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5 (15:22) from 119.201.148.247' of 119.201.148.247' Article Number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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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담(前生譚) <22> 고독지옥(孤獨地獄)에 갇힌 슬픈 영혼(靈魂) - 천도(薦度)
전생담(前生譚) <22>
 
산안개 짙게 피어오르는
흐린 날
 
도량 뒷산인
관덕정(觀德亭) 산책로(散策路)를
따라 걷다보니......

애절(哀絶)하며
암울(暗鬱)한 기운이
애소(哀訴)하듯
한 곳으로 시선(視線)을 끈다.
 
눈을 들어 건네다 보니......
 
산안개 속에
흐릿한 형체(形體)가
드러났다 지워졌다 한다.
 
멈춰서 기다리자니......
 
 
안개 속을 표연(飄然)히 헤치고
부부(夫婦)인 듯 보이는
초라한 행색(行色)의 남녀(男女)가 보인다.
 
남자(男子)가 나를 보자
두 손을 모으고 하소연을 하려는 듯
공손(恭遜)이 서 있었고......
 
바로 그 옆에는
아낙인 듯 보이는 여자(女子)가
반 무릎을 꿇은 채
산발(散髮)한 머리를 드리우고
숨죽여 울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는 걸 알고
찬찬이 살펴보았다.
 
 
남자(男子)는
푸르스름한 회잿빛의
거친 누비 솜옷을 입고 있었는데
오래 입은 듯 낡고 바래져
이곳저곳 덧대어 기워져 있었다.
 
손질한 적이 없는 듯
수염과 머리는 멋대로 자라있었고
검은색과 푸르스름한 색의 천을 꼬아 만든
새끼줄 모양의 머리끈을
이마에 질끈 동여맨 모습이다.
 
같은 천의
누비 솜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더러워진 맨발이었다.
 
자세(仔細)히 보니......
얼굴에는 피가 튄 듯 피가 묻어 있었다.
피 묻은 두 손에서도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손에서 미끄러져 내린 듯
피 묻은 손도끼가
오른발 옆에 떨어져 있었다.
 
파르스름하게 날 선 도끼날이 섬직했다.
 
 
여자(女子)를 바라다보자
산발(散髮)한 머리를 들고
피눈물을 흘리며 애소(哀訴)하듯
서럽게 흐느꼈다.
 
흰 솜옷 저고리와
검정 누비치마를 입고 있었다.
 
여자의 옷에도
여기저기 핏방울이 튀어 있었다.
 
여자의 목에
선명(鮮明)한 손자국이 나 있었다.
 
 
그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눈이 말해준다.
 
내 두 눈은
그들의 슬픈 사연(事緣) 속을 따라간다.
 
 
<1>
 
태백산(太白山) 동(東)쪽
오지(奧地) 중(中)의 오지(奧地)인
이 두메산골 속에 자리를 잡은
 
심 만석(沈萬石)은
처음 이곳에 오게 된
어린 시절을 기억(記憶)한다.
 
 
그 해
심한 흉년(凶年)이 들어
 
고향(故鄕)에서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
대물림으로

소작농(小作農)이 되어 머슴처럼 일하고
보리쌀 몇 말을 받았지만
그것도 품삯이 아닌
이듬해 비싼 이자(利子)를 갚아야 하는,
꾸어주는 보리쌀이었고
 
갚을 길이 없었던 소작인(小作人)들은
머슴과 다를 바 없는 농사(農事)일로
삭신이 녹아내리도록
고된 노역(勞役)을 해야 했다.
 

지주(地主) 영감의 곡식창고(穀食倉庫)는
매년 소작인(小作人)들이
피땀으로 지은 하얀 쌀들이
높다랗게 가마니로 쌓여 갔지만......

 
아버지는
일을 해도 해도 늘어만 가는 이자(利子),
 
매일 멀건 보리죽을 쑤어 먹어도
턱없이 모자라는 보리쌀로
아이들조차 황달기(黃疸氣)로 누렇게 뜨고
 
마누라는 젖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백일(百日)도 못 넘긴 아기가 죽어
애창으로 묻고 오며......
 
이대로 간다면 자식(子息)들까지
악덕지주(惡德地主) 영감의
머슴으로 종년으로,
 
대(代)를 물려
고생할 것이 뻔하기에
그는 야반도주(夜半逃走)를 결심(決心)했다.
 
 
‘차라리 깊은 산(山) 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를 캐먹더라도
굶주리는 것에는 이력(履歷)이 났으니
 
허리 펼 틈도 없이 강도(强度) 높았던
소작인(小作人)의 노동력(勞動力)으로
일한다면 입에 풀칠은 하리라.
 
화전(火田)이라도 일구면
옥수수나 감자라도 먹을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도
마음 편히 살 수 있으리라.’
 
 
아버지의 결심(決心)은 굳어졌고
그렇게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해

마을을 빠져나와
몇날 며칠을
산(山)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산길이 끊어진 곳까지 오고도
앞장 선 아버지가 길을 내며
더 깊은 산(山)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잡목(雜木)을 베어내고
불을 질러 화전(火田) 밭을 일구었다.
 
나무껍질을 벗겨
송기죽을 끓여먹으면서도
소중(所重)히 가져온
옥수수, 조와 수수 이삭을 남겨
첫 농사(農事)를 지었다.
 
 
파종(播種)을 하고
잠시 한숨 돌린 아버지는
 
망태기를 지고
산에 올라 반나절을 씨름하며
커다란 칡뿌리를 캐왔다.
 
칡뿌리를 손질해 말려 가루를 내니
식량(食量)이 되어주었다.
 
아주 가끔씩
아버지가 얼기설기 놓은 덫에
토끼가 걸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처음으로 고깃국을 먹어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풀뿌리와 도토리 같은 산열매들과
고사리, 고비, 다래덩굴 잎 같은
산나물들을 부지런히 채취(採取)해
말리고 묵나물을 만들었다.
 
 
척박(瘠薄)한 환경(環境)이었지만
산(山) 속의 고요와 청량(淸凉)함이
 
이들 가족(家族)에게
평온(平穩)함이라는 일상(日常)의
소박(素朴)한 행복(幸福)으로 깃들었다.
 
 
악몽(惡夢) 같았던
소작인(小作人) 생활이
잠시(暫時)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 지난다.
 
딸을 가진 소작인(小作人)들은
딸이 열 네다섯만 되면
지주(地主)네 힘센 종복(從僕)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쳐 밀린 이자(利子)대신
강제(强制)로 딸을 끌고 갔다.
 
부모(父母)가 반항(反抗)하여
못 끌고 가게 할라치면

모진 몰매와 발길질이 이어졌고
반병신(半病身)이 되거나,
소작(小作)하던 농토(農土)마저 뺏기고

홧병(火病)을 삭이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
원한(怨恨)과 무력감(無力感) 속에 죽어갔다.
 
끌려간 딸들의 운명(運命)은
인물(人物)이 반반하면
지주(地主) 영감이나
망나니 한량(閑良) 아들들의
성(性)노리개로 시달림을 받았고
 
온갖 집안일, 부엌일 등
가사노동(家事勞動)의
이중고(二重苦)를 겪어야 했다.
 
그나마 그런 신세(身世)의 딸들은
어쩌다 먼발치에서
모습이라도 볼 수 있었지만

 
이웃 마을 지주(地主)의
종복(從僕)과 맞교환을 하기도 하고
 
토지(土地)나 산(山),
골동품(骨董品)을 사고파는
매매계약(賣買契約)에 끼워져
팔려가기도 했다.
 
이런 처지(處地)에 놓인
딸들과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생이별(生離別)이 되었다.
 
 
심지어는
마누라마저 이런 식으로 끌려 가
젖먹이 어린 아기들이
젖을 먹지 못해 굶어 죽어나가기도 했다.
 
아들들이라고 나을 것도 없었다.
지주(地主) 영감의
사노(私奴)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아버지는
소름이 끼치는 듯
잠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평상(平床)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옥수수밥을 먹는 아내와 딸들을 보자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微笑)가 번진다.
 
와락 아이들을 끌어안고 볼을 비빈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돈다.
 
마주앉은 아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도라지꽃 보다 더 곱다.
 
 
<2>
 
산(山) 속에 들어 온지도
어느덧 5년이 훌쩍 넘었다.

 
심 만석(沈萬石)의 아버지는
근면(勤勉)한 사람이라
화전(火田) 밭을 부지런히 가꾸고 넓혀갔다.
 
산(山)에서 캔 도라지며 더덕, 마,
장작 등을 장에 내다팔고
종자(種子) 곡식(穀食)을 구(求)해 왔다.
 
옥수수와 감자도 심어
식솔들을 굶기지 않고 먹일 수 있었다.
 
항상(恒常) 아버지는
장남(長男)인 심 만석(沈萬石)을
어디를 가든 데리고 다녔다.
 
 
10년 세월(歲月)이 그렇게 지나갔고......
 
아버지를 따라
타박타박 산길을 걸어 오르던
꼬마 아이가
이젠 열일곱의 청년(靑年)으로 장성(長成)해
 
장정(壯丁) 몫의
농사(農事)일을 거뜬히 해내
아버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지고 온 장작이며
잡곡, 산나물, 약초(藥草)들을
장날 장터에 나가 다 팔고나면
 
아버지와 장터 국밥집에 들러
평상(平床)에 마주앉아 국밥과
걸쭉한 탁배기 한잔으로
먼 산길을 걸어온 피로(疲勞)를 풀었다.
 
 
언제부터인가
심 만석(沈萬石)은 국밥집 딸인
분이만 보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빨간 댕기를 나풀거리며
귀찮아 하는 늙은 개 백구를 따라 다니며
국밥집 마당을 뛰어다니던
조그만 계집아이가
 
분홍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열다섯 어여쁜 처자(處子)로
성장(成長)해 있었다.
 
주모(主母)인 어머니를 도와
부엌에서 국밥 마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눈은 분이를 따라가고 있다.
 
어쩌다 분이가 마당을 가로질러
장독대로 장을 푸러갈 때면......
 
햇살이 분홍저고리에 떨어져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려 눈이 부신다.
 
 
아버지에게
속내를 들킨 것도 바로 그 날이었다.
 
아버지는 주모(主母)에게
분이를 며느리 삼아 딸처럼 아끼겠다며
혼사(婚事) 말을 꺼냈고
 
그들 부자(父子)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주모(主母)는
선선히 승낙(承諾)했다.
 
분이도 싫지 않은 듯
두 뺨에 살짝 분홍빛 꽃물 들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석(萬石)과 분이의 혼인(婚姻)이
성사(成事)되었다.
 
 
신혼(新婚)의 단꿈에 젖어
꿈같은 날들을 보낸다.
 
분이는 어릴 때부터
홀어미인 주모(酒母)를 도와
국밥집 일로 잔뼈가 굵은 터라
어린 나이에도
살림을 야무지게 잘 꾸려나갔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를 대견해 했고
 
아버지 역시
싹싹하고 활달(豁達)한 분이를
친딸처럼 예뻐했다.
 
 
<3>
 
분이가 시집 온지도 5년이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홀로 지낼 안사돈이 걱정인
시어머니는 장에 갈 때
한 달에 한 두 번은 분이를 딸려 보내
친정어머니를 뵙고 오도록 배려(配慮)했다.
 
주모(酒母)는 분이를 시집보낸 뒤
 
가끔씩 손님이 많은 장날이면
와서 설거지며 허드렛일을 도와주던,
 
‘형님 동생’하던
과부(寡婦)와 함께 살고 있어
홀로 남겨진 어머니에 대한
분이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어느 해 초여름
 
장터에 남사당(男寺黨)패가
들어왔다는 소식(消息)을
산(山)에 나무를 하러 온
동갑네기 친구에게 들은 만석(萬石)은
 
오랫동안 손자(孫子) 키우느라
장 나들이도 못한 어머니를 모시고
구경 가야겠다 맘먹는다.
 
 
장날이 돌아오자
 
어머니와 분이가 틈틈이 해온
산나물과 약초(藥草) 말린 것,
실한 장작들을 지게에 얹고
 
큰놈은 이제 다섯 살이 되어
할머니 손을 잡고 잘 걸었고
두 살 바기 작은 놈은 분이가 업고
온 식구가 장터 나들이에 나섰다.
 
 
풍물(風物)패가
온다는 소문(所聞) 때문인지
장은 여느 때보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웃 인근(隣近) 마을 사람들까지
다 장 구경을 온 것 같다.
 
운 좋게도
만석(萬石)의 장작과
분이의 약초(藥草)가 금시 팔려 나갔고
 
아이들에게 난생 처음 보는
알록달록한 큰 눈깔사탕을 사주고
어머니에게는 연푸른 옥빛 적삼을

분이에게는
난초(蘭草) 문양(文樣)이 그려진
참빗을 사주었다.
 
만석(萬石)은
자신(自身)은 이거면 되었다며
온 식구가 먹을 간 고등어 두 마리,
한손을 샀다.
 
 
주모(酒母)를 하는 친정어머니의
국밥집에 들어서자
밀려드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르렀다.
 
시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는 분이에게
 
“안사돈이 바쁘구마,
니가 가서 좀 거들어야 쓰것다.”
 
시어머니는
분이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흔쾌(欣快)히 업은 아이를 받아 안았다.
 
“엄니, 지가 후딱 가서
국밥 맛있게 말아 올리것구만요.
잠시만 지달리시오.”
 
 
놀란 친정(親庭) 어머니가
달려 나와 시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큰 손자(孫子)를 안아보고
작은 손자(孫子)도 안아본다.
 
밀려드는 주문(注文)으로
해후(邂逅)의 기쁨을 나눌 새도 없이
어머니와 분이는 익숙한 솜씨로
국밥을 말았다.
 
 
장터 공터에
쌓아놓은 모닥불과 등(燈)이 밝혀졌고
 
풍물패들의 풍물(風物)을 치는 소리가
요란(搖亂)히 울리기 시작했다.
 
꽹과리, 태평소(太平簫),
소고(小鼓), 북 ,장구, 징들이
각기(各其) 제 음색(音色)을 뽐내며
 
후끈 달아오른
초 여름밤의 열기(熱氣) 속에
기가 막힌 조화(調和)를 이루며 녹아든다.
 
모여든 사람들의 어깨가 들썩들썩
엉덩이가 씰룩씰룩
 
마당 한가운데로 쏟아져 나온,
 
주막(酒幕)에서 마신 탁배기 한 잔에
잔뜩 흥이 오른 사람들과
풍물패들이 한바탕 어우러져
춤판이 벌어진다.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은
민초(民草)들의 한마당 잔치는
그렇게 밤새 열기(熱氣)를 더해갔다.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분이에게
덩치 큰 종복(從僕) 하나가 다가와
탁배기와 안주거리를 시켰다.
 
양반 댁 귀하신 도련님이
이 주막(酒幕) 탁배기 맛이 좋다는
소문(所聞)을 들었다며 맛을 보시겠단다.
 
“별일두 다 있구먼......
양반님네 들도 풍물패 구경 나오시는감?”
 
분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종복(從僕)은
소매 춤에서 엽전(葉錢)을 꺼냈다.
 
“자, 닷냥이구먼,
소문(所聞)대로
이 주막(酒幕) 탁배기가 맛있으면
닷냥을 더 주시것다 했네.”
 
분이는 잠시 눈이 휘둥그래져
자신(自身)의 손바닥에 놓인 닷냥과
기다리고 선 종복(從僕)을 번갈아 쳐다보다
 
 
서둘러 술상을 차려 머리에 이고
종복(從僕)을 따라 나섰다.
 
“어디까지 간대?”
 
조바심이 난 분이가
불안(不安)해 하며 쭈뼛거리자
종복(從僕)은
손가락으로 정자(亭子)를 가르켰다.
 
“다 왔네. 저그 저 정자(亭子) 보이제?”
 
그제서야
분이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안도(安堵)의 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자(亭子)에는
세 명의 양반댁 도련님들이
이미 취기(醉氣)가 오른 듯
차림새가 방만(放漫)히 흐트러진 채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술상을 차려놓고
물러가려는데
그 중 한명이 잔을 내밀었다.
 
“자, 한 잔 따라 보거라!
장터 소문난 탁배기 맛 좀 보자구나.”
 
분이는 당혹(當惑)스러웠지만
얼른 이 상황(狀況)에서 벗어나려
서둘러 그들의 잔을 채웠다.
 
잔을 비운 그들 중 하나가
닷냥을 종복(從僕)에게 내밀었다.
 
“소문(所聞)대로
시원한 것이 맛이 좋구나.
약조(約條)한 대로 닷냥을 더 주겠다.”
 
그러자 다른 하나가
게슴츠레한 눈을 빛내며
닷냥을 더 내밀었다.
 
“주모(酒母) 딸년치곤
아주 반반하게 생겼구나,
엣다, 예까지 온 값이다.”
 
종복(從僕)은 닷냥을 더 받아
모두 열냥을 분이 손에 쥐어 주었다.
 
분이는
두 손에 놓여진 엽전(葉錢)을
확인(確認)하느라 큰 눈이 더 커진다.
 
나머지 하나가
닷냥을 다시 종복(從僕)에게 내밀며
분이에게 주라 눈짓을 한다.
 
“기왕 예까지 왔으니
우리랑 이 밤 놀아보자꾸나,
네가 잘 놀면
우리 셋이 닷냥씩 더 주겠다.”
 
 
분이는 놀라
“아, 아녀라, 속히 가봐야 허니......”
 
말을 맺지도 못한 채 깊숙이 절을 하고는
서둘러 돌아가려 몸을 돌려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장터를 향해 내달았다.
 
장터의 불빛이 아래로 보이자
비로소 안심(安心)이 되었다.
 
 
잠시(暫時)
숨을 고르느라 발걸음을 멈추자
뒤따라온 종복(從僕)이 그녀를 떠 매고
정자(亭子)를 향(向)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놀란 그녀가 발버둥을 쳤지만
그는 정자(亭子)까지 한달음에 올라가
그들 앞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정자(亭子) 아래로 흐르는
계곡(溪谷)의 차디 찬 물소리가
미친듯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분이의 비명(悲鳴) 소리를 삼켰다.
 
 
어머니와 장모(丈母),
아이들과 함께
흥에 겨워 구경을 하느라
 
당연(當然)히 분이가 옆에서
함께 구경할 거라 생각하여
분이가 없어졌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만석(萬石)은
 
뒤늦게 분이의 부재(不在)를 알고
부엌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그 곳에도 분이는 없었다.
 
장모(丈母)를 먼저 보내고
분이와 함께 뒷정리를 하고 있던
과부(寡婦)에게 분이를 보았나 물었다.
 
과부(寡婦)는
‘분이가 여지껏 돌아오지 않았냐?’며
되물었다.
 
 
그제서야
분이가 정자(亭子)로 갔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알 수 없는 불길(不吉)함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계곡(溪谷)의 물소리를 따라
오르기 시작할 무렵......
 
계곡(溪谷)으로부터 내려오는
종복(從僕)과 마주쳤다.
 
당황(唐慌)한 기색(氣色)의
종복(從僕)이
업고 있던 분이를 그 앞에 내려놓았다.
 
축 늘어져 혼절(昏絶)한 듯 보였다.
 
만석(萬石)은
놀라 그녀를 감싸 안았다.
 
종복(從僕)은
허리춤에서 엽전(葉錢) 서른 냥이 든
주머니를 꺼내 그 앞에 던져두곤
서둘러 자리를 피해 도망쳤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만석(萬石)은
엽전(葉錢)이 든 묵직한 주머니를
잠시(暫時) 노려보다 허리춤에 차고
늘어진 분이를 업고
주막(酒幕)을 향(向)해 서둘러 내려갔다.
 
주모(酒母)인 장모(丈母)가
기거(起居)하는 방(房)에 분이를 눕히고......
 
 
어머니와 함께 다정히 앉아
풍물놀이 구경에
흥이 난 장모(丈母)를 불러냈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웃어 보였다.
 
어머니는 분이가 만석(萬石)과
여지껏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보라고 손짓을 한다.
 
 
방(房)에 들어선 장모(丈母)가
호롱불에 불을 밝히고
누워있는 분이를 발견(發見)했다.
 
“야가 오늘 힘들었는 가비네,
벌써 잠들어 버린겨?
그러게 그냥 구경만 하랬더니......”
 
호롱불 심지를 돋우고
딸 분이의 자는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는 듯
 
주름진 미소(微笑)를 머금고
다가앉은 장모(丈母)가
 
입술이 터지고 얼굴에 멍이 들고
적삼이 찢어져 속살이 드러난,
온 몸에 멍이든
딸의 처참(悽慘)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이거이, 이거이... 뭔 일이 다냐?”
 
억장이 무너진 듯
가슴을 치던 장모(丈母)는

겨우 정신(情神)을 차리고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더운물과 수건을 가져와 핏자국을 닦고
옷을 갈아 입혔다.
 
 
누워있는 분이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사위와 장모(丈母) 사이에
깰 수 없는 무거운 침묵(沈黙)이 흘렀다.
 
 
침묵(沈黙)을 깨며
만석(萬石)이
엽전(葉錢)이 든 주머니를
장모(丈母)의 발아래 던졌다.
 
엽전(葉錢)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잠시(暫時)
미동(微動)도 하지 않고
엽전(葉錢)을 바라다보던 장모(丈母)가
 
무섭도록 경직(硬直)된 얼굴로
엽전(葉錢)을 하나하나 다 주워 모아
주머니에 넣고 입구(入口)를 조여 맸다.
 
“미친개에 물린겨!!
암만 미친개에 물린 몹쓸 꿈을 꾼겨!!”
 
장모(丈母)는 마치 자신(自身)을
설득(說得)하려는 듯
몇 번을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러다가 사위의 손에
엽전(葉錢) 주머니를 건네 쥐어주었다.
 
“이걸루 밭떼기라도 사는겨,
나두 모아논 돈이 솔챤케 있응께
보태면 집도 한 칸 살건디......
 
엄니도 이젠 늙어지셨쟎여,
마을로 내려오시는 것이 좋지 안것나?
적적허지도 않구, 아그들도 커가고 허니......”
 
사위의 어둡고 암울(暗鬱)한
무서운 눈을 보며
장모(丈母)는 소름이 돋는 듯
부르르 떨며 말이 잦아든다.
 
 
“이 육실헐 놈들을
내 다 확 불 싸질러 죽여버리겄어!!”
 
장모(丈母)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다리를 붙잡고
필사적(必死的)으로 만류(挽留)했다.
 
“만석(萬石)이, 자네까지 왜 그려?
딸년 하나 키우며
여즈껏 과부(寡婦)로 살아온 내가
자넬 귀헌 아들처럼 여기는데
개죽음 당헐러구 그려?
 
그 개만도 못한 것들 땜시
 
자네 마누라 과부(寡婦) 만들고,
눈에 넣어두 안아플 자네 새끼덜,
애비 없는 자식(子息) 만들려구 그려?
 
우린 다 살은 늙은이라 해두
저 어린 것들은 어찌 살라구?
 
우리 같은 민초(民草)들이
서슬 퍼런 양반들을 어찌 것나?
우리 같은 것들, 파리 목숨 인디......”
 
 
장모(丈母)는
느닷없이 사위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내가 자네 앞에 이리 꿇어 빌겄네.
제발 이번 일은 잊게나,
자네 모친(母親)이 알아 좋을거이
무에 있것나?
 
자네가 이러믄 내 딸도 죽어!!”
 
우리만 알고 무덤까지 가세.
아니, 우리도 싹 잊어버림세.
 
아주 나쁜 꿈을 꾼겨!!”
 
 
만석(萬石)은
무너져 내려 치밀어 오르는
무력(無力)한 분노(忿怒)를 삼키며
꺼이꺼이 오열(嗚咽)했다.
 
 
<4>
 
어머니는
분이가 넘어져 다친 걸로 알고 있었다.
 
상처(傷處)가
나아 운신(運身)할 때까지
 
국밥집을 하는
바쁜 장모(丈母)를 대신해
어머니가
분이와 아이들을 돌봐주며
함께 남아 있겠다 하여
 
어머니와 분이, 아이들을
장모(丈母)의 국밥집에 남겨두고
 
만석(萬石)은
홀로 산(山) 속 집으로 돌아와
주문(呪文)을 외우듯 수도 없이
되뇌이며......
 
‘그래, 악몽(惡夢)을 꾼겨!
미친개 헌테 물린겨!!’
 
낮이고 밤이고 미친듯이 일에 매달렸다.
 
 
달포가 지났을까 할 무렵
어머니와 분이, 아이들이 돌아왔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살이 오르고 좋아보였다.
 
분이도 약간 핼쑥해 보이긴 해도
이전의 건강(健康)한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목으로 어깨로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자
반가움으로 절로 큰 웃음이 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日常)의 나날이 지나갔다.
 
변(變)한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다만 만석(萬石)도, 분이도
서로의 눈을 피(避)한다는 것 말고는......
 
 
어머니는 저녁상을 물린 후
만석(萬石)의 눈치를 살피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애비야,
며늘아가 다쳐서 한 달포쯤
안사돈과 함께 지내며 느낀거인디
친 동기간 보다 낫드라.
 
아 그쪽이나 우리나
뭔 일가부치가 있남? 외롭쟎여.
 
그라고 안사돈이
딸 하나 밖에 없는디......쯪쯪

국밥집 물려줄
다른 자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헌디, 장사가 아주 쏠쏠히 잘 되드라구.
 
안사돈 말이
분이에게 국밥집을 물려주고 싶은디
마을로 내려와 살면 어떻것냐 하드라.
 
늙어져 국밥집 못하면 살라구
밭뙈기 딸린 집도 사논거이 있디야.
 
나도 귀경 가봤는디
아주 집이랑, 밭뙈기가 참 하드만.
 
사돈끼리지만
형님 동생, 한동기간처럼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자누만,
 
우리도 그렇지만
안사돈도 분이 하나밖에 없쟎여.
홀로 지내다 병(病)들면 누가 돌봐준디여?
 
너 아그들도
얼마나 이뻐라 허고
거둬 멕이는지 살이 통통 올랏다.”
 
 
어머니는
잠시(暫時) 말을 멈추고
만석(萬石)의 눈치를 살폈다.
 
만석(萬石)은
대답(對答)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연다.
 
“엄니 생각은 어떤디?”
 
어머니의 얼굴에 화색(和色)이 돌며
얼른 대답(對答)을 한다.
 
“아이구 야야, 나야 좋지, 좋구말구
아, 그당새 아그들도, 나도
안사돈이랑 정이 홈빡 들었지라.”
 
 
분이를 위해서도......
 
분이가
장모(丈母) 곁에서 국밥집을 하며
분주하게 보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만석(萬石) 일가(一家)는 마을로 내려왔다.
 
 
아담하고 너른 집에서
어머니는 담장 밑에 예쁜 꽃들도 심고
새로 엮어 올린 초가 지붕위로
박도 심어 올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쪽마루까지 쓸고 닦고
감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장독대의 장독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수시로 닦았다.
 
한 평생(平生)
이렇다 할 살림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어머니에겐 이 모든 살림살이들이
소꿉놀이에 푹 빠진 어린 계집아이들처럼
재미난 모양이다.
 
장모(丈母)가
장날 사온 복슬강아지랑
하루 종일 쫒아 다니며 노느라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담장 밖에서도 들렸다.
 
 
상처(傷處)에 새살이 돋듯
악몽(惡夢) 같았던 그 날이
그렇게 잊혀져가는 듯했다.
 
 
<5>
 
장모(丈母)를 도와
분이가 국밥집을 하면서
 
나무하러 갔던 만석(萬石)이
따다준 산나물 반찬들도 늘어나고
야무진 솜씨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덕에
국밥집은 나날이 손님이 늘었다.
 
 
초여름의 어느 장날
 
술손님이 많아 다른 날보다 늦도록
부엌에서 뒷정리를 한 분이가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마당으로 내려섰다.
 
어머니가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자고가라’ 했지만
 
잠들지 않고 기다릴
만석(萬石)과 시어머니를 떠올리고
부득불(不得不) 길을 나섰다.
 
멀지않은 동네 길이니
어머니도 말리지 않았다.
 
분이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술 취한 유생(儒生)들이
넓은 도포자락을 휘저으며
동네 어귀로 들어서고 있었다.
 
분이는 얼른 몸을 사리며
담벼락 쪽으로 붙어서
그들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들이 지나칠 때
술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다시 길을 재촉해
몇 걸음 걷기 시작했을 때
 
느닷없이
그들 중 한명이 뒤따라와
팔을 나꿔채 분이를 돌려 세웠다.
 
“그래, 그 때 그 계집이 맞네,
내 뭐라던가, 계집 보는 눈 하나는
내가 자네들 보다 한수 위일세.”
 
나머지 두 명의 유생(儒生)이 다가와
분이를 훑어보았다.
 
“맞아, 고 앙칼진 계집이구만.
어찌나 저항(抵抗)이 심하던지...쯪쯪
그러니 복날 개 패듯 맞았지......”
 
다른 한 명이 다가와
느글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래, 그랬지,
요런 독(毒)한 계집은 처음이었지,
혼절(昏絶)을 하도록 맞고도
저항(抵抗)을 했으니......
 
천(賤)한 주모(酒母) 딸년 주제에
사대부(士大夫)
청상과부(靑孀寡婦)보다
더 지독(至毒)히 굴다니 맹랑(孟浪)한 것!!”
 
 
그들은 약속(約束)이나 한 듯
음흉(陰凶)한 눈짓을 주고받으며
종복(從僕)을 불렀다.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르던
덩치 큰 종복(從僕)이 나섰다.
 
“이 계집을 정자(亭子)로 데려오너라.
인적(人跡)이 드문 길이긴 해도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구, 서둘러라.”
 
종복(從僕)에게 이르고
그들은 서둘러 정자(亭子)를 향(向)해
먼저 길을 떠났다.
 
 
그녀는 종복(從僕)이 다가오자
필사적(必死的)으로 저항(抵抗)했지만
 
완력(腕力)으로
그녀를 제압(制壓)한 종복(從僕)은
재빨리 입을 틀어막고 보쌈을 해
달리듯 마을을 빠져 나왔다.
 
 
분이네 집으로 달려온
유복자(遺腹子)를 키우며 사는
동네 과부(寡婦) 동이네가
 
마당에 멍석을 펴고 앉아
새끼를 꼬며 분이를 기다리고 있던
만석(萬石)에게 헐레벌떡 다가와
귀뜸을 한다.
 
“나가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 놓고
우리 동이를 위해 정성(精誠)을 올리는데
우리 집 담벼락 밖에서
소란(騷亂)이 일드라 말이제.
 
가만 들어보니 분이네 목소리여,
그 못된 양반댁 도령들이
보쌈을 해간겨,
정자(亭子)로 오라 허드마,
워쪄?... 워쪈뎌...?”
 
동이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만석(萬石)은 낮에
시퍼렇게 날이 서게 갈아둔 도끼를
들고 달려 나갔다.
 
 
한 걸음에
정자(亭子)로 올라갔다.
 
정자(亭子)에는
화등(花燈)이 켜져 있었고
기생(妓生) 셋이 술잔을 권하며
교태(嬌態)를 부리고 있었다.
 
“자, 이제 별미(別味)를 맛보자꾸나.
어서 풀어라!!”
 
종복(從僕)은
보쌈해온 분이를 내려놓고
입구(入口)를 풀어
상반신(上半身)이 나오게 하여
꿇어 앉혔다.
 
입에는 자갈이 물려있고
두 손은 뒤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잘 단도리 하여 왔구나.
허긴 보통 독(毒)한 계집이 아니니,
네 년들처럼 나긋나긋 하면 좀 좋겠느냐?”
 
기생(妓生)들이
헛웃음을 흘리며 맞장구를 쳐준다.
 
 
만석(萬石)의 눈에서 불꽃이 인다.
 
“개, 돼지만도 못한 놈덜,
네놈덜 악(惡)한 소행(所行) 잊느라
우리 분이가 얼매나 힘들었는디?
 
다 죽여불 것이다.
이 인두껍을 쓴 악귀(惡鬼)같은 놈덜아!!”
 
 
벽력(霹靂)같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든 만석(萬石)이
휘두른 서슬 퍼런 도끼날에
 
순식간(瞬息間)에
두 명이 목에서 피가 솟구치며
맥없이 쓰러졌다.
 
남은 양반 하나가
기생(妓生) 뒤에 숨어
치마폭에 머릴 묻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다.
 
도끼로 등을 찍자
비명(悲鳴)을 지르며 고개를 들었고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목을 쳐버렸다.
 
기생(妓生)들이
바들바들 떨며 ‘살려 달라’ 애원(哀願)한다.
 
“그려, 니들허고는
아무 원한(怨恨)이 없응게 가버려라!!”
 
 
오금이 저려 움직이지 못하는
기생(妓生)들에게는
아무런 관심(關心)도 없는 듯
 
그는 분이를 그대로 들쳐 메고
산(山)을 오른다.
 
 
비워둔 옛집 작은 방(房)에는
그가 손수 짠 멍석이
아직 그대로 깔려 있었다.
 
멍석 위에
분이를 내려놓은 만석(萬石)은
분이의 묶인 손을 풀어주고
입에 물린 재갈도 풀어준다.
 
그의 거친 손이
눈물로 범벅이 된 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의 손에 묻은 피가
분이의 얼굴에 묻는다.
 
분이의 눈물이
피와 섞여 피눈물이 되어 흐른다.
 
그의 눈에서도
애틋함으로, 안타까움으로
굵은 눈물이 흐른다.
 
그가 분이의 얼굴을
고이 감싸 어루만진다.
 
그의 거친 손길이
분이의 목을 잡았다.
 
분이는
가만히 목을 내어 맡긴 채
두 눈을 감는다.
 
눈물이 흐른다.
피의 강(江)이 되어......
 
 
그가 두 손에 힘을 준다.
 
마치 가녀린 풀 꽃잎처럼
분이의 목이 꺾여 축 늘어진다.
 
그는 그녀를 꼬옥 끌어안고
그대로 머문다.
 
시간(時間)이 멈춘 것처럼......
 
잠시(暫時) 후(後)
시퍼런 도끼날이
섬광(閃光)처럼 허공(虛空)을 가른다.
 
그가 그녀 위로 쓰러진다.
 
 
<6>
 
그렇게 그들의 시신(屍身)은
버려지듯
이곳에 가매장(假埋葬)되었고
 
그들 슬픈 영혼(靈魂)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徘徊)하고 있었던 거다.
 
그들 젊은 날의
봄빛 같은 추억(追憶)이 깃들었던
이 산골 풀마당이
 
그들을 차갑게 묶어두는
한(恨)스런
고독지옥(孤獨地獄 skt. Pratyeka-Naraka)이
된 것이다.
 
 
 
그들 부부(夫婦)의
슬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법문(法門)과 다라니(多羅尼)로
천도(薦度)를 시켜준다.
 
1892년
얼마나 오랜 세월(歲月)을
이 고독지옥(孤獨地獄 skt. Pratyeka-Naraka)에
묶인 채
 
끝없이 반복(反復)되는
비참(悲慘)한 악몽(惡夢)을 꾸고 또 꾸며
고통(苦痛) 받아왔을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들은 죄(罪)값을 치루었고
이제 풀려날 때가 되었음을
감지(感知)한다.
 
그들도 이제 내 말을 알아듣는다.
떠날 차비를 한다.
 
그들을 떠나보낸다.
빛 속으로......
 
 
인간계(人間界)로 윤회(輪廻)하여
그들은 다시
부부(夫婦)의 연(緣)을 맺을 것이다.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리겠지.
 
내생(來生)에선
부부(夫婦)가 해로(偕老)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의 못다 이룬 한(恨)을 풀게 되리라.
 
 
그들의 기구(崎嶇)한 삶이 왜냐구?
누군가가 또 묻는다면
그들의 또 다른 전생(轉生)을 봐야 할 것이다.
 
윤회(輪廻 skt. Samsara)의
돌고 도는 수레바퀴 아래서
부수어지고, 바수어지며
배우고, 소멸(消滅)되고 깨달아 갈 것이다.
 
 
해탈(解脫 skt. Vimoksa) 전(前)에도
다양(多樣)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해탈(解脫) 후(後)에도
다양(多樣)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해탈(解脫) 후(後)에는 더하여
영가(靈駕)들,
사연(事緣)을 지닌
슬픈 영혼(靈魂)들도 만나게 된다.
 
 
전(前)에는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요즘 들어
영적(靈的) 능력(能力)을 가진
헌신적(獻身的)인 무당(巫堂),
엑소시스트(Exorcist)들이 나와
활발(活潑)히 활동(活動) 하면서
 
사람들에게
베일(Veil)에 가려졌던
영적 세계(靈的世界)에 대한 무지(無知)를
어느 정도 벗겨주면서
 
영적(靈的)인 것에도 눈뜨게 했고
관심(關心)을 환기(喚起)시켰기에
 
이런 영가(靈駕)들과의 만남을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윤회(輪廻 skt. Samsara)의
주체(主體)가 되는
영혼(靈魂 soul)을 지닌 모든 이들이
도움을 필요(必要)로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고해(苦海 skt. Duhkha-arnava)에서,
윤회(輪廻 skt. Samsara)의
수레바퀴 속에서 빠져나와야 하니까......
 
대자유(大自由),
구원(救援 Salvation),
해탈(解脫 skt. Vimoksa)을
향(向)해 부단(不斷)히 나아가야 하니까......


출처: 안나불 미니홈피 '전생법문(前生法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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