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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담(前生譚) <24>고부(姑婦)-세상 법(世上法)으로 풀지 못한 살인(殺人) 미스테리
고부(姑婦)-세상 법(世上法)으로 풀지 못한
살인(殺人) 미스테리(Mystery)

 
전생담(前生譚) <24>
 
가랑비가 오락가락
안개이슬 같은 가는 빗방울을 뿌린다.
 
송글송글 맺히는 안개비를 맞으며
 
도량 안을 한 바퀴 도는
짧은 산책길에 나선다.
 
 
백화당(白華堂) 연못 주위로
작은 풀꽃이 아스라이 피어났다.
 
손톱만큼
작은 연꽃을 닮은 풀꽃이다.
 
하양, 빨강분홍의 꽃들이 무리져 피어
 
조금 떨어져 보면
하양, 빨강분홍 꽃안개가
가는 이슬방울 머금어 살폿 내려앉은 것 같다.
 
주홍빛 동자꽃과
연보랏빛 들국화, 하얀 취꽃,
노란 달맞이꽃......마타리, 물봉선, 달개비......
 
가을 꽃들이 어우러져 꽃길이 된
덕인당(德仁堂) 오솔길에 접어들 때......
 
 
♡.1
 
마주 올라오는
30대 중반의 여자(女子)와 마주쳤다.
 
나를 본 여자(女子)가
두 손을 모아
공손(恭遜)히 합장(合掌)으로 인사를 한다.
 
덕인당(德仁堂)
마당 평상(平床)에 앉아
아름드리 자두나무를 올려다 보니
 
수줍은 각시
봉숭아 꽃물 들인 고운 손톱처럼
나뭇잎 끝부터 살짝 단풍(丹楓)이 든다.
 
 
어디서부터
말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잔뜩 찌푸린 여자(女子)와 눈이 마주치자
 
그 눈 속에서
혼란(混亂)과 공포(恐怖)가 뒤섞인
어두움을 본다.
 
 
내가 미소(微笑) 지으며
가만히 이제 막 단풍(丹楓)이 들기 시작하는
아름드리 자두나무를 가리켰다.
 
여자(女子)는
내 손 끝을 따라
자두나무의 단풍(丹楓)을 발견하더니
한숨처럼 감탄사를 토한다.
 
“오매, 단풍 들것네.
여긴 산(山) 속이라 벌써 단풍(丹楓)이 드네요.”
 
웃고 있는 내 눈과 마주친
여자(女子)가 비로소 깊은 한숨을 쉬며
긴장이 풀린 듯 말문을 연다.
 
 
대구(大邱)에 4대(四代)가 모여 사는 집의
맏며느리인 전업주부(專業主婦)라
자신을 소개한다.
 
“올 봄
시조모(媤祖母)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집안에 무서운 일들이 벌어졌지요......”
 
여자(女子)는
잠시 말을 끊고 소름이 끼친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자(女子)의 이야기는
 
시조모(媤祖母) 사후(死後)
 
장남(長男)인 남편이 하던,
가내 수공업 수준이지만
꽤 짭짤한 수익(收益)을 올리던
낚싯대 만드는 사업이
 
갑작스레 기울어
결국 부도(不渡)를 내고
남편은 허구헌날 소주병을 끼고 산다 했다.
 
하나뿐인 노처녀 시누이도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약간 절긴해도
 
약사(藥師)라
혼담(婚談)이 오갔고
 
양가(兩家) 가족이 모여
간소(簡素)하니 약혼식(約婚式)을 올리고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약혼자(約婚者)로부터
아무런 이유(理由)도 없이
갑작스런 파혼 통고(破婚通告)를 받았다 했다.
 
남편의 부도(不渡), 시누이의 파혼(破婚),
연이어 닥치는 집안의 우환(憂患)으로
정신(精神)이 없었는데......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작년(昨年) 공직(公職)에서
정년퇴직(停年退職)을 한 시부(媤父)는
평소 내성적(內省的)이고 조용한 성격이라
 
퇴직(退職) 후에도
정원(庭園)을 손질하고 분재(盆栽)를 하며
평온한 일상(日常)을 보냈다 한다.
 
 
그런데 올 봄
시조모(媤祖母)가 돌아가신 후부터
갑자기 돌변(突變)하여
시모(媤母)를 무자비(無慈悲)하게
폭행(暴行)한다 했다.
 
어릴 때부터 한번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暴行)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며 남편도 괴로워했다.
 
 
그런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시부(媤父)가
시모(媤母)를 폭행(暴行)하기 시작하면
 
눈빛이 무섭게 변한
그 살벌(殺伐)한 기세(氣勢)에 눌려
 
며느리인 자신(自身)은 말할 것도 없고
시누이도, 남편조차도
감(敢)히 말릴 수가 없었다 한다.
 
 
얼굴을 때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붓고 멍이 들어
얼굴색이 새카맣게 변할 정도의,
 
벽(壁)과 방바닥에까지
피가 튈 정도의 심한 폭행(暴行)으로
피투성이를 만들어......
 
 
온 가족이
공포(恐怖)에 질려 지낸다 했다.
 
매일처럼 반복되는
시부(媤父)의 시모(媤母)에 대한
무차별적(無差別的)인
살벌(殺伐)한 폭행(暴行)으로
 
온 가족이
숨죽이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며
손끝을 바르르 떤다.
 
 
공직자(公職者)로 퇴직(退職)한
시부(媤父)의 명성(名聲)에 누(累)가 될까
식구(食口)들끼리만 쉬쉬하며 지나다......
 
 
이번엔
이제 막 첫돌이 지난 어린 아들마저도
갑작스런 고열(高熱)에 시달려
열(熱)이 올랐다가 정상(正常)이 되었다가
 
오락가락
의사(醫師)들도 원인(原因)을 몰라
 
잘못하면
하나뿐인 아들까지 잃을까
심히 두려워 떨다
 
일단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친정(親庭) 모친(母親)과 여동생에게
아이 병간호를 맡기고 찾아왔다 했다.
 
 
가끔씩 시모(媤母)를 따라
절에 가기도 하여 스님께 물어봤는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기독교(基督敎)에 나가는 시누이를 따라
목사(牧師)님도 찾아가 봤는데
역시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예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했다.
 
 
♡.2
 
여자(女子)는 이야기를 마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암울하게 어두워진
여자(女子)의 두 눈동자 속을 관통(貫通)해
 
천안(天眼)이 열리고
임종(臨終)에 얽힌 비밀(秘密)을 풀러
시공(時空)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변(江邊)의
주택가 골목 끝에 위치한
작은 정원(庭園)이 딸린 이층집
 
청회색빛 철대문 사이로
담벼락을 타고 돋아난
장미넝쿨의 연초록 새잎들이
담장 밖까지 드리워졌고
잘 손질된 작은 정원(庭園)이 보인다.
 
현관 위로 난 다섯 계단을 올라
마룻바닥이 깔린 거실 겸 주방이 보였고
 
여자(女子)의 시모(媤母)가
작은 냄비에 흰죽을 쑤고 있었다.
 
참기름에 달달볶은 불린 쌀 위로
물을 붓고 놋숟가락으로 저어가며
흰죽을 쑤어
 
작은 소반에 간장종지를 얹어
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님요, 죽 끓여왔어요.
한술 뜨이소.
참기름에 달달볶아 고소한기라요.”
 
자리 펴고 누워있던 시조모(媤祖母)가
사납게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입술을 달싹거린다.
 
“네 이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내 죽에 네 년이
쥐약을 넣었는지, 농약을 풀었는지?
 
네 년이 열댓 될 때
내 홍두깨에 맞아 뒈졌어야 했는데......
에라잇 똥물에 튀길 년아!!”
 
이미
기력(氣力)이 쇠(衰)한터라
목소리가 되어 나오진 않았지만
 
시모(媤母)는
시조모(媤祖母)의 입술을 보고
그 말을 알아듣는다.
 
50년이 넘게 들어온 욕지거리이니......
 
 
시모(媤母)는
시조모(媤祖母)를 두 눈으로 흘겨보며
 
“이 노인네, 기운도 좋네.
아흔이 다 되도록 질기게두 살두만
사흘내리 굶고도
아직도 욕지거리할 기운이 남았네.
 
어디 맘대루 해보슈.
밥 한톨두 허투루 버리지 말라
나한테 몽둥이 찜질하며 가르쳤으니
 
이 아까운 흰죽 버리면 안 되갔지요?
내 대신 먹어주리다.”
 
 
시모(媤母)는 시조모(媤祖母)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거나 말거나
 
흰죽에 간장을 얹어
맛깔스럽게 한 그릇을 다 먹어치웠다.
 
 
묘한 쾌감이
전율(戰慄)처럼 등줄기를 타고 흘러
입가를 씰룩거리며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아 삼킨다.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나가는 옛 시집살이의 기억(記憶)들......
 
 
♡.3
 
50년이 넘는 세월을
독(毒)한 시조모(媤祖母)의
욕지거리와 손찌검에 시달리며
 
서럽고 매운
시집살이를 해온 시모(媤母)는
 
노환(老患)으로
자리 보존하고 누운 시조모(媤祖母)가
신기(神奇)할 지경이다.
 
강단(剛斷)있는 몸으로
삼시 세끼 고봉으로 소복하게 얹은
밥 한 그릇씩을 꼬박 꼬박 비워내며
 
고뿔조차 걸리지 않고
카랑카랑 버텨왔으니......
 
 
지난 겨울
화투 친구들의 전화(電話)를 받고
노인정(老人亭) 가는 길에
빙판(氷板)에 미끄러져
 
엉치뼈를 다쳐
병원(病院)에 2주간 입원(入院)했었는데
 
그 이후부터
체력(體力)이 뚝 떨어진 것이
예전 같지 않더니만
시름시름 몸살처럼 앓기 시작하더니
몸져누운 것이다.
 
 
기차 화통(汽車火筒)이라도
삶아 먹은 듯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듯 호령(號令)하며
욕(辱)을 해대던 시조모(媤祖母)가
 
목소리조차 잦아들어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라면 껌뻑 죽는 시부(媤父)는
싫다는 시조모(媤祖母)를
병원에 입원시켜 검사(檢査)를 했지만
별 문제(問題)가 발견되지 않았고
 
아흔 살의 노환(老患)이라 했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때부터
시조모(媤祖母)와 시모(媤母)는
 
단 둘만의
이상한 동거(同居)에 들어간 것이다.
 
 
시부(媤父)는 퇴직(退職) 후(後)
친구들 몇이 모여 차린
동네 복덕방으로 출근(出勤)했고
 
아들과 며느리는
집 근처 지하 공장에서
함께 낚싯대 만드는 일을 했다.
 
시누이도
동네 어귀에 있는 약국(藥局)으로 출근을 했다.
 
가족(家族)들이 아침식사 후
모두 뿔뿔이 직장(職場)으로 출근하고......
 
 
시조모(媤祖母)와 시모(媤母),
단 둘만이 집에 남았다.
 
그 때부터
그들의 잔인(殘忍)한 게임이
시작(始作)되었던 거다.
 
 
♡.4
 
며느리인 여자(女子)는
어린 아들이 유난히 보채
일찌감치 공장(工場)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평소(平素)의 낮처럼
대문(大門)이 방싯 열려있었고
현관(玄關) 계단을 오르자
 
커다란 거실 창(窓)을 통해
시모(媤母)가 흰 죽을 쑤어 상을 차려들고
시조모(媤祖母) 방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얼른 따라 들어가 상(床)을 받으려다
등에 업은 잠든 아이가 칭얼거려
선잠 깨어 시끄럽게 울까봐 달래며
 
창문(窓門)을 통해 안의 동정(動靜)을 살폈다.
 
 
시모(媤母)와시조모(媤祖母)의
묘한 기(氣) 싸움의 냉랭(冷冷)함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밖을 서성이며 지켜보다......
 
 
앓는 시조모(媤祖母) 면전(面前)에서
흰죽을 아귀아귀 먹어대는 시모(媤母)를 보고
충격(衝擊)을 받았다.
 
시조모(媤祖母)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죽 한 그릇을 뚝딱 비우더니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상을 들고 나가면서 한 소릴 한다.
 
“죽 한 그릇은 거뜬히 비웠고......”
 
상(床)을 들고 나가는데
시조모(媤祖母)가 걱정스러워
집에서 점심을 먹으러 들른 시부(媤父)와 마주쳤다.
 
 
“어머님은 좀 어떠시노? 점심은 자셨나?”
 
시모(媤母)는
시부(媤父)의 다급한 물음에
눈짓으로 빈 죽 그릇을 가르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잣죽을 쑤어 드렸더니 잘 드심니더.”
 
시부(媤父)는
빈 죽 그릇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도(安堵)의 한숨을 내쉬며
찡그렸던 미간(眉間)을 푼다.
 
 
시조모(媤祖母)의 얼굴에
노기(怒氣)가 충천(衝天)했다.
 
곁눈질로 시조모(媤祖母)를
흘겨보던 시모(媤母)는
짐짓 크게 한숨을 내쉬며 설레발을 친다.
 
“헌데... 어머님이 요즘 들어 오락가락 합니데이.”
 
시부(媤父)가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되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고?”
 
시모(媤母)는
걱정스러운 듯 울상을 지으며......
 
“아무래도 치매 끼가 있는 것 같습니더.
방금도 잣죽 한 그릇 다 자시고도
안 자셨다 바락바락 우김서 욕(辱)을 하심니더.”
 
 
며느리인 여자(女子)는
그 모든 것을 숨어서 지켜보며
시모(媤母)의 가증(可憎)스러움에
소름이 돋을 만큼 섬짓한 공포(恐怖)마저 느낀다.
 
밤새 고민을 했지만......
 
이런 무서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것 같고,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의 말을 더 믿을 터이니......
 
그렇게 무서운 날들이 하루 이틀 사흘......
지나기 시작했고......
 
결국 시조모(媤祖母)는 여드레 되던 날
두 눈을 부릅뜬 채......
굶어 죽었다.
 
이 무서운 살인(殺人) 현장(現場)을
매일(每日)처럼 목격(目擊)해야 했지만
결국 침묵(沈黙)할 수밖에 없었고......
 
 
♡.5
 
시모(媤母)는
시조모(媤祖母)의 시신(屍身)을 염(殮)할 때
친 아들인 시부(媤父)보다도
더 서럽게 통곡(慟哭)을 해댔고......
 
사흘 장(葬)이
끝나고 발인(發靷)을 하는 날은
관(棺)을 껴안고 통곡(慟哭)하다
실신(失神)까지 했다.
 
 
며느리인 여자(女子)는
그런 무서운 시모(媤母)를 지켜보며
사시나무 떨 듯
떨리는 몸을 진정(鎭定)시킬 수가 없었다.
 
시조모(媤祖母)의
장례식(葬禮式)이 끝난 후(後)
여자(女子)는 마치 학질(瘧疾)을 앓듯
몸을 떠는 지독한 독감(毒感)에 걸렸고
 
병간호(病看護)를 자처(自處)하는
시모(媤母)를 떠나 친정 오라비 집으로 가
사흘 낮밤을 앓아누웠다가......
 
닷새째 되는 날
데리러온 남편을 따라
마치
도살장(屠殺場)에 끌려가는 소처럼
시댁(媤宅) 대문(大門)을 들어섰다.
 
 
시조모(媤祖母)의 49재(齋)가 끝나고
절의 명부전(冥府殿)에서 나오는 순간
 
시부(媤父)가 갑작스레 쓰러져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평소(平素)에도 몸이 다부진 체격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49재(齋)를 끝내고
하산(下山)하여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시부(媤父)가 이상해지더니......
 
 
♡.6
 
내가
천안(天眼)으로 본 것을 이야기 하자
 
여자(女子)는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평상(平床)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리가 풀려 풀썩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아니, 그..그걸 어, 어떻게 아시나요?
아..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그, 그 무서운 일을......”
 
 
흙바닥에 내려앉은 여자(女子)를
부축해 평상(平床)에 앉히고
차(茶)를 마시도록 권했다.
 
여자(女子)의 얼굴이
놀라 하얗게 질려있었기에......
 
 
비록 이 살인(殺人)이
세상(世上) 법망(法網)은 피(避)해 갔지만
어찌 하늘 법망(法網)을 피(避)해 갈 수 있으리오?
 
 
차(茶)를 마시더니
정신이 돌아온 듯 눈을 빛내며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며 묻는다.
 
“시어머니가 왜 다 죽어 가는
아흔이 다 된 시조모(媤祖母)를
그렇게 굶겨 죽였는지 이해(理解)가 가지 않아요.
 
그냥 두어도
일주일도 더 버티지 못했을텐데......
 
왕진(往診) 온 의사(醫師)도
장례(葬禮) 준비를 하라 했는데......”
 
여자(女子)는 고개를 계속 갸우뚱거리며
나를 건네다 본다.
 
대답(對答)을 기다리는 듯......
 
 
♡.7
 
이번 생(生)에서 납득이 안 되는 문제(問題)들......
 
대기설법(對機說法)이 이루어진다.
천안(天眼)으로 이생(此生)을 거슬러
전생(前生)을 밝혀본다.
 
 
1932년 봄 지리산 골짜기......
 
화전민(火田民) 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화전(火田)을 일구고 숯도 구워 장날 내다파는
오지리 마을,
 
가난한 살림에
춘궁기(春窮期)가 닥치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친정아버지는
이제 막 열다섯이 된 딸을
보리쌀 서 말을 받고
말이 결혼(結婚)이지 종년처럼 팔아치웠다.
 
 
그때부터 독(毒)한 시모(媤母) 밑에서
온갖 학대(虐待)를 받으며
모진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사흘들이로
홍두깨로 맞아야 했고
매보다 더 무서운 건 배고픔이었다.
 
걸핏하면
하루 종일 일을 시키고
미처 그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밥을 굶겼다.
 
외아들에 홀 시어머니
둘의 밥상을 정성껏 차리도록 하여
밥상을 받고는
 
윗목 냉골에
어린 며느리를 꿇어 앉혀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모자(母子)가 둘이서 맛나게도 먹었다.
 
 
가끔씩 남편(男便)이
어린 아내가
왜 함께 밥을 먹지 않느냐? 물으면
 
“며늘아기는 아직 어린데다
식충이처럼 먹을 것을 밝혀
배고픔을 참지 못해 먼저 먹였다.”며
 
태연스레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밖에 모르는 효자(孝子) 아들은
어머니의 말이라면 무조건
거스르지 않았기에 그대로 믿었다.
 
 
하루 왼종일
강도 높은 노동(勞動)에 시달리느라
허리 펼 새가 없었고
 
너무 힘이 들어
잠시 허릴 펼라치면
 
시모(媤母)의 몽둥이가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여 바짝 마른
등짝을 후려쳤다.
 
거의 하루 종일 굶주린 채
밭일이며 부엌일, 삯바느질 일까지......
 
새벽부터 밤늦도록
잠시 꼬박꼬박 조는 것이 고작이었다.


 
 
♡.8

 
어느 햇빛 좋은 가을 날
 
시모(媤母)가
건너 마을 잔치 집에 마실을 간다기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어린 며느리는
몰래 뒤주에서 보리쌀 한 움큼을 내어
 
들킬 새라 솥단지도 쓰지 못하고
대나무 통을 잘라 보리쌀을 넣어
군불 때던 재에 묻어 익혀 먹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시모(媤母)가 들이닥쳤다.
 
“이런 도적년 보소!!
내 이럴 줄 알고 한걸음에 달려 왔더니만......”
 
바짝 독(毒)이 오른 시어머니는
 
부엌 바닥을 둘러보며
몽둥이가 될 만한 나뭇가지를 찾다
적당한 것이 없자
 
조금 전 막 아궁이에 집어넣은
불이 붙은 굵은 가지를 꺼내들고
때리겠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어린 며느리는
너무 무서워 뒷걸음질을 치며
부엌 밖으로 도망쳐 나오다
 
높은 턱에 걸려 넘어졌고......
 
 
뒤따라 나온 시모(媤母)가
손에 든 불 붙은 장작으로
어린 며느리의 등짝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며
세차게 등짝으로 떨어지던
불붙은 장작 몽둥이가
불꽃을 일으키며 저고리에 옮겨 붙었고
 
치마에도 머리카락에도
불똥이 튀며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어린 며느리가
흙바닥을 뒹굴며 ‘살려 달라’ 애원하며
마당 한 켠에 놓인 빗물 받는 항아리로 달려가자
 
뒤따라가 불붙은 장작으로
어린 며느리의 머리를 세게 후려쳤다.
 
“죽어, 죽어, 이 도적년, 식충이년,
똥물에 튀겨 죽일 년!!
 
여시 짓을 해서
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호리다니?
죽어라! 이년, 뒈져라! 이년”
 
이미 살인(殺人)의 광기(狂氣)로
눈이 돌아간 시모(媤母)는
 
불붙은 장작으로
쓰러진 어린 며느리를 미친 듯이 때렸고
 
진(盡)이 다하자 정신(情神)이 든 시어미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미동(微動)도 하지 않는
어린 며느리의 엉덩이 부분을
불붙은 장작 끝으로 찔러댔다.
 
“이년, 어디서 꾀병이냐? 냉큼 못 일어날까?”
 
치마에 불이 옮겨 붙었다.
불길이 치솟으며
온몸이 순식간에 화염(火焰)에 휩싸였다.
 
잠시 버둥거리는 듯싶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불길이 계속 인다.
시모(媤母)는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마치 아궁이에 불을 때고 지켜보고 있듯
 
그렇게 넋 놓고
어린 며느리가 불길에 타
재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9
 
다음 날 아침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놀다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온 아들은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아들을 보자 정신이 든 시모(媤母)는
갑작스레 울음보를 터뜨리며 아들 품으로 달려들며
큰 소리로 울먹이며 넋두리를 해댄다.
 
“아니, 며늘아기 고것이.. 내가 그리도 일렀건만.....
부엌에서 군불을 때다 졸지 말랬더니.....
졸다 그만 불이 났지 뭐냐?
 
제 옷에 불똥이 튀어 삽시간에 불이 붙어
내가 돌아와 보니 벌써 저리 되었지 뭐냐?
아이구 미련한 것!!”
 
 
아들은 충격(衝擊)을 받았지만
어머니가 무사(無事)한 것만으로도
불행(不幸) 중 다행(多幸)이라 여기며......
 
산(山) 속에
어린 아내의 불탄 시신(屍身)을 버렸다.
 
 
♡.10
 
이것이 내가
천안(天眼)을 통해 본 그들의 전생(前生)이다.
 
이번 생(生)과 닮아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의 역할(役割)이 바뀐 것이다.
 
여자(女子)의 시모(媤母)는
전생(前生)의 살해(殺害)된 어린 며느리였고
 
시조모(媤祖母)는 바로
전생(前生)의 악한 시모(媤母), 시어미였던 거다.
 
 
이번 생(生)에서
그들의 현재의식(現在意識)은
기억(記憶)을 하지 못하지만
 
아뢰야식(阿賴耶識 skt. Alaya-vijnana)은
그 모든 것을 낱낱이 기억(記憶)하여
기록(記錄), 저장(貯藏)하고 있다.
 
 
원한(怨恨)을 품고 죽은
살인자(殺人者)와 살해(殺害)된 자의
얽히고설킨 원한(怨恨)은,
 
그들의 마지막 순간(瞬間)은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
깊은 각인(刻印)을 남기고......
 
 
윤회(輪廻)를 했을 때
강한 끌림으로 다시 얽히게 되어
 
 
현재의식(現在意識)에선
기억(記憶)하지 못하지만
 
아뢰야식(阿賴耶識)은
그 모든 것을 기억(記憶)하기에
 
현재의식(現在意識)이 느슨해진 순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입력(入力)된
전생(前生)의 기억(記憶)을 일깨우는
어떤 단서(端緖)가, 환경(環境)이 조성(造成)되면
 
현재의식(現在意識)이 아닌,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따라
사고(思考)하고 행동(行動)하게 된다.
 
 
서로 해(害)치고 해(害)함을 받는,
 
전생(前生)의 원수(怨讐)를 갚고
이생(此生)의 원수(怨讐)를
또 내생(來生)에서 갚고
 
끊임없이 반복(反復)되는
삶의 패턴을
보이는 이유(理由)이다.
 
 
추석(秋夕)에 즈음하여
조상제사(祖上祭祀)를
신봉(信奉)하는 풍습(風習)으로
 
민족 대이동(民族大移動)이라고까지 하는
귀향 전쟁(歸鄕戰爭), 귀성 전쟁(歸省戰爭)이란
신조어(新造語)까지 양산(量産)하며
 
효(孝)의 관행(慣行)이 주류(主流)를 이루지만......
 
고부간(姑婦間)의 갈등(葛藤)이
어느 나라보다도 심한 나라이기도 하다.
 
 
제사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영혼(靈魂)의 조상(祖上)이라면
그는 이생(此生)을
잘 살지 못한 영혼(靈魂)들이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고독지옥(孤獨地獄 skt. Pratyeka-naraka)에
속(屬)한 영혼(靈魂)들인 것이다.

 
이번 생(此生)에서
시모(媤母)는 시조모(媤祖母)를 굶겨 죽임으로
복수(復讐)를 했지만
 
원한(怨恨)을 품고 죽은 시조모(媤祖母)는
고독지옥(孤獨地獄 skt. Pratyeka-naraka)을 떠돌며
복수(復讐)를 위해,
 
자신(自身)이 가장 집착(執着)하는
아들의 영혼(靈魂)에 빙의(憑依)되어
충동(衝動)질하고
자신(自身)의 억울함을 풀어주도록 부추기어
 
자신(自身)을 굶겨 죽인 며느리,
시모(媤母)에게
가장 잔인(殘忍)한 복수(復讐)를 한 것이다.
 
이 잔인(殘忍)한 복수극(復讐劇)이
언제라야 끝이 날 수 있겠는가?
 
수 생(數生), 수십 생(數十生),
수백 생(數百生)이 갈 수도 있다.
 
원한(怨恨)과 증오(憎惡)로 가득 차......
 
 
무지(無知)와
무명(無明 skt.Avidya)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의 빛으로
 
윤회(輪廻 skt.Samsara)의 수레바퀴 아래
무참히 바수어지며
 
고해(苦海) 속에 끊임없이
돌고 도는 삶을 멈추어야 한다.
 
화해(和解)와 용서(容恕)로
이 악(惡)한 악연(惡緣)의 고리를
끊어버려야 하건만......
 
 
무지(無知)의 짙은 구름 속에 가려있으니,
 
무명(無明 skt.Avidya)의 어리석음으로
오로지 복수(復讐)라는
집착(執着)의 감옥(監獄)에 갇혀있으니
 
그 자신을 스스로 태우는
냉혹(冷酷)한 지옥(地獄)의 불에서
어찌 헤어 나올 수 있으리요?


출처: 안나불 글 '전생법문(前生法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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