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4 (18:22) from 114.199.254.123' of 114.199.254.123' Article Number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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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담(前生譚)  <23>  애증(愛憎)으로 얽힌 세 사람의 악연-이승과 저승을 가르다.
전생담(前生譚) <23>
 
흐린 날이다.
 
짙은 회 잿빛 구름 사이로
언뜻 언뜻
조각보처럼 드러나는 하늘빛
 
바람조차 고요해
풀벌레들의
작은 노랫소리까지 들려오는
 
여름 한낮의 풍광(風光)이다.
 
잠시 나무그늘 드리워진
평상(平床)에 앉아
한여름의 한가로움에 잠겨있을 때......
 
 
40대 후반 정도의
수염과 머리를 기른 한 남자가
황토물들인 개량 한복(韓服)을 입고
성큼성큼 들어선다.
 
‘옴마니 반메훔’이 새겨진
염주(念珠)를 손목에 두른 채
공손(恭遜)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여 반절을 하며
합장(合掌)으로 예(禮)를 갖춘다.
 
 
기 수련원(氣修練院)을 하고 있는
수행자(修行者)라
자신(自身)을 소개(紹介)한다.
 
오래 전(前)
자신(自身)이 직접 목격(目擊)하고 겪은
사건(事件)의 연유(緣由)를
지금까지 풀 수 없어
 
항상(恒常)
그 의문(疑問)을 품은 채 살아오다
 
인터넷 도량을 통해
백화도량(白華道場)을 알게 되었고
 
25년 동안 품어왔던 그 의문(疑問)을
드디어 풀 수 있으리라 믿어져
찾아왔다 한다.
 
 
그의 이야기 속으로
시간 여행(時間旅行)을 떠난다.
 
평소(平素)에 감겨져 있던
천안(天眼)을 떠
과거(過去) 속의 그 날로 들어가 본다.
 
 
♡.1
 
시인(詩人)이 되고 싶었던
문학청년(文學靑年) 소담(素潭)은
 
엄(嚴)하고 고루(固陋)한
부친(父親)의 강요(强要)로
법대(法大)에 진학(進學)하였지만
 
도저히
적성(適性)에 맞지 않아
국문과(國文科)로 전과(轉科)를 했는데
미처 한 학기(學期)를
마치기도 전(前)에 들통이 나......
 
처음으로
부친(父親)에게 항명(抗命)하다
결국 강제(强制)로
학교(學校)를 휴학(休學) 당하고
 
고시공부(考試工夫)나 하라며
지리산(智異山)에 방(房)을 구(求)해주고
 
온 방(房)을
법률 책(法律冊)으로 가득 채우고 난 후(後)
부친(父親)은
냉혹(冷酷)한 시선(視線)으로 쏘아보며
 
고시(考試)에 붙기 전(前)에는
집으로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며
 
낯선 산(山) 속 외딴 집에
그를 버리듯 내려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상경(上京)해 버렸다.
 
 
 
♡.2
 
홀로 남겨진 그는
무섭고 서럽고 막막(寞寞)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自己)처럼
지리산(智異山)에 들어와 있는
고시생(考試生)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 모두가
실제(實際) 죽기 살기로
고시(考試)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쪽방 고시원(考試院)에서
수년 간(數年間) 지내며 여러 차례
낙방(落榜)에 낙방(落榜)을 거듭하다
 
건강(健康)을 해(害)쳐
요양(療養)하러 온 사람부터
 
온갖 사연(事緣)들을 품은
무늬만 고시생(考試生)인,
 
자신(自身)처럼
20대 초반(初盤)의 젊은이부터
30대의 노총각 고시생(考試生)까지
 
다양(多樣)한
사연(事緣)의 사람들이
지리산(智異山)에 깃들어 있었다.
 
 
한여름 날 오후(午後)가 되면
 
고시촌(考試村)에 유일한 점방(店房)인
유통기한(流通期限)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과자 몇 봉지와 라면이 전부인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늘
과수댁(寡守宅) 평상(平床)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과수댁(寡守宅)이 손수 담근,
진한 탁배기 한 사발에
 
몇 안 되는
주민(住民)과 고시생(考試生)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항상(恒常)
술판에 중심인물(中心人物)은
그 마을의 ‘몽달귀신’이라 부르는
40대의 노총각 ‘몽달 씨(氏)’였다.
 
마을 어른들은
항상(恒常) 술에 취해 홀로 지내는
그를 ‘몽달이’라 불렀고
고시생(考試生)들은 ‘몽달 씨(氏)’라 불렀다.
 
몇 순배 술이 돌아가고
술동이가 바닥을 드러낼 때면
 
‘몽달 씨(氏)’가
대자(大字)로 뻗어 코를 곯며
평상(平床)을 다 차지하고 나서야
술판이 끝이 났다.
 
그런 소소(小小)한
일상적(日常的)인 날들이
하루하루 느리게 지나갔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별 변화(變化)가 없는
작은 촌락(村落)에서의 일상(日常)이......
 
 
문학청년(文學靑年)이었던
소담(素潭)은
점차 지리산(智異山)에서의 날들에
적응(適應)해 갔다.
 
지리산(智異山)의 풍광(風光)은
그의 시상(詩想)을 자극(刺戟)했고
 
이웃이 된 주민(住民)들과
고시생(考試生)들과도 잘 지낼 수 있었다.
 
그의 짓눌리고 피폐(疲弊)해졌던
신심(身心)도 많이 회복(恢復)되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3
 
그 이듬해 봄
 
외지(外地)에서
한 젊은 부부(夫婦)가 들어와
 
마을 뒤편 자그마한 야산(野山)에
염소를 방목(放牧)하여 키우며
자리를 잡았다.
 
 
평범(平凡)한 회사원(會社員)이었던
35세의 인수 씨(氏)는
 
과도(過度)한 업무(業務)와
승진(陞進)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다
 
사표(辭表)를 내고
퇴직금(退職金)으로 염소를 사
귀농(歸農)한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30세의 전업주부(專業主婦)로
동그란 얼굴에 살집이 통통한,
애교(愛嬌)스런 여자(女子)였다.
 
 
야산(野山)에 딸린
허름한 농가(農家)를 개축(改築)하여
이주(移住)를 했고
 
마을의 주민(住民)들과 고시생(考試生)
몇 명도 초대(招待)해 집들이도 했다.
 
 
소심(小心)하고 비사교적(非社交的)인
남편(男便)과는 달리
붙임성 있는 여자(女子)로 인(因)해
 
외지인(外地人)임에도
그들 부부(夫婦)는
쉬이 주민(住民)으로 받아들여졌다.
 
 
과수댁(寡守宅) 평상(平床)을
늘상 차지하고
아예 탁배기로 배를 채우는
40대의 노총각 ‘몽달 씨(氏)’는
 
새로 이사 온
그 도시 여자(都市女子)와
매일처럼 마주쳤다.
 
살짝 미소(微笑)를 띄고
눈인사를 하며 스쳐지나 가던
인수 씨(氏)의 아내......
 
 
♡.4
 
어느 날
여름의 끝자락......
 
 
소쿠리에 새참을 챙겨가지고
남편(男便)이 염소를 치는
야산(野山)으로 올라가며
 
탁배기 한 주전자를 사가느라
 
매일처럼
‘몽달 씨(氏)’와 마주치던 여자(女子),
인수 씨(氏)의 아내가
 
머리에 이었던 새참 소쿠리를
‘몽달 씨(氏)’ 앞에 내려놓더니
 
노릇노릇 두툼하게 부친 녹두전을
그의 탁배기 잔 옆에 내려놓으며
수줍게 말을 건넸다.
 
 
“안주 없이 술만 드시니......
녹두전 부쳐봤는데 좀 드시면서......”
 
여자(女子)는 멋쩍은 듯
서둘러 소쿠리를 이고
종종 걸음으로 야산(野山)을 향(向)해 갔다.
 
 
멍하니 여자(女子)의 뒷모습만
바라보던 그는
 
과수댁(寡守宅)이 다가와
녹두전을 손으로 찢어
자신(自身)의 입에 넣어 우적거리며
 
다시 한 조각을 크게 뜯어
그의 입 앞에 대고 흔들고서야
정신(精神)이 들었다.
 
“아, 뭐혀? 맛나구마.
‘몽달구신’ 뵈기가 안쓰러웠나 보네.”
 
 
입안으로
고소한 녹두전이 녹아내린다.
 
음식(飮食)다운
음식(飮食)을 먹어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까마득하다.
 
홀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거의 4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몽달 씨(氏)’는 집으로 돌아와
빈 방에 홀로 누웠지만
 
고소한 녹두전의 맛이
아직도 목구멍에 남아 있는 듯
군침을 삼켰다.
 
 
천장 가득
여자(女子)의 미소(微笑) 띤 얼굴이 가득하다.
 
냉랭(冷冷)하던 가슴 속으로부터
마치 냉골인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온기(溫氣)가 올라오듯
 
그런 따뜻하고
기분 좋은 열기(熱氣)가
가슴으로부터 치솟아 오른다.
 
 
 
♡.5
 
‘몽달 씨(氏)’는 일어나자마자
찬 우물물을 길어 세수를 했다.
내친 김에 머리도 감았다.
 
얼마 만에 하는 물 칠인지
기억(記憶)도 안 난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농을 뒤져
정갈하게 손질해 개켜놓은 옷을
찾아내 갈아입었다.
 
뿌옇게 먼지가 끼여
보이지 않는 낡은 거울을 닦아 비춰본다.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씩 웃어본다.
 
꽃단장(?) 하느라 시간이 꽤 흘렀다.
 
 
그는 조바심을 치며 뛰다시피
과수댁(寡守宅) 점방(店房)으로 내달았다.
 
인수 씨(氏)의 아내가
탁배기 한 주전자를 사 들고
막 돌아서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과수댁(寡守宅)이
두 눈을 놀란 토끼처럼
동그랗게 치뜨며 소리쳤다.
 
“아니 이게 누구여?
‘몽달구신’ 아닌가벼? 그러제?

아이구마!!
놀래부러, 홀라당 자빠지겄네.
무덤에서 너거 오매가 벌떡 일라것다.”
 
하이고마!! ‘새댁’ 이리 와보소!
이 ‘몽달구신’ 좀 보소!!
인쟈, 사람 꼴이 안 나는감?”
 
 
여자(女子)는
수줍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훨씬 좋아 보이네요.”
 
여자(女子)는
평소(平素)보다 더 활짝 웃어보이곤
종종 걸음으로 야산(野山)을 향(向)해 간다.
 
 
‘엄니, 봤어유?
여자(女子)가 날 보고 웃었어유.
뽀사시한 햇님처럼 말이라.’
 
그는 하늘에서
자신(自身)을 굽어보고 있을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向)해
속마음을 이른다.
 
 
과수댁(寡守宅)이
그의 등을 거칠게 쳤다.
 
“야야, ‘몽달구신’
헌디, 너 뭔 일이다냐......
너 혹시......암만 아닐겨......너..너,
저 여편네한테 맴 있는 건 아니제??”

 
그는 화들짝 놀라
크게 손 사례를 치며 부인(否認)했다.
 
“아녀, 아줌씨!!
뭔 말을 고따구로 한다요?”
 
‘하이고 저 늙은 백여시,
백년 묵은 구랭이 같은 할망씨
눈치 하나는......

아녀!! 넘겨집는거여, 암만.
 
쪽집게 당골네도 아니고
워찌 내 속마음을 알것어?’
 
 
그의
당황(唐慌)한 기색(氣色)을 보고
눈 꼬리를 치뜨며 말을 받았다.
 
“암만, 그러제?
나가 괜시렁 걱정하는겨?
 
헌디, 이 ‘몽달구신’아!!
 
나가 니 엄니 살아계실 때
‘행님, 동상’하던
정리(情理)로 하는 말인디,
 
남 여자(女子)한티 눈독 들이면
벼락 맞는 법이여!!
산신령(山神靈)님이 노(怒)하신당께.”
 
 
 
♡.6
 
‘몽달 씨(氏)’는
우산(雨傘)마냥 커다란 머위 잎에 싼
더덕 네 뿌리를 가슴에 품고
 
야산(野山) 올라가는 길 어귀,
서낭당(城隍堂) 나무 뒤에 숨어
여자(女子)를 초조히 기다렸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 때문인지
열기(熱氣) 오르는 황토(黃土) 길을
뚫어지게 쳐다보노라니......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리는
후끈한 열기(熱氣)로 어질어질
현기증(眩氣症)이 났다.
 
 
그 때
마치 신기루(蜃氣樓)처럼
 
새참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탁배기 주전자를 든 여자(女子)가
어릿어릿 나타났다.
 
그는 다짜고짜 달려 나가
여자(女子) 앞에
머위 잎에 싼 더덕을 불쑥 내밀었다.
 
한 손으로는
머리에 인 새참 소쿠리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탁배기 주전자를 든
 
여자(女子)가
머위 잎에 싸여진 더덕과
남자(男子)를 번갈아 바라보며
수줍게 웃는다.
 
 
그제서야 그는
얼른 머리에 인 여자(女子)의
새참 소쿠리를 받아 내려놓았다.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쉬어가는
여자(女子)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흰 목덜미를 타고 흐른다.
 
 
연분홍빛 모시 적삼이
진달래꽃처럼 곱다.
 
짙은 쪽빛 물들인
올이 굵은 삼베 남치마가
폭포수(瀑布水)처럼 깊고 시원해 보인다.
 
 
‘참 곱기도 하구마,
워찌, 이리 색시가 곱다야?
선녀(仙女) 같구마,
암만 선녀(仙女)여, 선녀(仙女)!!’
 
 
넋 놓고 쳐다보는
그의 시선(視線)이 민망(憫惘)했던지
여자(女子)가
머위 잎에 싼 더덕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저 주실라구요? 뭔데요?”
 
 
정신(情神)이 든 그는
얼른 머위 잎에 싼 더덕을 내밀었고

마주 내민 여자(女子)의 손을
자신(自身)도 모르게 덥석 쥐고 있었다.
 
잠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여자(女子)가 수줍게 손을 뺐다.
 

그는
당황(唐慌)하여 횡설수설(橫說竪說)......
 
“산 더덕이여요, 더덕...
나가 산에서 캔거구만요......
향(香)이 기막히지라, 저...거시기...
난중에 또 캐다 줄것잉게......”
 

“고마워요, 잘 먹을께요.”
 
여자(女子)는
수줍은 미소(微笑)로
가볍게 목례(目禮)를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야산(野山)을 향(向)해 가버렸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그는 여자(女子)를 위해
산 더덕이며 산열매, 약초(藥草),
야생화(野生花) 꽃다발......
 
그가 구(求)할 수 있는 것,
그가 줄 수 있는 것을 주었다.

여자(女子)는
더덕으로 장아찌를 담궈
조그만 단지에 넣어 그에게 주었다.
 

그렇게 그 둘의
우정(友情)인지 사랑인지
경계(境界)가 모호한,
 
위험(危險)한 만남이
여름 내 아슬아슬 이어져 왔다.
 
 
 
♡.7
 
여름의 끝자락......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참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탁배기 주전자를 들고

염소를 방목(放牧)하는
남편(男便)이 있는
야산(野山)으로 올라간 여자(女子)는
 
다짜고짜 여자(女子)의 손에서
탁배기 주전자를 거칠게 뺏어들고
 
주전자 째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
빈 주전자를 거칠게 내팽개치고는
 
독사(毒蛇)처럼 쏘아보는
남편(男便)의 냉혹(冷酷)한 눈길을
마주해야 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냉기(冷氣)로
소름이 돋았다.
 
 
느닷없이
남편(男便)이 뺨을 후려 갈겼다.
여자(女子)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남편(男便)은
쓰러진 여자(女子)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다시 두 차례나 세게 뺨을 쳤다.
 
입술이 터지며 입안에 피가 고였다.
 
 
도시(都市)에 살 땐 없었던
처음 겪는 남편(男便)의 폭력(暴力) 앞에
억장이 무너진다.
 
“이 여편네야,
처신(處身) 똑바로 하고 다녀!!
 
동네 병신 ‘몽달구신’인가
하는 놈하고 친하다며?
 
바람피울 주제도 안 되는
맹꽁이 같은 여편넨 줄은 안다만,
당신 주제를 알아야지!!
 
당신이 뭔 사회복지사(社會福祉士)라도
되는 거야? 뭐야?
앞으로 주제넘게 나대지 마라!!
 
한 번 더 사람들 구설(口舌)에
오르내리는 날엔
그 ‘몽달구신’인가? 뭔가? 하는 놈을
내 아주 죽여 버릴 테니까!!”
 
 
여자(女子)는
남편(男便)의 폭력(暴力)으로
오기(傲氣)가 생겼고

발악(發惡)을 하듯 소리쳤다.
 
 
“‘몽달구신’이라구? 병신이라구?
그래, 그런지도 모르지.
 
하지만
야비(野鄙)하고, 저 밖에 모르는
독사(毒蛇)처럼 냉혈한(冷血漢)인
당신보다야??
 
훨씬 인간적(人間的)이고
따뜻한 사람이야.”
 
 
남편(男便)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 여편네가 죽을라구 환장을 했나?
그동안 오냐오냐 했더니
하늘같은 남편 알기를?? 감히??
 
너 오늘 죽어봐라!!
니가 죽도록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어디 병신새끼 편을 들어??”
 
 
남편(男便)의 폭력성(暴力性)이
폭발(暴發)했다.
 
그동안 철저(徹底)히
숨겨져 왔던 폭력성(暴力性)이
잔인(殘忍)하게 드러난 것이다.
 
 
 
♡.8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서야
여자(女子)는 눈을 떴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몽달 씨(氏)의 목소리가
남편의 목소리와 섞여 들린다.
 
“내 마누라가
걱정 되서 기웃거리는 거요?
 
여기 이렇게 남편(男便)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몽달 씨(氏)가 왜?
내 마누라 걱정을 하는 거요?”
 
 
몽달 씨(氏)의 목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
 
 
“아하!! 오해라!! 그렇지요, 그렇소.
내 마누라, 내가 길들여야지,
 
난 사람들 구설(口舌)에 오르내리는 건
아주 딱 질색이거든.
 
몽달 씨(氏)랑 내 마누라랑
구설(口舌)로라도 얽히는 게 싫거든.
 
그래서 내가 버릇을 고치느라
아주 막 패줬지.
 
이번에는 주먹으로 때렸지만
다음에 또 구설수(口舌數)에 오르면
 
그 땐 아주 장작으로 패서
반쯤 죽여 놀거야.

그래도 뜬소문이 돌면
그 땐 아주 죽여 버릴거구.”
 
 
살기등등(殺氣騰騰)한
그의 착 가라앉은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주눅이 든 몽달 씨(氏)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무 소리도 못하고 돌아갔다.
 
 
♡.9
 
몽달 씨(氏)는
먹지도 자지도 않더니
시름시름 병(病)이 들었다.
 
동네 사람들은
상사병(相思病)이라 수군거렸다.
 
 
소문(所聞)을 들은 인수 씨(氏)가
문병(問病) 차 찾아왔다.
 
“내 마누라는
아주 잘 지내고 있수다.
 
마누라와 북어는 사흘드리로 패야
나긋나긋해 진다더니만
옛말 그른 것 하나 없습디다.
 
내 아예
염소몰이 할 때 쓰는 회초리를
열 댓개 실하게 만들어다 방에 쌓아놓고
사흘드리로 마누라를 패고 있소.
 
이젠 아주 나긋나긋해졌지.
 
그래도 형씨와 얽혔다는 게
술만 먹으면 생각나
기분이 영 나쁘더란 말이지,
 
그래서 여전히
회초리로 인정사정없이 패고 있지.
 
그럼 좀 기분이 나아지거든.
형씨도 어서 털구 일어나야지”
 
 
그는 야비(野鄙)하게 비아냥거리더니
툇마루에 놓고 들어온 물건을
그 앞에 들어다 놓았다.
 
소주 댓병(大甁)이 가득 든 박스를
통째로 그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내 성의(誠意)니,
한잔 하면서 잘 지내봅시다.”
 
 
인수 씨(氏)는 잠시
살기(殺氣) 띤 눈을 희번덕거리며
 
괴로워하는 몽달 씨(氏)를
냉혹(冷酷)하게 쏘아 보았다.
 
그리고는
문(門)을 쾅 닫고 가버렸다.
 
 
몽달 씨(氏)는
여자(女子)가 겪는
고초(苦楚)를 떠올리자

가슴이 너무 아파 흐느껴 울었다.
 
모든 것이
자기(自己) 때문이라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한참을 꺼이꺼이 목 놓아 울다
지쳐갈 때......
 
그의 눈앞에
소주 댓병(大甁)이 가득 든
술 상자가 보였다.
 
그는 독(毒)한 소주(燒酒)를
댓병 째 병나발을 불어 단숨에 마셨다.
 
한 병, 두 병 , 세병......
 
 
정신을 잃도록 마시고......
깨어나면 다시 마시고......
 
그렇게 몇날 며칠
마시고 또 마시었다.
 
소주 댓병(大甁)이
가득 든 술 상자를 모조리
몽땅 비워 마셔버린 것이다.
 
 
 
과수댁(寡守宅)이
며칠 째 보이지 않는 그가
걱정이 되어 찾아와 보니
 
문지방을 베고 잠자듯 죽어 있었다.
 
온 방(房)에는 빈 소주병이,
그것도 소주 댓병(大甁)이
한 상자 분량이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몽달 씨(氏)의 어이없는 주검은
산동네에
흉흉(凶凶)한 소문(所聞)으로 떠돌았다.
 
인수 씨(氏)가 고의(故意)로
술 상자를 몽달 씨(氏)에게 주어
죽게 했다는......
 
 
 
♡.10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後)......
 
1년 남짓 지날 무렵
 
 
마을을 온통 충격(衝擊)으로
몰아넣는 사건(事件)이 발생(發生)했다.
 
 
야산(野山)에 염소를 방목(放牧)하여
키우던 인수 씨(氏)가
 
그 여름의 끝자락에서
자신(自身)의 아내를 사냥총으로 쏴서
살해(殺害)한 것이다.
 
 
경찰(警察)에 잡혀가는 그를 보며
마을 사람들은 물론 고시생(考試生)들도
경악(驚愕)했다.
 
인근(隣近) 마을까지
소문(所聞)이 암암리(暗暗裡)에 퍼져 나갔다.
 
 
그 사건(事件)의 한복판에 있어
사건(事件)의 전말(顚末)을
듣고 보고 했던 그,
 
시인(詩人)이 되고 싶었던
문학청년(文學靑年) 소담(素潭),
 
나를 찾아온 그가
궁금해 하는 사연(事緣)의 전말(顚末)이다.
 

왜 인수 씨(氏)는
몽달 씨(氏)가 죽었음에도
 
그 이후(以後)
자신(自身)의 아내를 총(銃)으로 쏘아
살해(殺害)했는지??
 
25년 동안 품어왔던 그 의문(疑問)을
풀어달라 했다.
 
 
 
♡.11
 
그들의 얽히고설킨
애증(愛憎)과 원한(怨恨)을
원리(原理)를 풀어 본다,
 
몽달 씨(氏)는
자신(自身)의 죽음에 대해
명확(明確)히 인지(認知)하지 못한 채
술에 취(醉)해 죽었다.
 
 
혼몽(昏懜)한 상태의 영혼(靈魂)이
 
고독지옥(孤獨地獄)에 해당하는
이승의 원한(怨恨) 서린
장소(場所)를 떠나지 못하고 있어
방황(彷徨)하다가
 
죽기 전(前)
자신(自身)이 가장 애착(愛着)했던
여자(女子)를 기억(記憶)했고......
 
 
어떻게든
악독(惡毒)한 남편(男便)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줘야겠다는

강(强)한 일념(一念)으로

그들 부부(夫婦)가 사는 집을 찾아갔고......
 
 
여전히
남편(男便)의 폭력(暴力)과
학대(虐待)에 시달리는 여자(女子)를 보자
 
어떻게든
구(求)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자(女子) 주위를 맴돌면서
비록 영혼(靈魂) 상태이지만
 
애틋한 정(情)을 쏟으며
위로(慰勞)하려 애썼다.
 
 
남편(男便)의 폭력(暴力)과
학대(虐待)에 시달리면서
 
여자(女子)의 영혼(靈魂)도
쇠약(衰弱)해지고 지쳐갔고
삶의 의지(意志)를 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渦中)에
 
자신(自身)에게
따뜻한 진심(眞心)을 쏟아주었던
몽달 씨(氏)를 그리워했다.
 
저승과 이승이 갈리고
죽은 자와 산자로 갈리었지만
 
몽달 씨(氏)의
사랑과 관심(關心)은
여자(女子)의 주변을 맴돌며
항상(恒常) 함께 하였고......

 
어느 날엔가
드디어 여자(女子)는

몽달 씨(氏) 영혼(靈魂)의
존재(存在)를 감지(感知)했고......
 
그를 애타게 찾았다.
 
 
그에게
이승에서 못한 인연(因緣)
저승에서라도 맺자며
 
자신(自身)을 데려가 달라고
울며 속삭이기도 했다.
 
 
몽달 씨(氏)는
자신(自身)의 몫까지
여자(女子)가 행복(幸福)하게 살아주길
진심(眞心)으로 바랬지만......
 
상황(常況)은
더 악화일로(惡化一路)였다.
 
 

천둥 번개가 내리치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이었다.
 
 
멧돼지 사냥을 나갔다 돌아온
술 취한 인수 씨(氏)가
 
사냥 총 개머리판으로
그의 아내인 여자(女子)에게
무자비한 폭력(暴力)을 휘둘렀다.
 
여자(女子)는
총구(銃口)를 잡고
“차라리 죽이라”며 악(惡)을 썼다.
 
 
여자(女子)의 남편(男便)은
 
“내가 못 쏠 줄 아냐?
그 머리통을 날려 보내고
가슴팍에 구멍을 내 주겠다”며
 
위협(威脅)을 했다.
 
 
몽달 씨(氏) 영혼(靈魂)은
위기(危機)를 느끼고
 
어떻게든
여자(女子)를 구(求)하려고
총구(銃口) 앞을 막아서서
 
자신(自身)의
존재(存在)를 드러내려 애를 썼다.
 

“아, 아니.. 넌.....
‘몽달 씨(氏)?’ 아니 ‘몽달구신’?
넌..넌, 죽었쟎아,
진짜 귀신(鬼神)이라도 된 거냐?”
 
 
어찌됬건 그의 눈에도
몽달 씨(氏)의 영혼(靈魂)이
보이는 모양이다.
 
몽달 씨(氏)는 두 팔을 벌려
몸으로 그의 총구(銃口)를 막으려 했다.
 
 
“어쭈!! 이 ‘몽달구신’이
감(敢)히 내 앞을 막아서?
 
내가 너 살았을 적에도
귓구멍에 못대가리가 박히도록
말했을 텐데.
 
내 마누라라고!!
 
내가 패죽이던 말던
총알을 내마누라 머리통에 박던 말 던,
네 놈이 뭔 상관(相關)이냐구?
 
내가 오늘 네 놈을
아주 총알을 박아 조각을 내주마!!
 
네놈이 ‘몽달귀신’이든 뭐든
박살을 내주마.”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에
몽달 씨(氏)는
온몸으로 그의 총알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총알은......
 
몽달 씨(氏)의
영혼(靈魂)을 관통(貫通)해
그대로 여자(女子)의 가슴에 박혔다.
 
 
머리에도 가슴에도,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인수 씨(氏)는 몽달 씨(氏)를 향(向)해
총(銃)을 난사(亂射)했다.
 
 
몽달 씨(氏)는
온몸으로 총알받이가 되어
여자(女子)를 구(求)하려고 애썼지만
 
총알은 그대로
그의 영혼(靈魂)을 관통(貫通)하여
여자(女子)에게 박혔다.

 
그렇게 여자(女子)는
수십 발의 총알을 맞고 즉사(卽死)했다.
 
 
 
♡.
 
몽달 씨(氏)와 여자(女子)는
비록 영혼(靈魂)의 상태이지만
귀신(鬼神)이 되어 두 손을 맞잡고
 
인수 씨(氏)의 눈앞에서
 
푸른빛이 보이는
긴 터널을 향(向)해 가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본 그들
한 여자(女子)와 두 남자(男子),
 
세 사람......
‘슬픈 인연(因緣)’의 전말(顚末)이다.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 선......
 
함께 저승길에 오른
몽달 씨(氏)와 여자(女子),
 
이승의 감옥(監獄)에서
아내 살인범(殺人犯)으로
옥고(獄苦)를 치루고 있는 인수 씨(氏)......
 
 
이들의 악연(惡緣)이
내생(來生)과 내생(來生)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 강(强)한 애증(愛憎)의,
집착(執着)의 고리를
뉘라서 끊어 줄 수 있으리?

 
이제 그대들의 숨겨졌던
모든 진실(眞實)을 내 밝혔으니
 
모든 은원(恩怨)을 내려놓고
새로운 여행(旅行) 길을 준비(準備)하라!!

 
이 생(生)의
여행(旅行)에서 배운 것들을 통(通)해......
 
 
출처: 안나불 미니홈피 '전생법문(前生法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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