되어진

위대(偉大)한 참스승들의 모습에서

겸손(謙遜)되이 배우라.

 

예수(Jesus Christ)의 모습을 보라.

그가 제자(弟子)들에게

어떻게 대(對)하며 가르침을 주었는지.

그가 제자(弟子)들에게

섬김만 받는 스승의 모습이었는가 ?

 

그는 자신(自身)을

착한 목자(牧者)라 칭(稱)했다.

그가 돌보는 양(羊)들을 위(爲)해

좋은 목초지(牧草地)와 맑은 물을 찾아주고

병(病)들고 약(弱)한 양(羊)들도 돌봐주었다.

 

그 뿐아니라 양(羊)들을 해(害)치려는

늑대의 무리로부터

양(羊)들을 보호(保護)하기 위(爲)해

목숨을 바치는 숭고(崇高)한

사랑의 책임(責任)을 지는

진실(眞實)로 선(善)한 목자(牧者)였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한 말은 그의 위(位)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위(位)를 완성(完成)시키는

완전(完全)한 사랑의 표현(表現)이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조건(條件) 없는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그 사랑의 표현(表現)이

아이의 종이라 할 수 있겠는가 ?  

그 헌신적(獻身的)인 사랑이.

 

모든 위대(偉大)한 스승들은

사명(使命)을 받고 파견(派遣)되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自身)의 전존재(全存在)를 다해

그에게 맡겨진 제자(弟子)들을 돌본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방편(方便)과 지혜(智慧)로서

그 큰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위대(偉大)한 능력(能力)을 통(通)해서.

 

예수(Jesus Christ)를 보라.

그가 어떻게 그 제자(弟子)들을 대(對)했는지.

그들과 함께 하며

자신(自身)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준

예수(Jesus)의 위대(偉大)한 사랑을 보라.

 

석가불(釋迦佛)의 모습은

공양(供養)만 받는 그런 스승의 모습이라

생각하느냐 ?

그는 어리석은 제자(弟子)들을 위(爲)해서도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벌거숭이 몸을 가리도록 옷을 지어주고

먹는 것조차 돌봐주었다.

율장(律藏)에 그 기록(記錄)들이 남아 있다.

 

['율장(律藏)'은 경장(經藏), 논장(論藏)과 더불어

불교(佛敎)의 삼장(三藏)에 속(屬)한다.

'율장(律藏)'은 부처님이 제정(制定)하신 규정(規定)으로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할 계율(戒律)을 기록(記錄)한 것이다]

 

그들은 공의(公義)로왔지만

자비(慈悲)가 있었고

권위(權威)가 있었지만

헌신(獻身)이 있었다.

하느님의 속성(屬性)을 지녔기에,

그 완전(完全)한 사랑 때문에.

 

석가불(釋迦佛)이 오직

법문(法門)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오로지

섬김만 받았다고 생각하느냐 ?

그렇다면 어찌 그의 세간혜(世間慧 ; 世間解)가

그리 출중(出衆)할 수 있단 말인가 ?

그가 세간혜(世間慧 ; 世間解)에 뛰어났다는 것은

세상(世上)에서의 그만한 수고로움이 있었다는 말이다.

 

모든 위대(偉大)한 스승은

이렇듯 스스로 모범이 되어주고

하느님의 속성(屬性)인 사랑과 지혜(智慧)를

그대로 반영(反映)한다.

그 수고로움이 크기에

그 스승 또한 위대(偉大)한 것이다.

 

 

반면(反面) 거짓 스승들을 보라.  

그들은 독선(獨善)과 위선(僞善)으로

가득 차 있고

냉혹(冷酷)함과 착취(搾取)로

그들의 제자(弟子)를 파멸(破滅)로 이끈다.

 

그들은 마라(魔羅)로부터

온갖 악(惡)의 교활(狡猾)함과

그 사악(邪惡)한 술수(術數)를 전수(傳授)받는다.

 

그 사이비 교주(似而非敎主)들이

초창기(草創期)에 돌을 나르고 나무를 자르고

온갖 육신(肉身)의 고달픔과

사악(邪惡)한 능력(能力)을 얻기 위(爲)한

초인적(超人的)인 혹독(酷毒)한 수행(修行)들을 한다.

 

그들은 사도(邪道)를 위(爲)해서도

온갖 간난(艱難)과 신고(辛苦),

모든 어려움을 돌파(突破)한다.

그들도 사도(邪道)를 위(爲)해서

자신(自身)을 희생(犧牲)하고

헌신(獻身)할 줄 안다.

 

너는 어떤 스승의 모습이냐 ?
 

   태백산 반야 백화도량 2004. 5. 15. 土

 

 

 

       69. 백안불(白晏佛)의 미션과 소명

 

[섭리]

불신자(不信者)들이 가는 지옥(地獄)이 따로 있나니

무수(無數)히 날리는 눈발처럼 떨어져 내리는

불신자(不信者)들을 위(爲)한 그 지옥(地獄)이...

 

온갖 고철(古鐵) 덩어리로 이루어진

마라(魔羅 Satan)가 만든 지옥(地獄)이 있나니,

그곳에 머무는 중생(衆生)들은 대부분(大部分)이

과학자(科學者)라고 불리는 불신자(不信者)들로

구성(構成)되어 있다.

 

그들은 과학(科學)이라는 가면(假面) 뒤에 숨은

마라(魔羅 Satan)의 휘하(麾下)에서

자신(自身)이 천재(天才)라고 믿는 대착각(大錯覺)에

엄청난 교만(驕慢) 속에서

끊임없이 쓸데없는 고철(古鐵) 덩어리들을

만들어낸다.

 

그 고철(古鐵) 덩어리로 우주(宇宙)를 날아 다니며

또 다른 점령(占領)과 전쟁(戰爭)을 꿈꾸며

유치(幼稚)하고 치졸(稚拙)한 살상 무기(殺傷武器)들을

쉴새없이 만들어내고 파괴(破壞)를 일삼는다.

그들이 만든 고철(古鐵) 덩어리를 타고

태양계(太陽界)조차 벗어나기 힘들다.

 

예수(Jesus Christ)가

그런 고철(古鐵) 덩어리를 타고 이 지구(地球)에 왔느냐 ?

그의 위대(偉大)한 변모(變貌)를 보라.

이 삼계(三界 :  欲界, 色界, 無色界)에

어디든 편재(遍在)하는

그의 그리스도 의식(意識 Christ Consciousness)을 보라.

 

우주(宇宙)를 넘나드는

그 위대(偉大)한 의식(意識)들을 보라.

그들의 무한(無限)히 확장(擴張)된 의식(意識)들을.

그것이 불식(佛識)이든

그리스도 의식(意識)이든.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는

항상(恒常) 마라(魔羅 Mara)의 타겟(Target)이 되었지만

지금(只今)까지 마라(魔羅 Mara)의 소유(所有)가 된 적은 없었다.

매 순간순간(每瞬間瞬間) 깨어 있었고

겸손(謙遜)되이 진실(眞實)되게

참회(懺悔)해 왔으므로

마라(魔羅 Mara)가 끼어들 여지(餘地)가 없었다.

 

내 원 계획(原計劃)은

너도 내 은총(恩寵)의 아이와 짝을 이루는

부처(佛)의 계보(系譜)를 잇는 백화불(白華佛)이 되어

너 자신(自身)을 완전(完全)히 꽃피워

미륵불(彌勒佛)이 되는 것이며

내 은총(恩寵)의 아이인 안나불(晏那佛)도

관음불(觀音佛)이 되어

내 계획(計劃)을 이루고

예언(豫言)을 성취(成就)시키는 것이다.

 

너의 선택(選擇)은 무엇이냐 ?

 

안나불(晏那佛)의 질문 :

 

백화불(白華佛)을

구(救)할 방법(方法)은 없습니까 ?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더 이상(以上) 할 수 있는 방법(方法)은 없습니까 ?

 

[섭리(攝理)의 응답]

 

네가 더 이상(以上)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最善)을 다 했다.

 

그 자신(自身)만이

이제 자신(自身)을 도울 수 있다.

 

그 유일(唯一)한 방법(方法)은

모든 제불 보살(諸佛菩薩)들과 마찬가지로,

또한 안나불(晏那佛) 내 은총(恩寵)의 아이와 마찬가지로

단(但) 하나,

'참회(懺悔 Repentance)' 뿐이다.

 

그것만이 마라(魔羅)와 단절(斷絶)할 수 있다.

 

사탄(Satan 魔羅)의 나라에서

하느님의 나라[天國]로  천국(遷國)할 수 있는

유일(唯一)한 길이다.

 

['천국(遷國)'은

주역(周易) 제42 (第四十二) 익 괘(益卦)에 나온다.

六四는 중행(中行)하면 고공종(告公從)하리니

이용위의(利用爲依)하며 천국(遷國)하니라

 

六四 효(爻)는 중(中)을 행(行)하면

지공 무사(至公無私)한 이에게 고(告)하여 따르리니

써 의지(依支)를 삼음이 이(利)로우며

나라(天)를 옮기느니라(遷).

 

'천국(遷國)'은 '나라를 옮긴다'는 뜻으로

윤회 세계 (輪廻世界) 또는 지옥(地獄)으로부터

하늘 나라(天國) 곧 해탈(解脫)의 세계(世界)로

옮긴다는 뜻이다]

 

         [2004. 6. 4. P.M.10:44]

 

 

[미션(Mission)과  소명(召命)]

 

[섭리]

예수(Jesus Christ)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律法)을 폐(廢)하러 왔는 줄  아느냐 ?

아니다, 나는 율법(律法)을 완성(完成)시키러 왔노라."

 

예수(Jesus Christ)께서는

구약(舊約)에 예언(豫言)된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爲)해

거룩한 소명(召命)으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과 인간(人間) 사이를 다시 이어주는

거룩한 대속자(代贖者), 중개자(仲介者), 메신저(Messenger),

스승으로 파견(派遣)되어졌다.

 

마치 고귀(高貴)한 원석(原石)을 주었는데

음해(陰害)하고 사악(邪惡)한 인간(人間)들은

온갖 조잡(粗雜)하고 교활(狡猾)한 잡동사니로

그 원석(原石)이 본래(本來) 지니고 있는 빛을

흐리고 더럽혔다.

 

구약(舊約)이 그 원석(原石)이라면

신약(新約)은 예수(Jesus)에 의(依)해

정교(精巧)하고 아름답게 캇팅(Cutting)된

그리하여 그 원석(原石)에 아름다움,

완전(完全)한 빛을 드러내게 한 것이다.

 

원석(原石)의 거칠고 불순물(不純物)들이 섞인 것을

깍아내고 제거(除去)하여

그 본질(本質)의 빛을 가장 아름답게 반영(反映)할 수 있는

뛰어난 세공(細工)을 한 것이다.

 

성서(聖書 Bible)는

구약(舊約)으로 시작(始作)하여

예수(Jesus)에 의(依)한 신약(新約)으로 꽃피웠다.

 

마지막 날,

성서(聖書 Bible)에 예언(豫言)된 그 분이

추수(秋收)하러 오시어

신약(新約)을 완성(完成)하고 열매 맺게 할 것이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보라.

지혜(智慧)의 보고(寶庫) 그 자체(自體)였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위대성(偉大性)을 보라.

 

그 놀라운 지혜(智慧)의 본질(本質)인 그 가르침은

아수라(阿修羅 Asura)와 악근(惡根)들의 악의(惡意)와

교활(狡猾)하고 사악(邪惡)한 술수(術數)로 인(因)해

그 거짓 가르침이

그 아름다운 빛의 보석(寶石)을 더럽히고

온갖 치졸(稚拙)하고 사악(邪惡)한 것들로 뒤덮어

그 본래(本來)의 지혜(智慧)의 빛을 발(發)하는 보석(寶石)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감춰 놓고 왜곡(歪曲)시켰다.

 

그러나 부처(佛 Buddha)의 지혜(智慧)는

금강(金剛)의 지혜(智慧)이므로

누구도 그 어떤 사악(邪惡)함도

그 금강(金剛)에 흠집을 낼 수는 없다.

그 금강(金剛)이 다른 돌들을 다 쪼갤 수 있기에.

 

석가불(釋迦佛)은

엄청난 지혜(智慧)의 보주(寶珠 Mani)를

이미 남겼다.

 

이제 가짜와 진짜 보주(寶珠 Mani)를

구별(區別)할 수 있는

부처(佛 BUddha)의 지혜(智慧)를 가진

부처(佛 Buddha)가 나와야만

진짜와 거짓을 가려내고

그 엄청난 보주(寶珠 Mani)를 하나하나 꿰어

삼계(三界)에 가장 보배로운

영락(瓔珞)으로 완성(完成)시킬 것이다.

 

['영락(瓔珞)'은 몸을 단장(丹粧)하는데 쓰는

구슬 꿰미들을 말한다.

인도인(印度人)들이 주(主)로 장신구(裝身具)로 쓰며,

보살상(菩薩像)의 그림에도 흔히 그려진다]

 

그도 ,

예수(Jesus Christ)가

구약(舊約 the Old Testament)을 완성(完成)시켜

신약(新約 the New Testament)을 이루었듯

그도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설(說)한

그 보배로운 경전(經典 Sutra)을 완성(完成)시킬 것이다.

 

그가 바로 미륵불(彌勒佛)이며

석가불(釋迦佛)이 뿌린 씨앗이

미륵불(彌勒佛)에 이르러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 하느님의

본래(本來) 계획(計劃)이다.

 

['나 하느님'은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이시다.

불교(佛敎)에서 부처(Buddha)는 삼신불(三身佛)을 갖추는데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佛)이다.

법신불(Dharma-kaya)은 창조 이전(創造以前)의 자리로

창조주 하느님(the Creater God)을 지칭(指稱)하는 말이다]

 

내 말씀(My Word)은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나니

이 모든 말씀(Word)을 이룰 것이다.

 

이 계획(計劃) 속에

하나로 짜여진 그대들이

그대들의 미션(Mission)과 소명(召命)을

이루기 바라노라.
 

      태백산 반야 백화도량 2004. 6. 5. 土

 

 

 

           70. 모세(Moses)의  위대성

 

[하느님의 말씀]

 

성서(聖書 Bible)에

가장 크고 핵심적(核心的)이며 우선(優先)하는 법(法)이

무엇인지 아느냐 ?

 

네 전존재(全存在)를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성경(聖經)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主)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誡命)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誡命)이

온 율법(律法)과 선지자(先知者)의 강령(綱領)이니라.

 

Jesus replied: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Matthew 22 : 37~40>

 

바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義)를 구(求)하라'

이보다 더 큰 계명(誡命)은 없나니,

 

[성경(聖經)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求)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Matthew 6 : 33>

 

너는

흙에서 흙으로 돌아갈 존재(存在)이니,

아침에 피었다가 사라지는 풀과도 같도다.

 

사람이 이리도 허무(虛無)한 것일진대

내가 왜 사랑하는지 아느냐 ?

 

존재(存在)의 위대성偉大性) 때문이니

불굴(不屈)의 의지(意志)와

변(變)치 않는 강(强)한 믿음,

섬세(纖細)하고 오묘(奧妙)한

풍부(豊富)한 열정(熱情)과 감성(感性)들,

그런 사랑을 지녔음이니,

내 선택(選擇)한 자(者)

내 사랑을 받는 자(者)로다.

 

모세(Moses)를 보라.

그의 위대성(偉大性)을 보라.

그와 그의 백성(百姓)을 구(求)한 것이 누구더냐 ?

 

그들이

추격(追擊)해 오는 이집트(Egypt)의

살육자(殺戮者)들로부터

홍해(紅海)를 건너기 위(爲)해

설계(設計)를 , 다리 도면(圖面)을 그리고,

나무를 베고 돌을 쌓고 흙을 날랐느냐 ?

 

모세(Moses)의 지휘(指揮) 아래

그들이 홍해(紅海)를 건널 만한 다리를 놓는

대토목 공사(大土木工事)라도 벌렸단 말이냐 ?

 

모세(Moses)가 한 일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쳐들고

자신(自身)의 전존재(全存在)를 다해

겸손(謙遜)되이 간절(懇切)히

하느님의 도우심을,

섭리(攝理)의 처분(處分)을

갈구(渴求)하고 기다린 것 뿐이다.

 

모세(Moses)가 부르심을 받고

그의 미션(Mission)을 수행(遂行)하는 내내

그는 이런 일관(一貫)된 태도(態度)를 잃지 않았다.

 

자신(自身)의 전존재(全存在)를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뢰(信賴)하는 것,

자기 자신(自己自身) 전존재(全存在)와

자기(自己)에게 맡겨진 모든 영혼(靈魂)들을

하느님께로 향(向)하게 하고

하느님의 뜻과 그 의(義)를 좇아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하여 나아간 것이다.

 

그는 "나"를 버리고 하느님을 선택(選擇)했고

하느님의 완전(完全)한 통로(通路)가 되었다.

 

그러자 오지(奧地)에서

이름 없는 목동(牧童)으로 지내던 그에게

놀라운 하느님의 역사(役使)가 시작(始作)된 것이다.

그는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였고

온갖 시련(試鍊)과 어려움을 넘어섰다.

 

그는 진실(眞實)로

겸손(謙遜)하고

겸허(謙虛)한 자(者)였다.

 

그는 '나'를 버림으로 인(因)해

하느님이 거(居)하시게 되었고

그로인(因)해

나약(懦弱)하고 보잘 것 없는 육신(肉身)을 지닌 사람이 아닌,

위대(偉大)한 존재(存在)로 거듭 난 것이다.

그는 나의 성실(誠實)하고 겸허(謙虛)한 종이었으니

그를 벗이라 불러도 되리.

 

그가 젊은 시절(時節)

자신(自身)의 능력(能力)과 힘에 의지(依支)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은

동족(同族)을 학대(虐待)하는 적(敵) 하나를

쳐죽인 것 뿐이다.

 

그 대가(代價)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40년 동안 광야(曠野)에서

양(羊)을 치며 도망자로서의

자포 자기(自抛自棄)한 삶을 살았다.

 

[모세(Moses)는 40세(歲)부터 80세(歲)까지  

광야(曠野)에서 양(羊)을 치며  살았다]

 

그가 자신(自身)에게 의지(依支)할 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果然) 무엇이었으며

얼마나 할 수 있으리 ?

 

양치기로서의 그 긴 좌절(挫折)의 세월(歲月) 동안

그는 자신(自身)의 어리석음과 만용(蠻勇)을

뼛속 깊이 뉘우쳤고 참회(懺悔)했다.

 

그가 완전(完全)히 참회(懺悔)하고

'나'라는 유한(有限)한 인간(人間)을 버렸을 때

내가 그를 찾아 그와 함께 했다.

 

그로인(因)해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의 권능(權能)과 파워(Power)가

그를 통(通)해 온전(穩全)히

발현(發現)된 것이다.

 

그는 죽기까지 최선(最善)을 다해 성실(誠實)히

자신(自身)의 미션(Mission)을 완성(完成)했다.

 

이것이 '모세(Moses)'

그를 지칭(指稱)하는

존재(存在)의 위대성(偉大性)이다.

 

[모세(Moses)는 B.C.1527년에 출생(出生)하여

B.C.1406년에 세상(世上)을 떠났다.

향년(享年) 120세(歲)로

지금부터 3400 여년(餘年) 전(前) 인물(人物)이다.

그는 80세(歲)에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이집트(Egypt)로 가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Israel) 족(族)을 인도(引導)하여

가나안(Canaan) 복지(福地)로 향(向)하였다.

 

그는 또  '모세 5경(五經)'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세 5경(五經)'은

창세기(創世記),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民數記),

신명기(申命記)이다]
 

          태백산 반야 백화도량 2004. 6. 20. 日

 

 

 

           71. 공양(供養)에  대하여

             -신불 포태의 인고(忍苦)-

 

[섭리]

공양(供養)이 무엇이더냐 ?

신불(神佛)에게 공양(供養)한다는 것이 무엇이더냐 ?

 

내 은총(恩寵)의 아이가

공양(供養)하는 태도(態度)를 보라.

그의 전존재(全存在)가 나를 향(向)해 있기에

그는 매 순간 순간(每瞬間瞬間)

나에게 공양(供養)을 올리는도다.

 

현상적(現象的)으로 갓 피어난

흠없는 들꽃 한송이

열매 하나를 보더라도

그는 나에 대(對)한

지극(至極)한 사랑과 감사(感謝)와 흠숭(欽崇)으로

그것을 고 작은 손으로 따서

나의 제단(祭壇)에 정성(精誠)스러이 바친다.

 

그가 풀꽃 한송이를 바치더라도

그의 전존재(全存在)를 다 남김없이

쏟아붓는다.

 

그의 지난 삶을 보라.

그가 열정(熱情)과 애착(愛着)을 가졌던

일이나 명예(名譽), 재산(財産), 그 모든 것을...

그는 나의 목소리가 있을 때마다

이해(理解)하지 못하더라도

괴로워하면서도

단지(但只) 나의 명령(命令)이기 때문에

그대로 따랐다.

 

일생(一生) 동안 이뤄낸 재산(財産)과 명예(名譽),

그가 애착(愛着)을 갖던 일조차도

내 부름에

한 순간(瞬間) 다 버렸다.

 

내가 '떠나라' 할 때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무얼 해야 되는지

아무것도 모른채

오직 나에 대(對)한 믿음과 사랑만으로

무작정(無酌定) 오직 나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며

전(全)혀 예측(豫測)할 수 없는

미지(未知)의 길을 떠났다.

모든 걸 버리고...

내가 원(願)했기 때문에

내가 말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해(理解)하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나는 내 은총(恩寵)의 아이를

시험(試驗)했고 단련(鍛鍊)시켰다.

순수(純粹)한 금(金)으로

완성(完成)시키기 위(爲)해서...

 

하지만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에게서

시련(試鍊)과 시험(試驗)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의 생명(生命)을 건

마지막 시험(試驗)의 무대(舞臺)가 있었다.

 

사탄(Satan)에게

그 시험(試驗)의 무대(舞臺)를 주관(主管)할

권세(權勢)가 넘어갔고,

그 아이는 욥(Job)처럼

끔찍한 시련(試鍊)의 시험대(試驗臺) 위에

결박(結縛)당하게 되었다.

 

그 시험(試驗)은

욥(Job) 보다 훨씬 고통(苦痛)스러웠고

잔혹(殘酷)했다.

 

[안나불(晏那佛)이 98년부터 몇 년 동안 겪은 백천만억(百千萬億)

화신불(化身佛 Nirmana-kaya Buddha) 출태(出胎)를 위(爲)한

인고(忍苦)의 시기(時期)를 지적(指摘)하신 것이다.

즉 신불 포태(神佛胞胎) 기간(期間)을 지칭(指稱)하신 것이다]

 

욥(Job)은

온몸이 물러터지는 피부병(皮膚病)에 시달려

기왓장으로 온몸을 긁어대며

그 지인(知人)들과 논쟁(論爭)이라도 벌였지만,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는

훨씬 고독(孤獨)하며,

참혹(慘酷)한,

철저(徹底)히 유리(遊離)되고 격리(隔離)된

상태(狀態)에서

온갖 몰이해(沒理解)와 의혹(疑惑)과

질타(叱咤)의 시선(視線)과

잔혹(殘酷)한 비난(非難)의 말들이

비수(匕首)처럼 심장(心臟)을 찌르는

극렬(劇烈)한 고통(苦痛)과

수치(羞恥)와 수모(受侮)를

당(當)했으니,

누가 그의 고통(苦痛)을 알 수 있으며

헤아릴 수 있으리 ?

 

온몸에서 피와 물이 강(江)처럼 흘러나와

숨조차 쉴 수 없도록 만들었고

심장(心臟) 박동(拍動)조차 멎었다가

희미(稀微)하게 뛰기를

반복(反復)했다.

 

온몸의 살이 터져

그 피부(皮膚)가 비늘처럼 떨어져 나갔다.

심장(心臟)이 멎을 정도(程度)의

극렬(劇烈)한 고통(苦痛),

숨조차 쉴 수 없이 몰아치는 그런 고통(苦痛)이 있다고

누가 상상(想像)이나 하리오 ?

 

욥(Job)은

저항(抵抗)했고 원망(怨望)했지만

자신(自身)의 결백(潔白)을 밝히려

논쟁(論爭)했지만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는

그러지 않았으니...

심장(心臟)이 터져 멎을 것 같은

극렬(劇烈)한 고통(苦痛) 속에서도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는

내게

자신(自身)이 왜 이런 고통(苦痛)을 받아야 되는지

따지지도 묻지도 않았다.

 

오직 이 모든 어두운 고통(苦痛) 속에서도

나의 사랑을 의심(疑心)치 않았다.

 

자신(自身)이 비록 이해(理解)하지 못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사랑(God,s Love)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의심(疑心)치 않았다.

 

"죽이든 살리든

 하느님 것이오니

 하느님 뜻대로 하소서 !

 나는 온전(穩全)히 당신(當身)의

 것이 옵니다."

 

그 참혹(慘酷)한 시련대(試鍊臺) 위에서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가 한

유일(唯一)한 기도(祈禱)였다.

 

자신(自身)의 전존재(全存在)를

온전(穩全)히 나에게

의탁(依託)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한

완전(完全)한 공양(供養)인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제43장 '격암가사(格菴歌辭)'에는

'천하(天下)의 하나의 기운이 재생(再生 : 다시 태어남)하는 몸이라'

하여 "천하 일기 재생신(天下一氣再生身)으로

       선불 포태 기년간(仙佛胞胎幾年間)에

       천도문(天道門)이 열려오고" 라고

예언(豫言)하였다]

 

먼저 그 재능(才能)을 꺽고

명예(名譽)를,

그 명성(名聲)에 대(對)한 집착(執着)을

꺾었다.

 

그 다음 그가 일생(一生) 동안

성실(誠實)함과 열정(熱情)으로 이룬

정명(正命)을 통(通)해 이루어낸

 

['정명(正命)'은 불교(佛敎)의 '팔정도(八正道)'의 다섯 번째로

Samyag-ajiva 곧 올바른 생활(生活)을 뜻하며 올바른 직업(職業)으로

생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모든 재산(財産)을 다 버리라 하였다.

 

가진 모든 것을 앗은 후(後)

알지 못하는

전(全)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으로,

모든 인연(因緣)을

피붙이와 겨레붙이를 떠나

홀로 미지(未知)의 땅으로 가라 했다.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는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탄(Satan)의 가장 참혹(慘酷)하고

정교(精巧)했던 시험대(試驗臺)에서

나에 대(對)한 믿음과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불멸(不滅)의 면류관(冕旒冠)을

얻었다.

 

[<맹자(孟子)>의 권12(卷十二) '고자장구(告子章句)'하 편(下篇)에

이르기를

'천장강 대임 어시인야(天將降大任於是人也)에

필선고 기심지(必先苦其心志)하고

로 기근골(勞其筋骨)하고

아 기체부(餓其體膚)하고

공핍 기신(空乏其身)하야

행불란 기소위(行拂亂其所爲)하나니

소이 동심 인성(所以動心忍性)하야

증익 기소불능(增益其所不能)하니라' 하였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임무(大任)를 내리시려 함에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의 뜻(心志)을 괴롭게 하고

그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고

그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고

그 색신(色身)을 궁핍(窮乏)하게 하여

그 행하는 바를 비틀고(拂은 떨칠 불, 비틀 불, 거스를 불)

어지럽게 하나니,

마음을 움직여서(動心) 성품을 참게 하여(忍性)

그 능(能)하지 않는 바를

증익(增益 : 증가시키고 이익되게 하여 완전하게 함)케 하기

위함 때문이니라']

 

이것이

나, 시작(始作)이며 끝인 하느님,

"I AM I"['나 스스로 있는 자(者)']

[성경(聖經) <출애굽기> 3장 14절 참고 ]

 

하느님인 내가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에게

광야(曠野)로 불러내

'내 너를 눈동자처럼 아끼노라'고

사랑을 속삭여 주는 이유(理由)이다.

 

이것이야말로

순수(純粹)하고 완전(完全)한

공양(供養)이다.

 

자신(自身)의 전존재(全存在)를 바친 이것이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가

작은 이름 모를 풀꽃 한송이를

내 제단(祭壇)에 바쳤을 때

내가 기뻐하는

순수(純粹)하고 온전(穩全)한 공양(供養)이며

지극(至極)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獻身)을 표현(表現)한

사랑의 고백(告白)이며

사랑의 언약식(言約式)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가

나에게 바치는

진실(眞實)된

진정(眞情)한 공양(供養)의 의미(意味)이다.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는

가는 길에조차도

나의 뜻을 살피고 발견(發見)한다.

거미줄에 흰나비 셋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지.

 

그 아이는 그 나비를

자세(仔細)히 살펴 보았지.

 

첫 번째 나비는

이미 걸린지가 오랜지

날개 여기저기가 뜯어먹히고 상처(傷處)입고 있었지.

두 번째 나비는

날개가 온전(穩全)하여 상처(傷處)입지는 않았지만

이미 지쳐서 늘어진 상태(狀態)였지.

세 번째 나비는

어떻게든 그 거미줄에서 벗어나려고

날개를 파닥거리며

몸부림을 쳐대고 있었어, 끊임없이...

 

그 아이는 연민(憐憫)에 가득 차

그 하얀 나비를 자세(仔細)히 살펴보다

그 나비들이 거미줄에 걸린데는

시차(時差)가 있다는 걸 알았지.

그리고는 의아(疑訝)하게 생각했어.

 

왜 첫 번째 걸린 나비가

두 번째 나비가 접근(接近)했을 때

그 위험(危險)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하고...

 

왜 세 번째 나비가 다가왔을 때

첫 번째 두 번째 나비가

그 덫의 위험성(危險性)을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

그 아이는 그걸 의아(疑訝)하게 생각했지.

 

그리고 그 거미줄 바로 아래 갓 피어난

예쁘고 싱싱한 보랏빛 꽃을  발견(發見)했어.

하나는 자신(自身)이 공양(供養)하기 위(爲)해

하나는 그의 동반자(同伴者)가 공양(供養)하도록 하기 위(爲)해

정성(精誠)스럽게 두 송이를 꺾었지.

 

그리고 보리수[菩提樹]의

첫 열매들을 보았어.

역시(亦是) 두 갤 땄지, 같은 이유(理由)로...

 

매번(每番) 공양(供養)할 때마다 열심(熱心)히

과일을 예쁘고 정성(精誠)스럽게 담고

꽃들도 아름답게 정성(精誠)스럽게 꽂았지만

항상(恒常) 그의 동반자(同伴者)에게

직접(直接) 공양(供養)하도록

양보(讓步)했지.

그가 함께 공양(供養)하기를 원(願)했으니까...

그 공양(供養)의 공덕(功德)과 기쁨을

함께 나누길 바랬으니까...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는

아주 어린아이일 때부터

나누기를 좋아했지.

자기(自己)에게 있는 좋은 것이라면

항상(恒常) 다른 이에게 나눠주고 싶어했고

아낌없이 나눠주었지.

물질적(物質的)인 것이든

영적(靈的)인 것이든...

 

그가 나눠주는데 있어서

예수(Jesus)의 지혜(智慧)를

깨닫는데는

제법 시일(時日)이 걸렸지.

'돼지에게 진주(眞珠)를

주지 말라는...'

 

그 전(前)까지 그의 삶은

자신(自身)이 가진 좋은 것을

나누는 삶이었어.

 

자신(自身)이 저지른 무지(無知)의 죄(罪)라면

티끌 만한 것도 견디지 못하고

눈이 짓무르도록 울고

가슴을 치고 찢으며

회개(悔改)했지.

 

다른 이들이 같은 우(愚)를 범(犯)하지 않도록

열심(熱心)히 알려주고 가르쳐주었지.

 

'내 은총(恩寵)의 아이(My Blessed Child)'는

너 자신(自身)을 온전(穩全)히 꽃피우고

네 존재(存在)의 의미(意味)를 완성(完成)하도록

너를 도와 줄 가장 큰

내 축복(祝福)과 은총(恩寵)의 선물(膳物)이다.

 

   태백산 반야 백화도량 2004. 6. 24. P.M. 6 : 28

 

 

 

           72. 종교적 편견(偏見)과 예수님

 

안나불의 질문 :

사랑하는 예수님

당신(當身)의 감실(龕室) 가까이 다가앉아

당신(當身)께 기도(祈禱)드립니다.

침묵(沈默) 속에서 당신(當身)의 말씀에

귀 기울이나이다.

"주(主)여!  말씀하소서.

당신(當身) 종이 듣고 있나이다.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靈魂)이 곧 나으리이다."

 

도시(都市) 한복판 언덕 위

하느님의 집을 찾아왔나이다.

 

예수님!

당신(當身) 성체(聖體)가 계신 곳을 향(向)해...

돌고돌아 힘겹게 언덕을 올라보니

성상(聖像 예수님像)을 막아 버티고 선

절(寺)의 높다란 망루(望樓)

종교적(宗敎的) 편견(偏見)과 아집(我執)으로

똘똘 뭉친 그 교만(驕慢)과 무지(無知)가

하늘을 찌릅니다.

그 호전성(好戰性)과 적대감(敵對感)이

소름끼치나이다.

 

온갖 소음(騷音)과 방해(妨害)를 넘어

오직 당신(當身)께 귀 기울입니다.

주(主)님 말씀하소서 !

당신(當身) 종이 듣고 있나이다.

 

[섭리]

사랑하는 안나(Anna 恩寵)

이제 당신(當身)의 소명(召命)과 미션(Mission)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오.

 

종교(宗敎)의 분열(分裂)과 타락상(墮落相),

그 무지(無知)와 적의(敵意)를

보았을 것이오.

 

['예수님(Jesus Christ)'은 불교(佛敎)의

'대준제(大准提 ; 大淸淨) 보살 마하살(菩薩摩하薩)'로

미륵불(彌勒佛)의 어머니 곧 '불모(佛母)'에 해당(該當)되신다]

 

그대가 깨달았던

수레바퀴의 축(軸)과 살들의 비젼(Vision),

그 비젼(Vision)의 뜻을 잘 새겨 들으시오.

그것이 그대가 해야 할 일이니...

 

[차(車 무쏘)를 타고 가면서 나온 비젼(Vision)이다.

수레바퀴의 바퀴축(軸)에서 가로 세로의 큰 살들이 나오고

그밖에 많은 작은 살들이 나와서 하나의 바퀴를 이룬다는 것으로,

하나의 근원적(根源的)인 진리(眞理)로부터 진리에 속(屬)한

많은 종교(宗敎)들이  나오며

그것들이 하나의 원(圓)을 이루어 바퀴가 되어 수레가

원만(圓滿)하게 굴러간다는 비젼(Vision)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33장 십승가(十勝歌)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다.

유불선 이언지설(儒佛仙異言之說)이

말부합리(末復合理)하여야 십승(十勝)이라.

 

유교(儒敎)와 불교(佛敎)와 기독교(基督敎 ; 天主敎)의

다른 말씀의 가르침이

말세(末世 : 끝)에는 다시 진리(眞理 理致)로 합하여야(符合)

완전한 승리(十勝)이니라]

 

그대를 방해(妨害)하던

온갖 소음(騷音)과 악취(惡臭)는 어디로 갔소 ?

환영(幻影)처럼,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았소 ?

그대의 머리카락 한올도 건드리지 못하리니...

 

[불교(佛敎)의

금강반야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蜜多經 : 金剛經)에

일체 유위법(一切有爲法)은

여몽환포영 여로(如夢幻泡影如露)하고

역여전(亦如電)하나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라 하였다.

'일체 현상계의 모습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으며, 또한 번갯불과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觀)할지니라' 하였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依託)하고 머무르시오.

그분(하느님)께서 그대들을

인도(引導)하실 것이오.

 

하느님의 때가 이르면

그분의 뜻을 그대들을 통(通)해

이루실 것이오.

 

항상(恒常)

깨어 기도(祈禱)하시오.

그분(하느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하느님께서

그대들을 온전(穩全)히 쓰실 수 있도록

그대들 자신(自身)을

낮추고 비우십시오.

하느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풍성(豊盛)히 채우실 터이니까요.

 

나의 축복(祝福)을 보냅니다.

나의 사랑(LOVE)을 보냅니다.

 

나 또한 항상(恒常) 그대들과 함께 하며

도움이 필요(必要)한 매 순간(每瞬間)마다 함께 하며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주교좌 성당(聖堂)에서 2005. 4. 1. P.M. 6:30

 

 

 

           73. 회개(悔改)의  눈물

 

질문 :

주(主)님 말씀하소서.

당신(當身) 종이 듣고 있나이다.

 

[섭리]

나의 사랑하는 이여,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여,

돌아오고 또 돌아오라.

 

사탄(Satan)의

유혹(誘惑)과 덫과 시련(試練)은

그대들을 더욱 강건(剛健)케 하리니,

낮추고 또 낮추라.

내가 너희를 높여 줄 것이다.

 

가슴을 찢어

사탄(Satan)의 속박(束縛)에서

풀려나거라.

 

눈물로 죄(罪)를 씻어

사탄(Satan)의 악(惡)으로부터

깨끗해지거라.

 

내 너희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노니...

돌아오고 또 돌아오라.

 

너희들을 포기(抛棄)하지 않고 기다려 온

나의 유여(有餘)와 인자(仁慈)를

악용(惡用)해선 안 된다.

 

나는 사랑의 하느님이요

공의(公義)의 하느님이로다.

 

내가 너희들을 위(爲)해

예비(豫備)한 길로

이제 실족(失足)치 말고

힘차게 나가도록 하라.

 

그 길을 가려거든

회개(悔改)로 가슴을 찢고

통한(痛恨)의 눈물로

죄악(罪惡)을 씻고 오너라.

 

성(聖)스러운 불이

너희를 삼킬 것이니...

죄인(罪人)을 태우는 불이라.

 

[회개(悔改)할 때 배 속에서 업장(業障 ; 죄업)을 태우는

성령(聖靈)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불길은 대체로 성령(聖靈)의

사랑의 불길이지만 질투(嫉妬)의 불길인 경우도 있다.

질투(嫉妬)의 불길이 일어날 경우에는

더욱 참회(懺悔)하고 간절히 회개(悔改)해야 한다.

불 보살(佛菩薩)이나 하느님 예수님 앞에 간절히 통회(痛悔)해야 한다]

 

회개(悔改)하는 자(者)는

황금(黃金)처럼 순수(純粹)하게

정화(淨化)되어 나오리라.

 

회개(悔改)치 않는 자(者)는

지옥(地獄)의 불이 되어

꺼지지 않는 고통(苦痛)의 불이

되리라.

 

돌아오라.

돌아오고 또 돌아오라.

내 유여(有餘)와 자비(慈悲)가

머무르는 동안...

 

내 공의(公義)의 검(劍)이 뽑힌다면

모든 것이

분노(忿怒)의 불길에 휩싸이리라.

 

회개(悔改)하라 !

회개(悔改)하라 !

회개(悔改)하지 않으면

네가 정녕(丁寧) 죽으리라.
 

   도계(道溪) 성당(聖堂) 성체 조배(聖體朝拜) 시(時)

                          2005. 4. 12. 火

 

 

 

           74.  내 얼을 새로이 부어주리니

               -십자고상(十字苦像) 영성체-

 

[섭리]

내가 너에게 준 것은 사랑(LOVE)이다.

나의 자비(慈悲)와 연민(憐憫)을

기억(記憶)하라.

 

내가 너에게 해준 것처럼

너(晏那佛)도

나의 종 다윗(My servant David)에게

그대로 하도록 하라.

 

['나의 종 다윗(My servant David)'에서

'다윗(David)'은 백화불(白華佛)의 세레명(洗禮名)이다.

현상계(現象界)에 출현(出現)하는 부처(Buddha)는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의 완전(完全)한 종(Perfect Servant)이다.

즉 무아(無我)의 경지(境地)를 증득(證得)하므로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의

완전(完全)한 통로(通路)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내 앞에서

무릎을 꺽고 머리를 떨구며

회개(悔改)하니

그를 치려던 내 마음을 돌이켜

그에게 다시 '내 사랑(MY LOVE)'을

보여 주리라.

 

너희에게

내 얼[靈  MY SPIRIT]을

새로이 부어주리니

너희가 새로워지리라.

 

[해탈 초기(解脫初期)에 불광(佛光)이 나와 삼계(三界)를 도왔는데

다시 불광(佛光)을 나오게 하시겠다는 약속(約束)이시다]

 

예수님(Jesus Christ)께

겸손(謙遜)되이 배우라.

그분의 도우심을

간절(懇切)히 청(請)하라.

 

['예수님(Jesus Christ)'은

불교(佛敎)의 '보살 오십이위(菩薩五十二位)' 가운데

등각 대보살(等覺大菩薩)에 해당(該當)되신다.

오십이위(五十二位) 가운데 제 41 위(第四十一位)에서

제 50 위(第五十位)까지가 보살 10 지(菩薩十地)인데

초지(初地) 환희지(歡喜地)부터 시작하여

10 지(十地) 법운지(法雲地)까지이다.

제 51 위(第五十一位)는 등각(等覺) 위(位)이고

제 52 위(第五十二位)는 묘각(妙覺) 위(位)이다.

부처(佛)는 해탈 초기 등각(等覺)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묘각(妙覺) 위(位)에 이르게 된다.

한편 '예수님(Jesus Christ)'과 같은 대보살(大菩薩)들은

부처(佛)와 상등(相等)한 등각(等覺) 위(位)에 머물기 때문에

'등각 대보살(等覺大菩薩 또는 等覺大士)'이라 하며

필요(必要)한 상황(狀況)에서 부처(佛 Buddha)에게

도움을 주시게 된다.

'예수님(Jesus Christ)'이 '불모(佛母 Mother of Buddha)'가

되는 이유(理由)도 여기에 있다]

 

그분의 십자가(十字架)의 보혈(寶血)로

너희를 씻으며

새롭게 하리니,

악(惡)으로부터 너희를 지켜주고

죄(罪)로부터 너희를

깨끗이 지켜주시고 사(赦)해 주시리라.

 

[예수님(Jesus Christ)은

'맑고 깨끗하신 분[淸淨 : 준제(准提)]', 곧 '죄(罪) 없으신 분'으로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의 사랑의 작용[作用 : 菩薩]이시다.  

죄(罪)가 없으시기 때문에 십자가(十字架)의 고통(苦痛)과 수모(受侮)를

당(當)하실 이유(理由)가 전(全)혀  없다. 고통(苦痛)과 수모(受侮)는

죄업(罪業)의 결과(結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극한(極限)의 고통(苦痛)과 수모(受侮)를 당(當)하셨을까 ?

다른 사람들의 죄업(罪業 Karma-sin)을 대신(代身) 짊어지는

사랑[LOVE ; AGAPE : 大慈大悲] 때문이시다.

현상적으로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을 대신(代身) 짊어질 수 있듯이

영적(靈的)으로도 다른 사람의 죄업(罪業 Karma-sin)을

대신(代身) 짊어질 수 있다.

이렇게 남의 죄(罪)를 대신(代身) 짊어지는 것을

기독교(基督敎  天主敎)에서는 '대속(代贖 Redemption)'이라고 한다.

 

십자가(十字架)의 수난(受難 Passion)은

인류(人類) 역사상(歷史上) 가장 위대(偉大)한

대속 사건(代贖事件)이시다.

인간(人間)의 육신(肉身)을 입고 누가 과연(果然)

이런 대속 사건(代贖事件)을 이룰 수 있겠는가 ?

남을 위해서 쌀 한톨 나눠주기도 아까워하는 세상에

살아있는 자신(自身)의 몸을 통째로,

피와 눈물과 고통(苦痛)을 통째로,

서른 세 살의 생명(生命)을 통째로 나눠주고

다른 사람의 죄(罪) 값을 죽음으로 치른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想像)할 수도 행(行)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러한 원리(原理) 때문에

'십자가(十字架)의 기도(祈禱)'를 바치면

참회(懺悔)와 회개(悔改)의 수준(水準)만큼

또 믿음의 수준(水準)만큼

자신(自身)의 죄업(罪業)이 사(赦 ; 消滅)해진다]  

 

'십자가(十字架)의 기도(祈禱)'는

예수님(Jesus Christ)의 십자가(十字架)의 수난(受難)을

관상(觀想 또는 默想)하면서,

또 눈물로 자신(自身)의 죄(罪)를 참회(懺悔)하고 통회(痛悔)하고

회개(悔改)하면서  

 

"주(主) 예수님,

십자가(十字架)의 보혈(寶血)로

제 죄(罪)를 씻어주소서 !"

 

"주(主) 예수님,

십자가(十字架)의 고통(苦痛)에 제 죄(罪)를

합(合)해 주소서 !"

 

라고 거듭 거듭 간구(懇求)하면서

또는 번갈아 가면서

간절(懇切)히  바치는 기도(祈禱)이다.

 

예수님(Jesus Christ)께서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죽음과 맞바꾼

극한(極限)의 고통(苦痛)이

왜 죄(罪)를, 즉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vijnana)의

죄업(罪業) 곧 업장(業障 Karma-sin)을 사(赦)해 주시는지

그 원리(原理)를 비유(譬喩)로 간단히 밝히면 다음과 같다.

 

우주(宇宙)에는 '블랙홀(Black Hole)'이라는 것이 있다.

물질계(物質界)의 모든 천체(天體 ; 항성, 행성,성단, 성운 등등)들이

이 '블랙홀(Black Hole)'의 영향권(影響圈) 안에 들어가면

빨려 들어가서 영원(永遠)히 소멸(消滅)되어 버린다.

 

이와 반대(反對) 개념으로

예수님(Jesus Christ)의 십자고상(十字苦像)은

정신적(精神的)인 세계(世界)의

'화이트홀(White Hole)'이라 볼 수 있다.

 

예수님(Jesus Christ)의 십자고상(十字苦像)은

모든 중생(衆生, 罪人)들의 죄(罪 : 罪業 또는 原罪 Original Sin)를

모조리 빨아들여 영원(永遠)히 소멸(消滅)시키는

죄(罪) 사(赦)함의 '화이트홀(White Hole)'인 것이다.

곧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대속(代贖)의 '화이트홀(White Hole)'이다.

사탄(Satan) 곧 마라(魔羅)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들에게는

공포(恐怖)의 '화이트홀(White Hole)'인 것이다.

 

따라서 위의 '십자가(十字架)의 기도(祈禱)'를

간절(懇切)히 바치면

이 거룩한  '화이트홀(White Hole)'의 영향권(影響圈) 안에

들어가게 되며 죄(罪) 사(赦)함을 받게 된다.

 

성경(聖經) <시편> 51편 7절

"우슬초로 나를 정결(淨潔)케 하소서 ! 

내가 정(淨)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

내가 눈(雪)보다 희리이다."

('우슬초'는 그 가지로

부정(不淨)을 없애는 의식(儀式)에 섰다)

Cleanse me with hyssop,

and I will be clean;

wash me,

and I will be whiter than snow.

        <Psalms 51 : 7>

 

이러한 '십자가(十字架)의 기도(祈禱)'는

대속(代贖)의 가장 위대(偉大)한 기도(祈禱)이다.

 

구마 기도(驅魔祈禱) 곧 구마경(驅魔經) :

"모든 악(惡)의 세력(勢力)은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Nazareth Jesus Christ)께 가거라.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Nazareth Jesus Christ)의 이름으로

명령(命令)한다"

도 마찬가지 원리(原理)이기 때문에

강력(强力)한 구마(驅魔 마귀를 몰아냄)의 파워(Power)를

지닌다]

 

내가 너희를 새롭게 하리니

나(법신불 하느님)의 충실(忠實)하고

성실(誠實)한 종(Servant)으로 일하며

나의 지혜(智慧)의 통로(通路)로

말하고 가르치라.

 

항상(恒常)

마라(魔羅) 사탄(Satan)의 덫과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깨어 기도(祈禱)하며

예수님(Jesus Christ)의 성체(聖體 the Blessed Sacrament)로

영적(靈的)인 힘[Spiritual Power]을 키우고

이겨나가라.

 

[법신불(法身佛)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성체(聖體 the Blessed Sacrament,the Holy Sacrament)를

영(領, 받아들일 령)하여 즉 '영성체(領聖體)'로 영적(靈的)인 힘을 키워

마라(魔羅) 곧 사탄(Satan)의 올무로부터 벗어나 승리(勝利)하기를

가르치신 것이다.

 

성체(聖體)는 동그란 모양의 얇은 하얀 밀떡으로

창조 이전(創造以前)의 법신불(法身佛) 하느님

곧 창조주(創造主) 하느님과 하나가 되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다.

'동그란 모양'은 삼라만상(森羅萬象) 곧 우주(宇宙 : 三界)에

편재(遍在)하는 그리스도 의식(意識 Christ Consciousness)을

상징하고 '하얀 색'은 모든 빛깔의 근원적(根源的)인 색(色)

곧 창조 이전(創造以前)의 빛을 상징한다]
 

          저녁미사 前 성체조배(聖體朝拜) 時 2005. 7. 12. 火

 

 

 

           75.  사랑과 지혜의 빛으로

                  [예수님의  메시지]

 

질문 :

주(主)님(예수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

 

[섭리]

내 사랑하는 이여,

'내가 너에게 준 것은 사랑이다'

내 사랑 안에

그대가 머물고

나 또한 그대 속에 거(居)하니...

 

우리 자신(自身)을 온전(穩全)히

하느님의 사랑에

일치(一致)시켜 나갈 때

하느님과 나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왔으며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을 압니다.

 

[성경(Bible) <요한1서> 4장 7절 8절 :

사랑하는 자(者)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느님께 속(屬)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者)마다

하느님께로 나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者)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니

이는 하느님은 사랑이심이라.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Whoever dose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1 John 4 :7~8>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可能)케 합니다.

 

'나(我)'를 버리고 [無我]

하느님의 성령(聖靈)에

온전(穩全)히 '자신(自身)'을

맡겨 드리십시오.

 

[여기서 '나(我)를 버리고' 는 기아(棄我) 곧 '무아(無我)'에

해당되고, 온전(穩全)히 '자신(自身)'을 맡겨 드릴 때의 '자신(自身)'은

불교(佛敎)의 열반 사덕(涅槃四德)인 '상(常), 락(樂),아(我), 정(淨)'

가운데 '아(我)'에 해당된다. 내(我)가 사라졌을 때의 나(我)이다]

 

'하느님과 나'가 하나라는 말은

내 전존재(全存在)를

온전(穩全)히 하느님께 바치어

나를 통(通)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온전(穩全)히 이루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十字架)에서

내 사명(使命)을

다 이루었을 때

나는 온전(穩全)히

'하느님의 뜻'에 부합(符合)되었고

하느님 아버지와 나 사이에

어떤 분리(分離)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과 나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니

'하느님과 나' 사이에는

어떤 분리(分離)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완전(完全)한 사랑'의 원리(原理)이며

'사랑(LOVE, AGAPE)'인 것입니다.

 

내(Jesus Christ)가 그러했듯

 

['예수(Jesus)'는 '하느님은 도움(God is help)'이라는

히브리 어원(語源)에서 나왔고

'그리스도(Christ)'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者)[the Anointed One]'라는

희랍어(Greek) 어원(語源)에서 나왔다. 이에 상응(相應)하는

히브리 어(語 Hebrew)는 메시아(Messiah)이다]

 

그대들도

순명(順命)으로

하느님을 온전(穩全)히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랑 안에

그대들이 항상(恒常) 머물게 될 때

그대들은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며

그 사랑을 온전(穩全)히

발현(發現)시킬 것이며

하느님을 향(向)한 그 사랑은

지혜(智慧)의 빛으로

온전(穩全)히 발현(發現)되어

많은 이에게

빛으로

진리(眞理)로

사랑으로

온전(穩全)히 다가올 것이며

다가갈 것입니다.
 

   저녁미사 前 성체조배(聖體朝拜) 時 2005. 7. 14. 木

 

 

 

           76. 나의  분신(分身)이여 !

 

질문 :

하느님 말씀하소서.

당신(當身) 종이 듣고 있나이다.

 

[섭리]

사랑하는 이여,

나의 분신(分身)이여 !

 

안나불(晏那佛) 질문 :

주(主)여,

감당(堪當)치 못하겠나이다.

이 죄인(罪人)을 용서(容恕)하소서 !

 

[섭리]

내가 너에게 준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바로 나 하느님의 속성(屬性)이며

본질(本質)이다.

 

그 사랑을 알고 이해(理解)하며

실천(實踐)하는 이여 !

너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 안에 있다.

 

질문 :

주(主)님,

제가 얼마나 허물과 죄(罪)가 많은지

다 속속들이

아시지 않습니까 ?

 

[죄업(罪業)이 두꺼운 중생(衆生)들은

무명(無明 : 無知) 업장(業障) 때문에 자신의 죄(罪)가

얼마나 칠흑(漆黑) 같은지  모르고 살아간다.

물론 참회(懺悔)도 하지 않지만...

하지만 죄(罪 Sin)가 거의 없는 영혼(靈魂)들은

먼지 티끌 만한 죄(罪)가 있어도 무척 괴로워하며

법신불(法身佛) 하느님 앞에 또는 불보살(佛菩薩) 전(前)에

엎드려 눈물로 참회(懺悔)하고 회개(悔改)한다.

 

대홍수(大洪水)로 범람(汎濫)하는 진흙탕 물에는 바윗덩어리를  

쏟아부어도 표가 나지 않지만, 수정(水晶) 같이 맑고 깨끗한

호수(湖水)에는 좁쌀 한 톨을 떨어뜨리면 호수 가까지 미치는

그 파문(波紋)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原理)이다.

'바윗덩어리'는 대죄(大罪)를 뜻하고,

'좁쌀 한 톨'은 매우 작은 소죄(小罪)를 의미(意味)한다]

 

[섭리]

그래 알고 있다.

너는 죄(罪)의 유혹(誘惑 temptation)이

고개를 들기만 해도

먼저 회개(悔改 repentance)하니

내 어찌 너를

용서(容恕 forgiveness)치 않고

어여삐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네가 눈이 짓무르도록

울고 또 울어

죄(罪 sin)를 회개(悔改)하였으며

다른 죄인(罪人)들을 위(爲)해

눈이 침침(沈沈)해지도록

울고 매달리며

내게 기도(祈禱)한 것을

나 잊지 않노라.

 

나의 딸(My Daughter),

나의 반려(伴侶 My Companion),

나의 사랑(My Love)이여,

이제 내가 너를 축복(祝福 Blessing)한다.

 

온갖 질곡(桎梏)과 고초(苦楚)를,

시련(試鍊)과 고난(苦難)의 대해(大海)를 건너온

그대를 축복(祝福)하노라.

 

네가

모든 환난(患難)과 박해(迫害 Persecution) 중(中)에,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순간(瞬間)에서조차

내게 충성(忠誠)을 다했으며

지극(至極)한 사랑으로

'나'를 섬겼으니,

내 너를 '은총(恩寵 the Blessed)'이라

이름지었으며

네가 세속명(世俗名)이 없음도

그런 연유(緣由)라.

 

['은총(恩寵 the Blessed)'은  

'은총(恩寵)의 아이(the Blessed Child)'를 뜻한다. 이런 내용의

영화(映畵)가 몇 년 전(前)에 T.V.에서 방영(放映)된 적도  있다.

'예수님(Jesus Christ)'은 하느님(攝理)으로부터

'독생자(獨生者 the Only Begotten Son)'로 불렸다.

<요한복음>1장 참고]

 

자, 이제

내가 예비(豫備)한  너의 길을

힘차게 가거라.

 

어떤 풍랑(風浪) 속에서도

내가 하늘에 닿는 물기둥이 되어

너를 보호(保護)하여

좌초(坐礁)치 않게 하겠으며,

어떤 마라(魔羅)의, 사탄(Satan)의

저 땅속 깊은

지옥(地獄 Hell)의 불기둥이라도

내가 전지 전능(全知全能)한

십승(十勝)의 불기둥으로

 

['십승(十勝)'은 완전(完全)한 승리(勝利)를 뜻함.

'십(十)'은 '완전수(完全數)'이다]

 

너를 대신(代身)하여

싸워줄 터이니

내 사랑하는 이여,

두려워 말고

나를 믿고 의지(依支)하며

내 사랑 안에서 굳건해 지거라.

 

이제 너를

세상(世上) 한복판으로 보낸다.

항상(恒常) 깨어 기도(祈禱)하며

내 안에 머물러

너와 나 사이에

어떤 틈도

어떤 분리(分離)도

일어나지 않도록

성령(聖靈)의 말씀과 그 감동(感動)에

귀(耳) 열고 가슴을 열어라.

 

나의 사랑(LOVE) 안에

항(恒常) 머무르라.
 

   저녁미사 前 성체조배(聖體朝拜) 時 2005. 7. 21. P.M.7:25

 

 

  

           77. '은총(恩寵)'에 '은총(恩寵)'을

 

질문 :

하느님, 나의 주(主), 나의 하느님이시여 !

말씀하소서 !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

[오늘은 7월 26일 화요일(火曜日)

'안나(Anna)' 축일(祝日)입니다. 제 본명(本名) 축일(祝日)입니다]

 

[섭리]

내 사랑하는 이여,

내가 너를 '은총(恩寵 the Blessing)'으로 내었고

길렀으며

내' 사랑(Love)'과 자비(慈悲 Mercy)로

너를 이끌어 왔다.

네가 나에 부르짖을 때,

내 귀를 기울였으며

네가 울부짖으며 내게 매달릴 때

 

[ '매달린다'는 것은 미륵불(彌勒佛)의 딴 이름(異名)이다. 

미륵불(彌勒佛 Maitreya Buddha)은 한역(漢譯)될 때

'매달려야(梅呾麗耶) 불(佛)'로 음역(音譯)된다.

해탈 지견(解脫知見)을 완성(完成)하기 위해서

또 마라(魔羅)로부터 완전(完全)히 승리(勝利)하기 위해서

항상(恒常)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에게 완전(完全)히

'매달려야(梅呾麗耶)하는  불(佛)'이라는 뜻이고,

 

미륵불(彌勒佛 Maitreya Buddha)의 도움을 받게 되는

인연 중생(因緣衆生)들은

구원(救援) 또는 해탈(解脫)을 위해서  

또 자신의 영혼(靈魂)이 깨끗하게 정화(淨化)되기 위해서

'매달려야(梅呾麗耶)하는  부처님(佛)'이라는 뜻이다]

인연 중생(因緣衆生)들이 매달리는 방법은

염불(念佛), 법회 참석(法會參席, Cyber Doryang 參席 包含),

법문(法門) 듣기 등(等)이 있다]

 

나[법신불(法身佛) 하느님] 

너의 눈물 방울을 헤아렸느니...

내가 침묵(沈默) 속에서도

너에게 답(答)했으며

네가

내 뜻을 헤아리지 못해 괴로워할 때도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었노라.

 

네가 길을 잘못들어

상처(傷處) 입고 울부짖으면

내가 지체(遲滯)치 않고

네 상처(傷處)를 싸매 주고

위로(慰勞)해 주었노라.

 

때론 네가

그릇된 길로 갈 때조차

나(법신불 하느님)는

'모든 것이 선(善)을 이루도록'

했노니...

 

네가 '회개(悔改)의 눈물'로

네 가슴을 찢고

내 제단(祭壇) 앞에

너 자신(自身)을 던져 통곡(痛哭)할 때조차

나 항상(恒常) 너를 굽어보고

네게 나의 '은총(恩寵)'을 거두지 않았노라.

 

네(안나佛)가

극한(極限)의 육체적(肉體的) 고통(苦痛) 속에서

생사(生死)를 넘나들며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내게 의탁(依託)하고

원망(怨望)치 않으며

너 자신(自身)의 죄(罪)로 눈을 돌려

철저(徹底)히 회개(悔改)의 눈물로

너 자신(自身)을 정화(淨化)시켰으니

이제 내가 너를 새롭게 하리라.

 

네가 이해(理解)하지 못하여

괴로워하면서도

나의 뜻에 순명(順命)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를 새롭게 하리라.

 

네가 죽음에서조차

내게 의탁(依託)하였고

극한(極限)의 무서운

육체적(肉體的) 한계(限界)의

병고(病苦) 속에서도

나를 배신(背信)하지 않았으며

네가 겪고 있는

모든 혹독(酷毒)한 고통(苦痛)과 시련(試鍊)을

이해(理解)할 수도 없었지만

오직 나에 대(對)한 신뢰(信賴)와 사랑으로

그 모든 환난(患難)에도 순명(順命)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를 다시 일으키어

나(법신불 하느님)의

'은총(恩寵)'에 '은총(恩寵)'을

부어주리니

 

너의 이름은 영원(永遠)히

'안나(晏娜 Anna)' '은총(恩寵)'이

되리라.

 

['안나(晏娜 Anna)'는 히브리 말의 '은총(恩寵)'이라는 뜻으로

'안나불(晏娜佛 Anna Buddha)'은 번역(飜譯)하면

'은총불(恩寵佛)'이 된다. 법신불(法身佛) 하느님 곧 섭리(攝理)의

'특별(特別)한  은총(恩寵)'을 받은 부처(佛)이기 때문이다]

 

질문 :

오 하느님 !

어찌하여 이 보잘것없는종에게

이런 은총(恩寵)을 주시나이까 ?

하느님 내 주님 !

찬미(讚美)와 흠숭(欽崇)과

사랑을

세세(世世)에 영원(永遠)히

받으소서 !

 

주(主)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

 

예수(Jesus Christ)님 !

어찌 감사(感謝)와 사랑을

다 표현(表現)하리까 ?

 

[섭리]

내가 네게 준 것은

'사랑(LOVE)'이다.

 

그 '사랑(LOVE)'은

아무리 강조(强調)해도

과(過)하지 않느니...

나 자신(自身 : 法身佛 하느님)이

'사랑(LOVE)'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들어 쓰고자 하기에

내 속성(屬性)이며 본질(本質)인

'사랑(LOVE)'을

항상(恒常) 너에게 부어주는 것이다.

 

너는 겸손(謙遜)되이

예수(Jesus Christ)께 배우라.

그의

크고 '완전(完全)한 사랑(LOVE)'을...

  "나를 따르라.

   나의 모범을 따르라.

   나는 마음이 온유(溫柔)하고

   겸손(謙遜)한 자(者)이니

   내게서 배우라."

[성경(聖經)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者)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溫柔)하고 겸손(謙遜)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Matthew 11 : 28~30>

 

나를 사랑하는 이는

내(법신불 하느님)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

 

네가 나를

네 생명(生命)보다 더 사랑하니

나 너를

내 눈동자처럼 아끼며

사랑한다.

 

항상(恒常) 내 안에 머무르라.

네 안에 계신 성령(聖靈)의 인도(引導)와 이끄심에

그 가르치심에 귀 기울이라.

 

내 친(親)히 너를 이끌 것이니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너를 통(通)해 이루어지리라.

나의 계획(計劃)과 뜻이...

 

질문 :

하느님, 내 하느님,

이 종이 어찌하오리이까 ?

어찌하면 좋습니까 ?

주(主)여 !

당신(當身) 종이 듣고 있나이다.

 

[섭리]

나를 사랑하느냐 ?

대답 :

녜, 주(主)님 아십니다.

[섭리]

나를 진정(眞情)

그 어떤 것보다도

네 목숨보다도 사랑하느냐 ?

대답 :

녜, 주(主)님

내 목숨보다도 더...

주(主)님 아십니다.

[섭리]

나를 사랑한다면 내 말을 들으라.

대답 :

주(主)님 !

말씀하소서.

당신(當身) 종이 듣고 있나이다.

[섭리]

내가 네게 준 것은 사랑(LOVE)이다.

그 사랑을 온전(穩全)히

꽃피우고 발현(發現)시키라.

너를 통(通)해 나의 영광(榮光)이 드러나겠고,

내 사랑의 본질(本質)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사랑(LOVE)으로 너를 완성(完成)시켜라.

 

너를 버리면

네 안에 내가 가득 찰 것이요,

내 안에 너를 온전(穩全)히 품어 줄 것이다.

 

그러할 때 너와 나는 하나가 되고

너는 나의 뜻을 이루는 도구(道具)이며

통로(通路)가 될 것이며

나의 온전(穩全)한 하나요

사랑(LOVE)이 될 것이다.

 

나의 사랑(LOVE)

나의 또 다른 하나의 표현(表現)이

될 것이다.
 

  저녁미사 前 성체조배(聖體朝拜) 時 2005. 7. 26. P.M.7:30

 

 

 

              78. 주(主)님의  말씀

 

질문 :

하느님 말씀하소서.

당신(當身) 종이 듣고 있나이다.

 

[섭리]

사랑하는 나의 자녀(子女)들아,

내가 너희에게 준 것은 사랑(LOVE)이다.

그 사랑(LOVE)이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

 

그 꽃송이가

천 송이  백 송이 백만 송이가 되어

꽃피고 열매 맺어

많은 이들을 향기(香氣)로 이끌고

그 열매를 나눠줄 준비(準備)가 되었는가 ?

 

그 지혜(智慧)의 꽃향기(香氣)가

활짝 피었는가 ?

 

그 사랑(LOVE)의 열매가

달콤하게 익었는가 ?

 

마라(魔羅 Mara)와의 긴 싸움이

사탄(Satan)과의 치열(熾烈)한 싸움이

이제 큰 고비를 넘었다.

 

[2005년 6월부터 2006년 4월(10 개월 동안)까지

온갖 교활(狡猾)함의 탈을 뒤집어쓰고 한밤중에 발신 전화번호를

끊임없이 바꿔가면서 걸려온 '괴 전화(怪電話) 사건(事件)'으로

'사탄(Satan)과의 치열(熾烈)한 싸움이 큰 고비를 넘었다.'

 

이 '괴 전화(怪電話)'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바꿧다.

때로는 어린애 목소리를 내다가 바로 영감 목소리를 내고,

달콤한 목소리를 내다가 곧바로 냉혹(冷酷)한 목소리를 내고,

킬킬 웃다가 곧바로 화를 내고, 곧바로 욕설을 퍼붓고,

온갖 음담패설(淫談悖說)을 토(吐)해내고 등등

한마디로 감성(感性)을 가진 사람(人間)이 아니라,

감정(感情)이 일체 없고 냉혹(冷酷)한 외계인(外界人)과 같았다.

교활(狡猾)하고 사악(邪惡)하고 간사(奸邪)한 머리는

엄청나게 빨리 돌아가고, 온갖 거짓과 술수(術數)로  가득 차 있었다.

더 자세(仔細)한 내용(內容)은 '안나부처님 홈피' 게시판에 실린

'기적(奇蹟)의 여정(旅程)' 제8편부터 참고 바람]

 

지금(只今)은

사탄(Satan)의 뒷모습을 보지만

그는 호시탐탐(虎視眈眈) 다시 돌아와

기회(機會)를 엿볼 것이다.

 

['괴 전화(怪電話)'는 이번에 실수(失手)한 것 같다며

모습을 바꾸어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였다]

 

항상(恒常) 깨어 있으라.

 

이제 법(法)을 펼

준비(準備)가 되었는가 ?

 

나의 목소리를 실을

준비(準備)가 되었는가 ?

 

나의 지혜(智慧)를 비출

준비(準備)가 되었는가 ?

 

내 사랑(LOVE)을  사랑으로 살아갈

준비(準備)가 되어 있는가 ?

사랑(LOVE)으로 살아낼

준비(準備)가 되어 있는가 ?

 

보라,

십승(十勝, 十은 완전수)의 십자가(十字架)를.

그 완전(完全)한 승리(勝利)를...

그 승리(勝利)는

법신불(法身佛) 하느님께로 향(向)한

완전(完全)한 순명(順命),

온전(穩全)한 복종(服從)으로부터

왔나니,

마라(魔羅)가, 사탄(Satan)이

틈을 탈 수 없었느니라.

 

[예수님(Jesus Christ)의 십자가(十字架) 위에서의 순명(順命)을

지적(指摘)하신 것이다]

 

보라,

거룩한 십승(十勝)의 십자가(十字架)를...

그 길을 따라

그 빛을 따라

십승(十勝)의 십자가(十字架)를 통(通)해

내게로 오라.

나와 너희들 사이에 분리(分離)가 없도록.

 

나는 시작(始作)이며 끝이고

'나는 나[I AM I]'인 하느님이니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始作)하고

모든 것은 나로부터 끝나니

너희는 온전(穩全)히 내 안에 머물라.

 

내가 너희를 새롭게 하고

새로운 눈과

새 깃을 주리니

나의 하늘

나의 창공(蒼空)

내 법신(法身)의 하늘을

마음껏 날아오르리라.

 

빛나는 지혜(智慧)의 눈알로

그 지혜(智慧)의 빛을 쏘리니

그 빛을 받는 이들이

무지(無知 Ignorance)로부터

그 깊은 잠으로부터

깨어날 것이다.

 

색신(色身)의 한계(限界)를 지닌

너 자신(自身)에게 의지(依支)하지 말고,

법신불(法身佛) 하느님 나에게

의지(依支)하라.

 

나와 온전(穩全)히 하나가 됨으로서

내 모든 능력(能力)과 지혜(智慧)와 권능(權能)이

너희를 통(通)해 흘러들 것이니

온전(穩全)히 너희는 나의 길을 가리라.

내가 안배(按配)한 길을,

내가 열어둔 길을...

 

가라 !

가거라 !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

 

세상(世上) 한복판으로

너희를 보내노니

너희는 나의 지혜(智慧)의 빛이 되고

내 사랑(LOVE)의 열매요

내 사랑(LOVE)의 증거자(證據者)가 되리니

마라(魔羅 Mara)로부터

완전(完全)한 십승(十勝)이 될 것이고

너희가 머무는 곳이

십승지(十勝地)가 되리라.

 

[정감록(鄭鑑錄), 격암유록(格菴遺錄) 등 한국의 모든 예언서들은

'십승지(十勝地)'를 예언(豫言)하고 있다. 이에 대한 풀이는 다음에

기회(機會) 있을 때 하겠다]

 

항상(恒常) 깨어 있으라.

방심(放心)하지 말라.

 

마라(魔羅)는, 사탄(Satan)은

바늘 끝만한 틈만 있더라도

너희를 공략(攻略)할 것이다.

 

항상(恒常) 깨어 기도(祈禱)하라.

마라(魔羅)가 틈타지 않도록,

사탄(Satan)이 깃들지 못하도록.

 

너희가 내 안에서 서로 사랑(LOVE)한다면

너희는 하나가 될 것이고

그 때 나와 너희의 분리(分離)가

사라질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완전(完全)한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을

반영(反映)하게 되리라.

 

가거라.

내가 축복(祝福)한다.

내가 너희를 인(印)처럼 두르고

내 날개 밑에 너희를 품으니

마라(魔羅)도 사탄(Satan)도

어쩌지 못하리라.

 

너희 스스로 실족(失足)하지 않는다면,

너희 스스로 마라(魔羅)에게

투항(投降)하지 않는다면,

너희 스스로 마라(魔羅)의 술수(術數)와

덫과 계교(計巧)에 걸어 들어가지 않는다면 ...

 

항상(恒常) 깨어 있으라.

항상(恒常) 마라(魔羅)로부터

경계심(警戒心)을 늦추지 말라.

그는 속이는 자(者)이니

항상(恒常) 너희들을 노릴 것이다.

 

항상(恒常) 깨어 있으라.

 

가거라.

축복(祝福)한다.

나의 사랑(LOVE) 안에 머물라.

내 지혜(智慧)의 빛 안에 거닐라.

너희들이 안전(安全)하게 보호(保護)되리라.

 

     찬미(讚美) 예수님

     천주(天主)께 감사(感謝)
 

   '십자가의 길' 기도 後 성체 조배 時 2006. 4. 12. P.M.8:50

 

 

        십승 기도(十勝祈禱)

      -백화불의 기도(祈禱)-

 

법신불(法身佛) 하느님 주(主) 예수님

완전(完全)히 낮추고

완전(完全)히 비우고

완전(完全)히 버리고

완전(完全)히 바치고

완전(完全)히 속(屬)하고

 

완전(完全)히 사랑하고

완전(完全)히 감사(感謝)하고

완전(完全)히 섬기고

완전(完全)히 정성(精誠)을 다하고

완전(完全)히 순명(順命)하고

완전(完全)히 목숨을 바치고

 

항상(恒常) 참회(懺悔)하고

항상(恒常) 깨어 기도(祈禱)하는

완전(完全)한 사랑의 종(Servant)이

되겠습니다.

(2006. 5. 1. 반야 백화도량)

 

 

 

     

   마라와의 대전쟁

 

마라(魔羅 ;마왕 파순, Satan)는

백안불(白晏佛)에게 여러 번 나타나

온갖 감언 이설(甘言利說)로 꾀거나

거짓말로 현혹(眩惑)하였다.  

 

심지어 신불포태(神佛胞胎) 기간(期間) 중에는

'내일 아침에 곧바로 죽을 것이다'고

협박(脅迫)하기도 했다.  

 

마라는 때로 온갖 흉측(凶測)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고,

때로는 무수(無數)한 대군(大軍)의 발자국 소리를 내며

진격(進擊)해 오기도 했고,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하늘에 나타나 위협(威脅)하기도 했다.

 

때로는 색신(色身)의 고통(苦痛)으로 괴롭히기도 했고,  

어떤 때는 가짜 불광(佛光)을 내기도 했다.

 

때로는 번개와 천둥, 강풍으로 대적(對敵)해 오기도 했고,  

폭우(暴雨)를 쏟아붓기도 했다.

심지어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문짝을 부수기도 했다.

 

때로는 어둠이 짙은 중생들을 통(通)해

마라(Mara)의 앞잡이로 활동(活動)하도록 했다.

심지어 독(毒)버섯(싸리버섯)으로 부처의 색신(色身)을

죽이려고도 했다.

 

얼마 전(前)에는 괴(怪) 전화를 10개월 동안 한밤중에 걸어와

온갖 거짓과 협박(脅迫)과 욕설(辱說)을 퍼붓기도 했다.

이에 대한 스토리(Story)는 '안나불(晏那佛)의 홈피' 게시판

'기적(奇蹟)의 여정(旅程)' 8편 이후에 나온다.

사실 이것이 가장 집요(執拗)한 마라(魔羅)의 시험이었다.

이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냉혈한(冷血漢)은 결국

'슬픈 노래를 불러야겠다'며 물러났다.

 

마라(Mara)의 이런 무수한 계교(計巧)와 술수(術數)는

결국 백안불(白晏佛)의 사기(士氣)를 꺽고

인류구원(人類救援) 사업(事業)을 포기(抛棄)하고

진리(眞理)의 가르침[佛法]을 펴지 못하게 하는데 있었다.

 

한편 석가부처님(釋迦佛)은

마라(Mara)와의 대전쟁(大戰爭)을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정각(正覺)을 이루신 이후(以後)

7년 동안 겪으셨다.

 

[석가부처님의 경우]

 


[1]

슬프다 이 삶이여

너에게 패배(敗北)하고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나는 저 죽음의 길을 택(擇)하겠노라

                     <숫타니파타 제440장>

['너'는 마라(Mara)이고 '나'는 석가부처님]

 


[2]

저기 악마(惡魔)의 대군단(大軍團)이

사방(四方)에서 쳐들어오고 있다.

나는 그의 군대(軍隊)를 맞아 기꺼이 싸우리라.

그는 결코 나를 이곳으로부터 단 한발자국도

물러서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숫타니파타 제442>

 


[3]

이 말을 듣고 악마(惡魔 Mara)는 말했다.

나는 7년 동안이나 당신을 좇아다녔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서

어떤 헛점도 발견(發見)할 수 없었다.

깨달음의 완벽(完璧)한 경지에 이른 자여.

                           
<숫타니파타 446장>

 

[4]

슬픔에 찬 마라(魔羅)의 옆구리로부터

힘없이 비파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마라(魔羅)를 따라왔던 마(魔)의 무리들도  

새벽의 어둠처럼 그렇게 쓸려가 버리고 말았다.

                       <숫타니파타 4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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