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3 (02:13) from 183.99.6.68' of 183.99.6.68' Article Number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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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담(前生譚)  <27> 한(恨) 맺힌 모자(母子)의 해원(解寃)
전생법문(前生法門) 27

한(恨) 맺힌 모자(母子)의 해원(解寃)

춘분(春分)이다.

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경칩(驚蟄)과 청명(淸明) 사이의 절기(節氣)로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네 번째이다.

어제까지도 눈보라가 휘날렸는데......

경칩(驚蟄)이 지나자
연못의 개구리가 깨어나 우렁찬 합창(合唱)을 한다.

절기(節氣),
한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계절(季節)의 구분이 놀랍다.

아직도
흰 눈이 듬성듬성 다 녹지는 않았지만......
바람결에도 햇살에도
수줍게 다가오는 봄빛이 아련히 느껴진다.

춥고 길었던,
길까지 막혀 인적(人跡)조차 끊긴
눈이 많이 내렸던 하얀 겨울이었다.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오더니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내린다.

다부진 체격(體格)에 각진 얼굴
짙은 눈썹에 수염을 기른
강해 보이는 눈빛을 가진 남자(男子)이다.

정적(靜寂)을 깨는 차(車) 소리에
창문(窓門)으로 내려다보던
나를 발견한 남자가 힐끗 올려다본다.

눈빛이 차갑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한다.

남자는 차(車) 뒤에서 휠체어를 꺼냈고
담요에 감싸인 여자(女子)를 안아 내렸다.

휠체어에 앉아있기도 버거워 보여
법운당(法雲堂)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바싹 여윈 여자(女子)를 들어 안고 성큼 들어선다.

서둘러 두터운 담요 몇 장을 가져다 덮어주고
식당(食堂)에서 가져온 전기난로를 켠다.


병고(病苦)와 여행(旅行)의 피로(疲勞)로
기진(氣盡)해 있던 여자가

따뜻한 차(茶)와 난로의 오렌지 빛 온기(溫氣)로
긴장(緊張)이 조금 풀렸는지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내가 웃어주었다.
내 미소(微笑)를 보자
비로소 여자가 긴장(緊張)을 내려놓는다.

내 눈빛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며
말로 다 전(傳)하지 못하는 하소연을 풀어낸다.

여자를 찬찬히 바라본다.
병고(病苦)로 너무 여위어 그렇지
30대 초반 정도의 젊은 여인(女人)이다.

눈매가 고운데 너무너무 슬프다.
너무도 서러운 슬픈 눈빛......

여인(女人)의 슬픔이 전해져와 눈물이 난다.

가슴 속 서리서리 한(恨)을 품어
그 한(恨)의 응어리를
고스란히 병고(病苦)로 겪어내며 죽어가는
젊은 여인(女人)의 한 맺힌 절규(絶叫)를 듣는다.

그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의 행간(行間)을
천안(天眼)으로 보며 이어 전체를 파악(把握)한다.


♡.1

소영(素英)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로 동분서주(東奔西走)할 무렵

대학시절
요가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의 소개로
모여서 요가도 하고
경전(經典) 강독(講讀)도 한다는

나름 깨달아 가르침을 펴는
재속법사(在俗法師) 돈오(頓悟)를 스승 삼아
수요일 마다 모이는
경전(經典) 강독(講讀)에 참석(參席)하게 되었다.

그의 해박(該博)한(?) 경전(經典) 지식(知識)과
현란(絢爛)한 화술(話術)에 매료(魅了)된
소영(素英)은 수요 모임에 열심히 나갔다.


비교적 경제적인 여유가 있던 회원 하나가
자신의 건물에 세(貰) 들어 있던 세입자가 나가자
그 공간(空間)을 수요모임을 위해 1년간 내 놓았다.

지리산(智異山)에 은거(隱居)해 살며
일주일에 한 번씩
수요모임을 위해 상경(上京)하던
돈오(頓悟)에게 공간(空間)을 제공(提供)한 것이다.

그의 생활 방편을 위해
평소(平素)에는
요가 학원을 병행(竝行)하기로 하고
소영(素英)이 요가 강사로 발탁(拔擢)된 것이다.

드디어 취직(就職)이 되었고
그것도 자신(自身)이 잘 할 수 있는
요가 학원의 강사(講師)가 되다니

스승 돈오(頓悟) 덕(德)이었다.

그 고마움으로 아침 출근길에
간단한 아침 식사거리를 마련해 갔고
점심은 동네 음식점에서 시켜 먹었지만
저녁 시간에 직장인 요가반이 생기면서
저녁 식사는 직접 장만해 함께 먹었다.


♡.2


어느 여름 날 저녁
굵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더니
천둥번개까지 요란히 쳐댔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저녁반 요가 수강생들을 기다렸지만
험한 날씨 때문인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청소와 뒷마무리를 하고
퇴근(退勤)을 하려고 했지만
강한 빗줄기와 요란하게 울리는 천둥번개 때문에
쉬이 문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돈오(頓悟)가
소주 한 병을 꺼내들고 와
마시기 시작했다.

창문을 바라보며
레인코트 깃을 올렸다 내렸다 안절부절 하는
그녀를 힐끗 건네다 보던 그가
소주잔을 비우며 무심한 듯 한마디 던졌다.

“쉬이 그칠 비가 아니구먼. 폭우(暴雨)야.
이리와 한잔하며 느긋하게 기다리게.”

그는 한마디 툭 던지고는
일별(一瞥)도 주지 않은 채
무심한 듯 홀로 소주잔을 비워 나갔다.

소영(素英)이 망설이고 있을 때
천둥번개가 꽝하니 귓전을 때렸다.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며
돈오(頓悟) 앞으로 달려가
쓰러지듯 마주 앉았다.

그가 힐끗 그녀를 건네다 보더니
소주잔을 비우고
그녀에게 한잔 따라주었다.

얼떨결에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쓰고 아린 맛
마치 어릴 때 강제로 먹었던 감기약처럼 독(毒)하다.

술을 전혀 못하는 소영(素英)이 먹어본
첫 소주 맛이었다.

돈오(頓悟)가 아직 어려웠던 그녀는
주는 대로 소주잔을 비웠다.

다섯째 잔이던가?
아릿하고 알딸딸해지며 열이 난다.

한두 잔 더 마셨을까?
그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런..아니 이렇게 술이 약했던가?
몇 잔 마셨다구?”

그녀를 일으켜 흔들어 깨우는
그의 목소리도 손길도 아득하다.


♡.3

그 날 이후......


소영(素英)은 자신의 자취방을 나와
요가 학원에서
그와의 실질적인 동거(同居)에 들어갔다.

그녀가 소녀 때부터 꿈꾸어 왔던
아름다운 신혼(新婚)은 아니었지만

조만간 웨딩드레스를 입고
조촐하지만 멋진 결혼식(結婚式)을 하리라
스스로를 위로(慰勞)하며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날이 갈수록...

돈오(頓悟)의 태도에는
전혀 변화(變化)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自身)을 강사(講師)로 대하고 있었고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결혼(結婚)에 대한
일체(一切)의 관심(關心)도 언급(言及)도 없었다.


해를 넘기고 봄이 되자
소영(素英)은 5월의 신부를 꿈꾸며
조심스레 그에게 결혼(結婚)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무심한 듯
그녀에게 잠시 일별(一瞥)을 주며
한마디 던지고는
자신(自身)이 읽던 책 속으로 다시 빠져든다.

천둥처럼 우르릉 거리며
귓전을 때렸던 그의 말을 곰곰 반추(反芻)해본다.

“나 결혼했어. 애가 둘이야.
설마..몰랐던 건 아니지?”

왜 그가 결혼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는지
자신의 어리석음에도 화가 났다.

그런데 그를 만나
동거(同居)한지 일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그의 부인이나 아이들이 찾아온 적도
전화 한 통화도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심하다 못해 냉혹(冷酷)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퇴근 후
자신을 소개시켜준 선배(先輩)를 만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제자였던 여자와 결혼을 했고
수행을 한다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버려

그의 어린 아내는
도시에서 이것저것 일을 하며 생활하다
가끔씩 그를 만나러오곤 하였는데
색기(色氣)가 강했던 그녀는
올 때마다
자신이 바람피운 상대에 대해
거침없이 상세히 묘사(描寫)를 하여
그를 자극하곤 했다.

그 때마다 그는
도인(道人?)의 풍모(風貌)를 잃지 않고
초연한 듯 무심한 듯 넘겼다.

그들의 이상(異常)스런
변태적(變態的)인 부부관계는
이렇듯 간헐적(間歇的)으로 이어져 나갔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음기(淫氣)가 너무도 강한 음란(淫亂)한 그녀와
하룻밤 잠자리를 하면
몇 달간 수행(修行)한 공력(功力)이
고스란히 빨려나가는 것을 매번 느꼈기 때문이다.



♡.4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며
안고 지리산(智異山)까지 찾아왔을 때

껍데기뿐인 결혼(結婚)이었지만
5년 만에 얻은 아들인지라
자신(自身)을 하나도 담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혈육(血肉)에 대한 집착(執着)이 생겼고

인근 소도시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녀의 바람기는 더욱 기승을 부려
그의 후배와 눈이 맞아 딸아이를 낳아
그에게 두 번째 아이를 안겨주었다.

그는 두 아이를 다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였다.
의심(疑心)조차 하지 않았다.

나이 지긋해 가지게 된
아들에 대한 집착(執着)이 너무 강했으므로......

두 아이가 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아내의 불륜(不倫)으로 얻은 자식임에도......

그런 그를 비웃듯
아내의 음란(淫亂)함은
날이 갈수록 그 도(度)를 더해갔다.

그의
암묵적(暗?的)인 묵시(黙示) 하(下)에
당당히 벌어지는 불륜(不倫)이었고
그들의 비정상적(非正常的)인,
변태적(變態的)인 부부생활(夫婦生活)을 이어주는
질긴 악연(惡緣)의 끈이었기에......

그러나
그는 그 결혼생활을 유지(維持)했다.

자신(自身)의 어린 시절
악(惡)한 부모 밑에서 학대(虐待) 받아온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報償心理)로
아이들에게 집착(執着)하여
관대(寬大)하다 못해
버르장머리 없이 방관(傍觀)하여 키웠다.

수행상(修行上)의 문제로
부부관계(夫婦關係)를 하지 않았고
한집에 살아도
별거(別居)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고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을 용인(容認)해온 것이다.

그러자 음란(淫亂)한 아내는
자신의 후배는 물론 친동생까지 유혹(誘惑)하여
성관계(性關係)를 맺는 지경(地境)에까지 이르러
대인관계(對人關係)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바람피우러 나가 자리를 비운 새
잠들었던 딸아이가 깨어나
까무러질 듯 울어대는 바람에
방으로 가 아이를 달래 잠재웠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무심한 듯 바라보던 그의 미간(眉間)이
잔뜩 찡그러졌다.

자신을 전혀 닮지 않은 아이들...

아들아이의 얼굴에서
아끼던 후배의 얼굴을 본다.

딸아이의 얼굴에서
가장 아끼고 믿어온 친동생의 얼굴을 본다.

무심한 듯 초연(超然)한 듯
자신의 아이들이라고 우겨보지만
가슴 속 알 수 없는 응어리가
날카로운 비수(匕首)가 되어 심장(心臟)을 헤집는다.


그 날 이후
그는 다시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다.

법적(法的)으로는 이혼(離婚)이 안 된 상태이지만
두 번 다시 그 음란(淫亂)하고 뻔뻔한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단호(斷乎)한 의지(意志)와는 달리
아내를 그리워하는 못난 자신(自身)과 마주한다.

그는 호흡(呼吸)을 가다듬고
깊은 명상(瞑想)에 빠져들어
비로소 그 실체(實體)를 본다.

자신(自身)의 그리움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

음란(淫亂)한 아내가 자신에게 심어 넣은
온갖 더러운 성욕(性慾),
온갖 남자들의 더러운 욕망(慾望)이 섞여든
음란(淫亂)하고 더러운 성욕(性慾)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에 대한 불신(不信)과 혐오감(嫌惡感)은
여자(女子)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不信)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까지 깊숙이 자리 잡았다.



♡.5

그는 다시
지리산(智異山)으로 들어가 칩거(蟄居)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때
그를 잘 아는 후배(後輩)가
그를 다시 세상(世上) 밖으로 이끌어 내었다.


경전(經典) 강독(講讀)과 요가를 주선(周旋)했고
십시일반(十匙一飯) 돈을 모아
요가 학원을 차려 오늘에 이른 것이다.


소영(素英)은
그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자신(自身)의 진실(眞實)한 사랑으로
그의 상처(傷處) 입은 마음을
치유(治癒)해 주리라 마음먹는다.

그런 소영(素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배(先輩)가
안쓰러운 듯 한마디 건넨다.

“힘들 거야. 그 마음 헤집고 들어가려면
가시덤불 같을 거야.”

‘가시덤불 속이라도 기꺼이 들어갈래요.
나 그분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될 테니까요.’


소영(素英)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를 위해
자신(自身)을 희생(犧牲)해 그를 섬겼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傷處)로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어른으로 성장(成長)한 그는

더 이상 상처(傷處)받지 않으려
자기(自己) 자신(自身) 외엔 누구도 믿지 않았다.


무심한 듯 초연한 듯
불신(不信)의 방어기재(防禦器材)로
무장(武裝)한 채......

뿌리 깊은 불신(不信)의 상처(傷處)는
그의 깊은 아뢰야식(阿賴耶識)까지 심어져
음울(陰鬱)한 가시덤불 숲을 이루었다.


뿌리 깊은 불신(不信)의 가시덤불은
그의 심장(心臟)에 상처(傷處)를 내며
상처(傷處)에서 떨어져 내린
배신(背信)의 핏방울이
떨어지는 곳마다 가시덤불로 자라나
스스로의 심장(心臟)을 찔러댔고

상처(傷處) 입은 심장은
상채기가 덧나고 덧나
굳어져 점점 차가운 돌 심장(心臟)이 되어갔다.

소영(素英)은
아픈 사랑을 선택한 비운(悲運)의 여인이다.

맹목(盲目)의 ‘사랑’에 눈멀어
‘사랑’때문에
뿌리 깊은 불신(不信)의
음울(陰鬱)한 가시덤불 숲으로 뛰어든

그녀는 온통 찔리고 할퀴어져
갈가리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그는 그녀를 철저히 이용(利用)했다.
그들의 엇나간 사랑......

여자에겐 남자(男子)가 전부였지만
남자에겐 여자(女子)는
이용가치(利用價値)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

사랑 따윈 애초부터 존재(存在)하지 않았다.


♡.6

그렇게 3년을 보냈을 때
여자는 임신(姙娠)을 했다.

육체적인 폭력(暴力)은 없었지만
극단적으로 이기적(利己的)이고
냉혹(冷酷)한 남자로부터 받는 슬픈 상처들로
여자는 마르고 초췌(憔悴)해져 갔고
나날이 쇠약(衰弱)해져 갔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憂鬱症)에 시달리던 그녀는
자신의 임신(姙娠) 사실조차 몰랐다.

홀로 한 시간 반가량 산길을 운전(運轉)해
가장 가까운 소도시로 장을 보러갔고
무거운 짐들을 실어 날랐고

서둘러 장을 봐도
돌아오는 길에는 날이 저물었고
불도 없는 캄캄한 산길을 홀로 운전(運轉)해 돌아왔다.

오자마자 쉴 새도 없이
장봐온 물건들을 분류(分類)해
냉장고(冷藏庫)에 보관하고 정리했다.

그런 모든 일들을 혼자 다 해야 했다.

너무도 지치고 힘들어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그녀는 서서히 붕괴(崩壞)되어갔다.

정서적(情緖的)으로도
차가운 정신적 학대(虐待)로
상처(傷處)받고 위축(萎縮)되어갔고
전혀 돌보지 못하고 혹사(酷使)당한 육체는
과도(過度)한 노동(勞動)을 견디지 못하여 망가져 갔다.

그녀는 슬펐다.
지독히도 외롭고 슬프고 또 슬펐다.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存在理由)조차 알지 못하는
혼란(混亂) 속에
수렁처럼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빈 쭉정이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한심한......

낡은 헝겊 인형(人形)처럼 슬펐다.


♡.7

그 해
만추(晩秋)의 짙은 가을밤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온몸이 찢기는 듯 극렬(極烈)한 통증(痛症)으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고통(苦痛)을 호소(呼訴)하자
돌아오는 것은
냉혹(冷酷)한 질책(叱責)과
엄혹(嚴酷)한 비판(批判)이었다.

사흘 밤낮을 극심(極甚)한 통증(痛症)으로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채
탈진(脫盡)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그는 여전히 냉혹(冷酷)했고
바로 곁에서 혼자 밥을 꾸역꾸역 챙겨 먹었다.


나흘째 되는 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온몸이 찢기는 듯 극렬(極烈)한 통증(痛症)으로
괴로워하다 어느 순간 통증(痛症)이 완화(緩和)되었고
혼절(昏絶)하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다시 정신(精神)이 들었을 때......

그가 냉혹(冷酷)한 눈빛과 싸늘한 어조(語調)로
짧은 통보(通報)를 했다.

‘아이를 낳았다고..아들이었는데...
사산(死産)이라 산에다 묻어버리고 왔다’는......

‘이럴 순 없어!! 내가 아들을 낳았다구?
임신(姙娠)이었던 거야? 죽은 아이라구?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
아기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고 산(山)에다 묻었다구?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구!!
절대로, 절대로 용서(容恕)하지 않을 거야.’

여자는 하혈(下血)을 심하게 했고
쇠약(衰弱)해질 대로 쇠약해져
다시 혼절(昏絶)하고 말았다.

여자가 다시 깨어났지만......

이미 쇠약(衰弱)해진 몸은
난산(難産)으로 인(因)한
과다(過多)한 출혈(出血)로 더 악화(惡化)되었고


돌봐주는 이 없이 방치(放置)되어
하루가 다르게 쇠잔(衰殘)해져 갔다.


여자는 말문을 닫았다.
서리서리
가슴에 맺힌 한(恨)을 풀어낼 길이 없었기에......

살아야 할 이유(理由)를 잃어버린 여자는
마른 낙엽처럼 생기(生氣)를 잃고 죽어가고 있었다.


♡.8

그 긴 겨울을
슬픈 침묵(沈黙)으로 보내던 끝자락에서
위태위태 서 있던 여자는
갑작스런 통증(痛症)으로 다시 쓰러졌고......

마침 찾아온 도반(道伴)이 있어
그의 도움으로
병원(病院) 응급실(應急室)로 옮겨졌다.

급성(急性) 신장염(腎臟炎)으로
긴급 수술(手術)을 하고
투석실로 옮겨져 투석(透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다 상해
의사(醫師)들도
생존(生存) 가능성을 낙관(樂觀)하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入院)하여 한 달이 지날 무렵
여자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豫見)했다.

퇴원(退院)을 결심(決心)했고
어차피 생존(生存) 가능성이 희박(稀薄)한
그녀의 퇴원(退院)을 의사(醫師)들은
순순히 허락(許諾)해 주었다.


♡.9

퇴원(退院)을 한 후(後)

한 달간 병원(病院)에 입원(入院)해 있으면서
같은 병(病)으로 투석(透析)을 하던
옆 침대에 있던 여대생(女大生)의 노트북을 통해

백화도량(白華道場)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같은 병(病)을 앓았던
나의 글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죽기 전(前)에 꼭 만나보고 싶었다고......


남자(男子)를 만나기 전(前)까지는
열심(熱心)한 신자(信者)는 아니었지만
천주교(天主敎) 신자(信者)였다고 한다.

영세명(領洗名)은 ‘안젤라’라 알려준다.
내가 꼭 기억(記憶)해 줄 거라는 걸 안다.
자신(自身)을 위해
기도(祈禱)해 줄 거라는 것도......

그녀가
희미(稀微)한 미소(微笑)를 보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남자(男子)가 듣지 않기를 바라는 듯......

그가 나가자
한숨을 내쉬며 편하게 말을 시작한다.

‘이제는 더 이상 죽는 것이 겁나지 않는다’ 했다.

‘처음에는 너무도 분(忿)하고 원통(寃痛)하고
젊은 나이에 한(恨) 맺히게 살다 죽는 것이
너무도 억울(抑鬱)하고 무서웠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백화도량(白華道場) 사이트에 실린
내 글들과 내 그림들을 보며 따뜻한
위안(慰安)을 받았다 한다.


여기까지 날 찾아온 이유(理由)는
아무리 애를 써 봐도
그 남자(男子)를 도저히 용서(容恕)할 수 없단다.

자신(自身)을 착취(搾取)하고
종 부리듯 혹사(酷使)시킨 것까지는
용서(容恕)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自身)에겐 보여주지도 않은 채
아들 아기를 사산(死産)하였다며
산(山)에다 파묻었다는 건
도저히 용서(容恕)가 안 된다 했다.

아기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하고
산(山)에다 파묻었다는 말만 들었으니......

이런 원통(冤痛)한 일이 어디 또 있겠냐며
오열(嗚咽)을 터뜨린다.

여자(女子)의 진한, 한(恨) 맺힌 슬픔이
그대로 전(傳)해져와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난다.
가슴 아프다.

창조주(創造主) 하느님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의
치유(治癒)의 빛을 보내며......

꺼이꺼이 목 놓아
피울음 우는 여자(女子)를 가만히 기다려준다.


♡.10

한참을 울더니 울음이 잦아든다.

눈물로 거친 업장(業障)이 씻긴 듯
얼굴이 구름 걷히듯 환해진다.

어린아이처럼 호기심(好奇心) 가득 찬 눈빛으로
질문(質問)들을 쏟아낸다.

“정말 내가 죽고 나서 다시 윤회(輪廻)하나요?
혹(惑) 다시 저 남자(男子)와 얽힐까요??
그건 정말 싫은데......
죽기보다 더 싫은데......”

소름이 돋는 듯 몸까지 부르르 떤다.

내가 부드럽지만
단호(斷乎)한 어조(語調)로 대답(對答)했다.

“용서(容恕)”

그녀가 강하게 고갤 저으며 소리친다.


“절대로, 절대로 용서(容恕)할 수가 없어요,
용서(容恕)가 되지 않는다구요”


그녀를 진정(鎭靜)시키고
다시 찬찬히 원리(原理)를 풀어준다.

그 남자(男子)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女子)인 자신(自身)을 위해......


카르마(skt. Karma)의 원리(原理)로 볼 때

애증(愛憎),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강한 집착(執着)으로 서로를 끌고 얽어맨다.

그들이 서로의 처지(處地)를
사랑으로 배려(配慮)하고
이해(理解)하게 될 때까지

그들은 거듭되는 윤회(輪廻)를 통해
서로 ‘역할(役割) 바꾸기’를 하게 된다.

몇 생을 두고 반복(反復)되는
악연(惡緣)의 순환(循環) 고리를 끊기 위한
가장 단순 명료(單純明瞭)한 원리(原理)는
‘용서(容恕 Forgiveness)’이다.

그것은
자신을 해(害)친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배려(配慮)인 것이다.

질긴 악연(惡緣)의 끈을
서로의 몸에 칭칭 동여맨 채
서로 풀려나지 못하고 끌려다닐 때

어느 한쪽에서
날카로운 칼로 그 실을 끊어버린다면
두 사람은 분리(分離)되어
각자(各自) 자신(自身)의 길로 갈 수 있게 된다.

그 날선 칼이 바로 ‘용서(容恕)’이며
그 엉킨 실을 ‘용서(容恕)’의 칼로
과감(果敢)히 끊어버리는 것이
바로 지혜(智慧)인 것이다.


♡.11

이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는
몇 생을 반복(反復)하며 윤회(輪廻)를 통해
‘역할(役割) 바꾸기’를 해왔지만......

이해(理解)하지 못했다.
깨닫지 못한 것이다.

무지(無知 Ignorance)는 악(惡 Evil)이다.
악(惡)으로부터 기인(基因)하여
무지(無知) 무명(無明)이 생기는 것이다.

무지(無知) 무명(無明)으로 인(因)해

또다시 악(惡)에 악(惡)을 쌓게 되는
악순환(惡循環)이 반복(反復)되고
인간(人間)은 육도 윤회(六道輪廻)의 길에서
쉬이 벗어나질 못한다.

무지(無知) 무명(無明)으로 인(因)해
죄(罪)에 죄(罪)를 쌓아 삼악도(三惡道)인
지옥(地獄 skt. Naraka)
아귀(餓鬼 skt. Preta)
축생(畜生 skt. Tiryagyoni)으로
윤회(輪廻)하며
괴로움이 끝이 없는 고해(苦海)를 지나게 된다.



불교(佛敎)의 업장소멸(業障消滅)은
그리스도교(Christ敎)의 죄(罪)의 용서(容恕)와
같은 개념(槪念)이다.

죄(罪)로부터
자유(自由)롭지 못한 인간(人間)은
인간(人間)의 몸을 받아
인간계(人間界 skt. Manusya-gati)로
윤회(輪廻)했을 때가
수행(修行)의 최적 환경(最適環境)이 된다.

창조주(創造主) 하느님
법신불(法身佛) 하느님 앞에
겸허(謙虛)히 내려 앉아

성찰(省察)과 참회(懺悔),
회개(悔改)와 보속(補贖)을 통해

업장소멸(業障消滅)
죄(罪)의 용서(容恕)를 받아

죄악(罪惡)의 사슬을 끊고 자유(自由)로워질 때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의 지혜(智慧)가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의 반야지(般若智)가

완전(完全)한 빛으로 임재(臨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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