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5 (05:46) from 121.169.159.9' of 121.169.159.9' Article Number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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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담(前生譚)  <28> 슬픈 사랑-애증(愛憎)의 참혹(慘酷)한 결말(結末)
전생담(前生譚) <28>
슬픈 사랑-애증(愛憎)의 참혹(慘酷)한 결말(結末)


밤새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함박눈이 펑펑 내리더니......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끊기었다.

산 속은 하얀 눈빛 고요에 잠겨있다.

아침기도 후
성경(聖經) 구절(句節)을 뽑아 묵상(黙想)한 후(後)
뽑아본 주역(周易)의 괘(卦)가 마음에 걸린다.
누군가가 고통 중(苦痛中)에 있고
도움을 구(求)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오후(午後)가 되어
전화(電話) 한통을 받게 되었고
그의 고통(苦痛)에 진심(眞心)으로 귀 기울인다.

비교적 짧고 간결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듬성듬성했지만......
가슴이 아프고..시리다.

때로는 이 땅에서 사는,
올곧게 살려고 애쓰는 이들이,
특히 수행자(修行者)들이
시련(試鍊)과 아픔을 겪으며 산다.

다행히 이 수행자(修行者)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信仰)을 가지고 있는
신자(信者)이다.

자신(自身)이 겪고 있는 이 모든 괴로움을
신앙(信仰)으로 참아 받고 있었지만

이유 없는 폭언(暴言)과 폭행(暴行),
억압(抑壓)과 공포(恐怖)에 대한 부당(不當)함이
더 견디기 어려워
그 이유(理由)를 알고자 전생(前生)을 묻는 것이었다.

전생(前生)에
기인(起因)한 원인(原因)이 있다면
기꺼이 참아 받겠다는 의지(意志)이다.

기독교인(基督敎人)이니
예수님(Jesus Christ)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弟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 14장 27절

And anyone who does not carry his cross
and follow Me cannot be My disciple.

Luke 14 : 27


하신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 십자가(十字架)의 의미(意味)도
지혜(智慧)롭게 잘 알아들어야 한다.

사람마다
자신(自身)에게 주어진 십자가(十字架)는
크기도 무게도 종류(種類)도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分明)한 것은
자신(自身)이 감당(堪當)할 만큼의
십자가(十字架)가 온다는 것이다.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은
잔인(殘忍)한 새디스트(Sadist)가 아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그의 자녀(子女)들이
일방적(一方的)으로
세속(世俗)의 자녀(子女)들의 노예(奴隸)가 되어
그 억업(抑壓)에서
불행(不幸)과 고통(苦痛)의 눈물로
한생을 살기를 바라시는 분이 아니시다.

악인(惡人)의 덫에 걸려
가치(價値) 없는 자기희생(自己犧牲)으로
한생을 불행(不幸)하게 살기를 바라시지는 않는다.

교활(狡猾)한 악인(惡人)들은
십자가(十字架)의 고통(苦痛)을
기꺼이 감수(甘受)하는
신자(信者)들의 희생(犧牲)과 헌신(獻身)을
자신(自身)의 이기심(利己心)과 탐욕(貪慾)을 채우는
지배(支配)의 수단(手段)으로 악용(惡用)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성경(聖經)
구약(舊約)의 지혜서(智慧書)에는
“악인(惡人)을 도와주지 말라.
반드시 악(惡)으로 갚을 것이다.”

신약(新約)의 예수님 말씀에는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진주(眞珠)를 돼지들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짓밟고
돌아서서 너를 찢을까 하노라.”

마태 7장 6절

Do not give dogs what is sacred ;
Do not throw your pearls to pigs.
If you do, they may trample them under their feet,
and then turn and tear you to pieces.

Matthew 7 : 6

예수님의 이 말씀도 잘 기억(記憶)하길 바란다.


다만 그 십자가(十字架)가
자신(自身)의 죄(罪), 업장(業障)을 녹여내는 데,
죄(罪)를 기워 갚는다는 보속(補贖)의 의미(意味)로
그 십자가(十字架)를 진다면 도움이 된다.

지옥(地獄) 불을 면(免)할 수 있을 터이니.....

더욱이 죄(罪)는 영혼(靈魂)에
깊은 상처(傷處)를 남기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 십자가(十字架)가
자신(自身)의 소명(召命)을 이루는데
부족(不足)한 부분을 시련(試鍊)과 연단(鍊鍛)을 통해
바로잡고 강화(强化)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사람의 얼굴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영혼(靈魂)의 모습과 수준(水準)도
각자(各自)가 독특(獨特)하고 다름이니
참고(參考)해야겠지만
여기서는 그 근원(根源)의 원리(原理)를
명확(明確)히 밝히는 것이다.

그 수행자(修行者)가
자신(自身)의 전생(前生)을 풀어주길,
그래서 금생(今生)의 배우자(配偶者) 간(間)에 얽힌
악연(惡緣)의 고리를 알고 싶어 풀어주기를 바라니,
그들의 전생(前生)을 푼다.

지혜(智慧)의 검(劍)으로
그 질긴 악연(惡緣)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도,
혹은 이생(此生)에서 끝까지 잘 감당(堪當)하겠다면
그것 또한 그의 자유의지(自由意志)의 선택(選擇)이니
어쩔 수는 없겠지만

자신(自身)의 전생(前生)을 알아
자신(自身)과 악연(惡緣)으로 얽힌
배우자(配偶者)에 대한 지견(知見)이 생기면
보다 더 잘 감당(堪當)하고 대처(對處)할 수 있으리라.


숙명통(宿命通)을 통해
그녀와 그 배우자(配偶者)가 얽힌 생(生)을
추적(追跡)해 들어간다.
이번 생(生)에까지 영향(影響)을 주는
악연(惡緣)의 고리를 찾아...

이번 생(生)의 전생(前生)과 바로 그 전생(前生),
두 번이나 그들은 질기게 얽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례적(異例的)으로
두 개의 전생(前生)을 풀어준다.


♡.1

1882년 인도(印度)의
작은 국경(國境) 마을 근교(近郊)의 숲에서 태어난
‘바르나지 보하이르’는 13세의 소년(少年)이다.

그의 부모(父母)는 짚시였다.
낡고 덜컹거리는 마차(馬車)에 15세의 누나와
10살짜리 쌍동이 동생 자매
그리고 이제 막 걸음마를 떼
정신없이 쏘대는 3살 막내 남동생,

그렇게 일곱 식구가
유일(唯一)한 재산(財産)인
낡은 마차(馬車)에 의지(依支)하여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다니며
춤과 음악을 파는 짚시의 삶을 영위(營爲)했지만
유랑(流浪) 걸식(乞食)하는 힘든 나날들이었다.

가끔씩은 운(運) 좋게도
추수(秋收)하는 곳을 지나다 보면
후덕(厚德)한 밭주인이 일을 시키고
곡식(穀食) 단을 한 무더기 나누어 주기도 했다.

추수(秋收)가 끝나면
술 한 동이와 밀떡이 나왔고
모닥불 곁에서
어머니와 누이들이 춤을 추며 흥을 돋구었다.

신이 난 농부(農夫)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추수(秋收)의 기쁨으로
거나하게 취기(醉氣)가 오른 주인(主人)이
아이들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고
주린 배를 양껏 채울 수 있었다.

소년(少年)의 아버지는
그런 행운(幸運)이 올해에도 또 오기를 기대(期待)하며
마을로 속도(速度)를 내어 말을 몰았다.

마을 어귀에 들어설 무렵
노을이 곱게 지기 시작한다.

낮에 시내를 건너다 마차바퀴가 돌 틈에 끼어
그걸 빼고 다시 수리(修理)해 끼우느라
시간(時間)을 지체(遲滯)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루 종일 감자 한 알로
주린 배를 채웠기에 모두들 지쳤다.
누군가가 음식(飮食)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주길
간절(懇切)히 바라며 마을로 들어선다.

추수(秋收)가 끝난 들판에는 낟가리들이
여기저기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장작불 위로 꼬치에 끼운
살찐 염소새끼 한 마리가 익어가고 있었고
술통에서는 막 따라낸 잘 익은 술 내음이 진동(振動)한다.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연주(演奏)하며 앞장을 섰고
어머니와 누이들이 발목에 찬 방울들을 흔들며
춤을 추며 따라 들어갔고
그 뒤를 소년(少年)이 손풍금을 울리며
장작불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예의(禮儀)를 갖추어 밭주인에게
추수(秋收)에 대한 하례(賀禮)를 하고
음식(飮食)을
좀 나누어 주길 공손(恭遜)히 부탁(付託)했다.
쌍둥이 자매(姉妹)와 막내 동생이
아버지 바지에 매달린 채 아버지를 따라 굽신거린다.

안주인이 아이들을 보더니
큰 빵 덩어리를 떼어 나누어 준다.

아버지는 감사(感謝)의 표시(表示)로
바이올린을 연주(演奏)했고
어머니와 누이들과 소년(少年)은
한바탕 흥겨운 공연(公演)을 펼쳤다.

어머니와 누이가 함께 춤을 추었다.

소년(少年)은 손풍금을 치면서
모닥불 빛을 받은 누이의
날씬하고 탄력(彈力)있는 몸을,
얼굴에 언뜻언뜻 스치는 미소(微笑)를 보며
누이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다.

소년(少年)은
자기 말고도 또 다른 누군가가
누이를 삼킬 듯 쳐다보고 있는
강렬(剛烈)한 시선(視線)을 느낄 수 있었다.

농부(農夫)들과는 옷차림새가 다른,
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자(男子)였다.

남자(男子)는 춤이 끝나기를 기다려
동전을 한가운데로 뿌렸다.
부모(父母)님이 동전을 줍느라 정신이 없을 때
남자가 작은 손짓으로 누이를 가까이 불렀다.
손가락에 낀 동전을 흔들어 보이며...

누이는 머뭇거리며 다가갔고
남자(男子)는 누이의 치마에 동전을 몇 닢 던졌다.

춤판이 끝나고
음식(飮食)까지 배불리 얻어먹고
떠날 준비(準備)를 할 때

밭주인의 아들이었던 그 남자(男子)가
아버지를 불러
동전이 가득 든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넸고
잠시 망설이던 아버지는 주머니를
가슴속 깊숙이 밀어 넣었고...
떠날 준비(準備)를 서둘렀다.

마차(馬車)가 떠나려 할 때
소년(少年)은 눈물을 흘리며 그 남자(男子) 곁에
서 있는 누이를 발견(發見)했다.

“안돼, 이건 안돼, 누이쟎아, 가족이라구,
가족(家族)을 팔아먹다니...
저 남자(男子) 누이보다 20살은 많을텐데.. 안돼..”

그는 마차(馬車)에서 뛰어내려 누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무조건 누이의 손목을 잡아채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달리지 못해 누이가 기를 쓰고 멈추어 섰다.

“이거 놔, 이러면 안돼.
그 돈이면 조그만 돌밭이라도 사서
가족이 굶주리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을 거야.”

“안돼. 우린 가족(家族)이쟎아.
함께 있어야 돼. 굶더라도 같이 굶더라도,
그게 가족이쟎아, 가족을 팔순 없어.
아버지를 절대로 용서(容恕)하지 않을거야.
다신 보지 않을 거라구.
딸을 팔아먹는 자가 무슨 아버지야?”

누이는 울며 그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무언가를 그의 손에 꼬옥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는
빠른 속도(速度)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어릴 때부터
엄마대신 자신을 잘 돌봐주던
누이의 고운 미소(微笑)가 눈앞을 가득 채운다.
눈물이 흐른다.

마차(馬車)가 다가왔다.
아버지의 거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멍청한 놈!! 안타고 뭘 하는 게야?”

흔들리는 마차(馬車) 안에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린 동생들까지도......

삐걱거리는 마차(馬車) 소리만이
무거운 침묵(沈黙)을 깬다.
황토(黃土)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두 손을 불끈 쥐다가
무언가가 주먹 속에 있다는 걸 비로소 안다.
주먹을 펴보니 동전이 몇 푼 쥐어져 있다.
누이의 슬픈 눈동자가 겹쳐진다.


♡.2

기차(汽車)의 기적(汽笛) 소리에 잠이 깼다.
식료품(食料品)을 사기 위해
마을에 들어선 모양이다.

아버지가 마차(馬車)를 그늘에 세우고
잠시 쉬는 동안
어머니와 누이들을 따라
가게로 들어선다.

‘이 마을에 기차역(汽車驛)이 있나보다.’생각하며

소년(少年)은
어머니가 식료품 가게에서 먹을 것들과
알록달록 여동생들에게 지어 입힐
무용복(舞踊服)을 만들 천과 리본 사는 것을
건성으로 지켜보며
마음은 기차역(汽車驛)을 찾고 있었다.

물건들을 날라다 마차(馬車)에 싣는다.
아버지는 힐끗 눈을 떠 건네다 보고는
피곤한 듯 다시 잠에 떨어진다.

그는 어머니의 볼에 입 맞추고는
잠시 마을을 둘러보겠다며
마차(馬車)를 빠져나와 마을로 들어서
기차역(汽車驛)을 찾는다.

기적(汽笛) 소리가 들린다.
기차(汽車)가 역(驛)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역(驛)으로 달려가
막 떠나려는 열차(列車)에 뛰어 올랐다.


♡.3

열차가 멈추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기차역(汽車驛)을 빠져나왔다.

기차(汽車)는 도시(都市)에 그를 토(吐)해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망연(茫然)히
역(驛) 앞의 의자(倚子)에 앉아 있는 그의 눈에
이상한 거지가 눈에 띄었다.

힘든 요가 동작을 선보이고
동냥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멸시(蔑視)와 동정(同情)으로
동전(銅錢)을 던져주는 것이 아닌,
약간의 예의(禮儀)를 갖추어 동전을 던져 주었고,

더러는 과일 같은 것을
공손히 앞에 놓아주고 가는 부인들도 있었다.

그가 하는
힘든 요가 동작(Yoga 動作)들이 신기(神奇)하여,
또 그에게 돈이나 꽃 과일을 주는 사람들이 신기하여
그렇게 구경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요가 동작을 풀고 동전(銅錢)을 챙기고
그릇에 담긴 과일과 빵을 먹기 시작했다.

먹는 모습을 보자 비로소 배가 고팠다.
거의 하루 종일 먹은 것이 별로 없었다.

소년(少年)과 눈이 마주친 그가
과일과 빵을 나누어 주었다.

소년(少年)은
그가 요가(Yoga) 수행(修行)을 하는
요기(Yogi)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인연(因緣)으로 소년(少年)은
요기(Yogi) ‘발하르시누’의 제자(弟子)가 되었다.

그의 거처(居處)에는
이미 그의 제자(弟子) 6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소년(少年)은
청소와 밥 짓기, 빨래 등 허드렛일을 하며
열심히 요가 수행(Yoga 修行)을 했다.

그렇게 7년의 세월(歲月)이 지나고
소년(少年)은 20살의 청년(靑年)이 되었다.

‘바르나지 보하이르’는
짙은 눈썹이 초생달처럼 아름다운,
검푸른 커다란 눈동자가 빛나는
아름다운 청년(靑年)으로 성장(成長)했다.

그동안 스승은 더 유명(有名)해졌고
제자(弟子)도 52명으로 늘어났다.

청년(靑年)이 된 ‘바르나지 보하이르’에게도
스무 살의 봄이 찾아왔다.

불쑥 그에게 갓 딴 잘 익은 망고 하나를
내미는 어여쁜 손이 있었다.

항상 반쯤 눈을 내리감고 다니던 습관(習慣)이 있어
합장(合掌)으로 감사(感謝)를 표(表)하자
‘까르르’ 새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自身)의 머리에 꽂았던
향기(香氣)로운 꽃 한 송이를 빼 그의 귀에 꽂아준다.

그는 순식간(瞬息間)에 일어난 일에
당혹(當惑)해 하며 두 눈을 치켜떴다.

양 볼에 살짝 꽃물 든 사랑스런 소녀(少女)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마치 후광(後光)이라도 두른 듯
소녀(少女)의 주변(周邊)으로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소녀(少女)를 스치는 바람결조차 향기(香氣)롭다.
어딘가 낯익은 얼굴..

소녀(少女)가
동그랗게 입술을 오므리고는 속삭이듯 말한다.
“미르 마핫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비로소 소녀가 누군지 떠올랐다.

스승의 셋째 부인 소생(所生)인 외동딸
“미르 마핫타”였다.

“아! 그 꼬맹이 아가씨!!...미르?”

그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자
기다렸다는 듯 소녀는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작은 방울이 올망졸망 달린 은 귀걸이에서
찰랑거리는 경쾌(輕快)한 소리가 난다.


그가 13세 때
스승의 손에 처음 이끌려 들어 온 날

어색해 하고 주눅 들어 하는 그에게
먼저 다가와 작은 손으로
자신의 머리에 꽂고 있던 꽃을 빼
그의 귀에 꽂아주고
자신(自身)이 한입 베어 물었던
달콤한 망고 하나를
그에게 준 바로 그 꼬마 아가씨,

아버지가 연주(演奏)하는 금(琴)에 맞춰
작은 몸을 흔들며 앙증맞게 춤을 추던
바로 그 여섯 살짜리 꼬마였다.

스승의 총애(寵愛)를
한 몸에 받던 막내딸이었던 것이다.

스스럼없이 그들과 잘 어울려 놀던
꼬마 아가씨가 아홉 살이 되던 때부터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스승은 안채와
제자(弟子)들이 거(居)하는 거처(居處) 사이에
담을 새로 쌓았고 제자들의 출입(出入)을 금(禁)했다.

그렇게 7년의 세월(歲月)이 지나고......

오늘 자신(自身)의 눈앞에
마치 마법(魔法)처럼
아름다운 처녀(處女)로 자라난 ‘미르 마핫타’가
마치 꿈인 듯, 신기루(蜃氣樓)인 듯, 서 있는 것이다.

그가 미동(微動)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본다.
소녀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자
머리에 쓴 얇은 연보랏빛 베일이
달콤한 꽃향기로 그의 코끝을 스친다.

그의 젊은 가슴이 쿵쾅쿵쾅 마구 뛴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녀(少女)의 손을 잡아당겼다.
마치 작은 새처럼 가볍게 그의 품안으로 들어온다.

바람이 분다. 꽃바람이다.
꽃비 되어 내린다.
첫사랑에 눈뜬 이 사랑스런
작은 연인(戀人)들 머리 위로......


♡.4

하늘 구름 위를 걷는 듯
마냥 행복(幸福)으로 가슴 설레던
이 작은 연인(戀人)들 앞에
검은 폭풍우(暴風雨)와 같은
시련(試鍊)의 그림자가 몰려오고 있었다.

‘미르 마핫타’가 열여섯 살이 되던
초여름의 더위가 나른해질 오후(午後) 무렵

스승은 모두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딸 ‘미르 마핫타’를 불러
자신(自身)의 옆에 세웠다.

왠지 알 수 없는 불안(不安)으로
‘미르 마핫타’의 얼굴이 굳어졌다.
은박의 잔잔한 무늬가 박힌 연하늘색 사리와
베일을 쓴 그녀의 모습이
더 없이 청초(淸楚)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제자(弟子)들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스승은 만족(滿足)스러운 웃음을 머금은 채
맏 사형(師兄)인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를
눈짓으로 불러내었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나와 스승의 왼편에 섰다.
스승의 오른 편에는 스승의 딸인 ‘미르 마핫타’가
왼편에는 수제자(首弟子)인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가
나란히 서 있다.

‘바르나지 보하이르’는
무섭게 밀려드는 불길(不吉)한 예감(豫感)으로
자신(自身)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떤다.

스승은 왼편에 선 수제자(首弟子)를 보며 말을 잇는다.

“모두들 알다시피 수제자(首弟子)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는
지금 그대들이 사용(使用)하는 이 사원(寺院)의 건물(建物)도
그가 유산(遺産)으로 물려받은 집을 희사(喜捨)한 것이다.

또한 그의 소작지(小作地)에서 나오는 소출(所出)로
이 사원(寺院)에서 필요(必要)로 한
상당수(相當數)의 재원(財源)을 지원(支援)하고 있다.

이제 난 나이가 많으니
이 사원(寺院)을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에게 물려준다.
또한 그가 나의 딸을 달라고 정중이 청혼(請婚)하였기에

나를 계승(繼承)하는 것을 천명(闡明)하는 뜻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보물(寶物),
내 딸 ‘미르 마핫타’를 그에게 준다.

두 달의 결혼준비(結婚準備)가 끝나는 대로
결혼식(結婚式)을 성대(盛大)히 올릴 것이다.

이제 그대들의 사형(師兄)이었던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를
구루(Guru)인 나를 대하듯 예(禮)를 갖추어
성심(誠心)껏 섬기길 바란다.”

잠시(暫時)
웅성거리는 소요(騷擾)가 일었지만
다들 그리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수긍(首肯)하는 분위기(雰圍氣)였다.

그러나
‘미르 마핫타’와 ‘바르나지 보하이르’는
창백(蒼白)하게 굳어져 갔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스승의 선언(宣言)을
도저히 감당(堪當)할 수가 없었다.

‘미르 마핫타’가 결심(決心)이 선 듯
눈빛을 빛내며 그를 향해 단호(斷乎)하게 말했다.

“이젠 어쩔 수 없어요. 우리 함께 이곳을 떠나요.
내가 얼른 가서 보석(寶石)과 옷을 챙겨 올 터이니
이곳에서 날 기다려줘요.”

그녀는 그를 남겨둔 채 어둠 속을 달려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미르 마핫타’는
보석(寶石)과 장신구(裝身具) 옷들을 싸기 시작했다.
마침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몸종 사라이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었다.

“사라이, 난 여길 떠날 거야.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어서.. 날 도와 짐을 싸주렴.” 급하게 짐을 싼 그녀는

청혼(請婚)을 하며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가 가져온
보석함(寶石函)을 흘깃 보고는 그것을 돌려주라 이른다.

떠나기 전
자신(自身)이 끼고 있던 금 팔지 하나를 빼어
사라이에게 내어준다.

사라이는 결혼(結婚)을 앞둔 아가씨의
이런 돌발 행동(突發行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昏亂)스러웠다.

사라이는
왜 아가씨가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와 같은
부자(富者)며 늠름한 훤훤 대장부(大丈夫)를 놔두고..

그를 떠올리자 시라이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를 보는 순간(瞬間)부터 짝사랑해 왔으니까....

‘바르나지 보하이르’ 같은
미남자(美男子)이며
섬세(纖細)한 음악가(音樂家)이긴 하지만
그런 떠돌이 고아(孤兒)와 사랑에 빠졌는지
도무지 이해(理解)가 되지 않았다.

사라이는 홍조(紅潮)를 띤 얼굴로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를 만나러 달려갔다.

사정(事情) 이야기를 다 들은 그는
사라이에게
‘상(賞)을 내릴 테니 원하는 걸 다 말해보라’ 했다.
‘금화(金貨)를 듬뿍 줄 수도,
토지(土地)를 떼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사라이는 모두 고개를 저으며
그의 발아래 엎드려
“금(金)도, 토지(土地)도 다 소용(所用)없으니...
오직 바라옵는 건
오래 전부터 주인님을 사모(思慕)해 왔아오니
첩(妾)으로라도, 아니 그것이 안 되면 종으로라도
곁에 두어주시옵소서”라며 청(請)을 넣었다.


그는 사라이를
첩(妾)으로 맞아들이기로 하고
그녀에게서 그들의 도주계획(逃走計劃)을 알게 된다.

그는 지독(至毒)한 배신감(背信感)으로
치를 떨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절대로 이 사실을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고
사라이를 다그쳤다.

그리고 단호(斷乎)한 어조(語調)로

“이 결혼(結婚)은 반드시 예정(豫定)대로 할 것이니
추호(秋毫)도 말을 흘려선 안 되며,
누구에게도, 스승님에게조차도 알려선 안 된다.
입을 다물기 위해 당장이라도
너를 죽일 수도 있다”며

강압적(强壓的)으로 말을 끊었다.

그의 눈에 살기(殺氣)가 돈다.
사라이는 처음으로 보는
그의 무서운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


♡.5

그날 밤 그들은 다시 은밀(隱密)히 만났다.
와락 서로를 껴안은 채 소리죽여 흐느껴 울었다.

얼마나 시간(時間)이 흘렀을까?...

‘바르나지 보하이르’는 무거운 입을 떼었다.
비장(悲壯)한 눈빛이었다.

“미르,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요.
그대가 여섯 살 꼬마였을 때,
처음 본 그 순간(瞬間)부터 사랑해 왔으니까......

그러나 이젠 당신을 놓아 주어야겠소.
스승님은 거리에 버려진 13살의 날 데려와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요가(Yoga)까지 가르쳐 주셨소.

나에게는 생명(生命)의 은인(恩人)이시며
구루데바(Guru Deva)이시거늘
난 도저히 그분을 배신(背信)할 수가 없소.

사형(師兄)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도
나에게는 형제(兄弟)처럼 잘 대해준 분이시오.

그대도 그의 신세(身世)를
지지 않았다고 할 순 없을 것이요.
그대가 살아온 이 집도, 음식(飮食)도, 고운 옷도
그의 희사(喜捨)로 이루어진 것이요.
내가 태어나 지금껏 살아오며
가장 은혜(恩惠)를 입은 사람들을 배신(背信)할 순 없소.”

그는 괴로운 듯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그녀가 그를 와락 껴안으며
그를 돌려 세웠다.

그의 슬픈 눈을 바라보며
키스를 한다.

“오, 가여운 분,
당신은 너무 착하군요.
하지만 우리 자신(自身)은 생각지 않나요?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데, 함께 할 수 없다면
너무 잔인(殘忍)한 운명(運命)이 아닌가요?”

“오, 사랑하는 누이여!
우리 어린 시절 오누이처럼 잘 지내지 않았소?
그렇게..그렇게 지내도록 합시다...”

그가 힘없이 말끝을 흐리자
그녀의 큰 눈에서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오, 냉정(冷靜)한 분!
어찌 사랑하는 여인(女人)을
다른 남자(男子) 품으로 떠나보낼 수 있다는 건가요?”

그녀가 그의 목에 매달리며 울부짖는다.

그는 괴로워하며
그녀를 떼어내려 애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그에게 꼭 매달려
눈이며 입술에 키스를 해댔다.

바로 그 때 바람을 가르듯
검은 그림자가 달려들었고
달빛에 섬뜩하니 섬광(閃光)을 그리며
칼이 그의 등에 꽂혔다.

칼을 뽑더니 그를 돌려 세우고는
다시 그의 심장(心臟)에 칼을 깊숙이 찔러 넣는다.

그의 눈동자 가득 분노(忿怒)에 찬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의 얼굴이
빨갛게 맺힌다.

그의 몸을 안은
‘미르 마핫타’의 비명(悲鳴)소리가
이어 처절(凄切)한 울음소리가
한밤의 정적(靜寂)을 가른다.

미친 듯이 울부짖는 그녀의 팔을
사납게 잡아 일으킨 그는
강제(强制)로 그녀를 끌고 가
숲에 매어둔 말에 태웠다.

“자, 이제 모든 것이 끝났소.
난 바르하산도, 미르 마핫타,
당신도 용서(容恕)할 순 없소.

나를 배신(背信)한 죄(罪)는
앞으로 살면서 평생(平生) 갚도록 하시오.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도록 하시오.
당신 아버지, 스승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너무 상심(傷心)해 죽을지도 모르오.
명예(名譽)를 소중(所重)히 여기는 분이니...

나도 ‘바르나지 보하이르’를 좋아했소.
형제(兄弟)처럼 아끼던 자였는데...
당신 때문에 내 손에 피를 묻히게 되었소.

그는 나와 스승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고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배신(背信)을 했소.

당신은 나의 스승이며
당신의 아버지이신 분의 뜻을 거스려
그분이 정혼(定婚)해준 신랑(新郞)을 버리고
당신 아버지의 제자(弟子)였던 정부(情夫)와
도망치려한 수치(羞恥)스런 여자(女子)요.

그러나 스승에 대한 예우(禮遇)로
스승이 살아계실 동안
난 그대와 결혼생활(結婚生活)을 유지(維持)할 것이요.

나에게서
용서(容恕)나 사랑 따윈 바라지도 마시오.
한 때 난 당신을,
내 자신(自身)처럼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소.

그러나 당신에게
철저(徹底)히 배신(背信)당하고 버림받은 나는
당신에 대한 사랑이
불타는 질투(嫉妬)와 증오(憎惡)로 변(變)해버렸소.

나에게 끔찍한 고통(苦痛)을 안겨준
당신을 용서(容恕)할 수 없소.
‘바르나지 보하이르’의 심장(心臟)에 칼을 꽂는 순간(瞬間)
당신의 심장(心臟)에도 칼을 꽂고 싶었지만
죽는 순간(瞬間)까지,
저승길조차 함께 가도록 내버려둘 순 없었지.

그렇게 쉽게 보내버리기엔
내 분노(忿怒)가 너무 컸거든.

당신이 살아있는 날들을
내 곁에 두고 철저(徹底)히 갚아주겠소.
당신에게 남은 건 사랑이 아닌 증오(憎惡)뿐이요.”

그는 거칠게 그녀의 팔을 잡아채
말에 태우고 사원(寺院)을 향(向)해 달렸다.


♡.6

성대(盛大)하고
화려(華麗)한 결혼식(結婚式)이
온 마을의 축제(祝祭)처럼 연일(連日) 이어지고
붉은 비단과 꽃과 과일로 꾸며진
화려(華麗)하고 아름다운 신방(新房)이 차려졌다.

붉은 비단과 금빛 비단으로 지은
화려한 신부 의상(新婦衣裳)과
꽃과 향유(香油)로 단장(丹粧)한 검고 윤기(潤氣) 나는 머리채
금장식(金粧飾)과 보석(寶石)으로 단장(丹粧)한
‘미르 마핫타’는 장미(薔薇)보다 더 아름다웠다.

가는 금사(金絲)로 수놓은
얼굴을 가린 긴 베일이
언듯언듯 보이는 고운 얼굴을
더욱 기품(氣品)있고 아름답게 꾸며준다.

악사(樂士)들의 연주(演奏) 소리와 함께
금빛 신랑 의상(新郞衣裳)을 입은
신랑(新郞)이 신방(新房)에 들어온다.

다소곳한 신부(新婦)를 보자
손짓으로 악사(樂士)들이 물러가기를 명(命)한다.

잠시 멈추어서 신부(新婦)를 찬찬히 건네다 본다.
오, 정말 아름답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女人)이다.

그는 다가가 금빛 베일을 벗긴다.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인
신부(新婦)의 슬픈 눈동자와 마주하자
그는 분노(忿怒)했다.

“감히 내 신방(新房)에서
죽은 정부(情夫)를 생각하며 눈물 짓고 있다니,
괘씸한 것 같으니라구.
이제부턴 내가 너의 주인(主人)이다.
넌 저 말처럼 나의 소유(所有)인 것이다.
신랑(新郞)을 두고 정부(情夫)를 생각하다니
창녀(娼女)와 다를 바 없구나, 더러운 계집!!”

그는 벽(壁)에 걸려있던 말채찍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신부(新婦)를
거칠게 밀어 침상(寢牀)으로 쓰러뜨린 후
사납게 등쪽의 옷을 두 쪽으로 찢었다.
하얀 등이 드러나자
채찍이 허공(虛空)을 가르며 등 위로 떨어졌다.

비명(悲鳴)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왜곡(歪曲)되고 비틀린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7

그 날 이후(以後)로
‘미르 마핫타’와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의
이중적(二重的)인 날들이 시작(始作)되었다.

연회(宴會)가 있거나 외부(外部) 손님을 맞을 땐
기품(氣品) 있는 고급(高級)스런 비단(緋緞)옷과
금은보석(金銀寶石)으로 화려(華麗)하게 장식(裝飾)한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궁(宮)처럼 아름답게 지어진 별채로 들어서면
종들이 입는 남루(襤褸)한 옷을 입고
처음해보는 익숙지 않은 일들을 해야 했다.

금지옥엽(金枝玉葉) 자란 그녀가
그런 거친 일을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럴 때마다 폭언(暴言)과 폭력(暴力)에 시달렸다.

“‘미르 마핫타’ 이 쓸모없는 것!!
남편을 배신(背信)한 이 창녀(娼女),
감히 내 부인(婦人)이 될 자격(資格)이 없어
종으로라도 부리려 했더니 게으르기 이를 데 없어
종으로도 쓸 수가 없구나.
게으른 종에게는 채찍만큼 좋은 약(藥)이 없지.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겠다.”

이어 바람을 가르는 채찍소리,
자신(自身)도 모르게 부르르 떨며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무너질대로 무너진 자존감(自存感)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
그리고 비명(悲鳴) 소리를 내지 않는 것
그것만이 그녀가 그를 상대(相對)로 할 수 있는
유일(唯一)한 대항(對抗)이었다.

그러자 그의 광적(狂的)인 학대(虐待)는
도(度)를 더해갔다,
집안으로 창녀(娼女)들을 불러들여 술판을 벌이고
‘미르 마핫타’를 괴롭혔다.

어느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
품위(品位) 있게 잘 차려 입힌 ‘미르 마핫타’를
창녀(娼女)들과 질펀하게 놀던 자리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그녀의 주위(周圍)를 돌며
창녀(娼女)들을 향해 비꼬듯 말했다.

“애들아, 이 여인(女人)을 보라.
아름답고 도도하지 않느냐?
온갖 학대(虐待)에도 꺾이지 않는
저 오만(傲慢)한 돌처럼 차가운 얼굴을 보라!!
아주 우아(優雅)한 귀부인(貴婦人)의 모습이 아니더냐?”

그는 말을 끊고 창녀(娼女)들을 돌아보더니
그 중 가장 음란(淫亂)한 모습의 벌거숭이나 다를 바 없는
가장 천박(淺薄)한 창녀(娼女)를 지목(指目)해
나란히 불러 세웠다

“애들아, 이 두 여인(女人)을 보라.
하나는 우아(優雅)한 귀부인(貴婦人)의 모습이요
하나는 천박(淺薄)한 창녀(娼女)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정말 하늘땅처럼 다른 귀부인(貴婦人)과 창녀(娼女)더냐?

아니다, 아니니라!
이 우아(優雅)하고 기품(氣品) 있는 표정(表情)은
가면(假面)이니라.
저 온갖 보석(寶石)으로 장식(裝飾)한 머리통 속에는
다른 놈이 가득 들어 있단 말이다.
남편(男便)인 내가 아닌,
백설(白雪)처럼 희고 고운 저 가슴 속에도
죽은 정부(情夫)놈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이다.
내가 들어설 틈은 바늘 끝만큼도 없다구!!”

그의 눈에는 순간(瞬間) 살기(殺氣)가 돈다.

“애들아, 그러니 귀부인(貴婦人)과 창녀(娼女)가
무슨 의미(意味)가 있겠느냐? 내 증명(證明)해 보이지.
어서 득달같이 달려들어
저 두 여인(女人)의 옷을 바꾸어 입혀봐라.
그리고 저 귀부인(貴婦人)을
세상(世上)에서
가장 음탕(淫蕩)한 창녀(娼女)로 꾸며준다면
내 금화(金貨) 열 닢을 상(賞)으로 더 주겠다!”

잔인(殘忍)한 미소(微笑)를 머금고 있던
창녀(娼女)들이 환호성(歡呼聲)을 올리며
우르르 몰려나와 빠른 손놀림으로
두 여인(女人)의 옷을 벗기고 바꾸어 입혔다.

‘미르 마핫타’의 청초(淸楚)한 얼굴에
가면(假面)처럼 두꺼운
창녀(娼女)의 화장(化粧)이 덧칠해졌다.

귀부인(貴婦人)으로 성장(盛裝)한 창녀(娼女)가
귀부인(貴婦人)의 흉내를 내자
지켜보던 다른 창녀(娼女)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두 눈에
순간(瞬間) 다시 살기(殺氣)가 돈다.
그는 한 손에는 채찍을,
다른 한 손에는 금화(金貨) 한줌을 가득 움켜쥐고는
두 여인(女人) 앞으로 다가갔다.

“너도, 너도 똑같은 창녀(娼女)로구나.
자 금화(金貨)다.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겠지?
이 정도 금화(金貨)라면 말이다!”

그는 비단주머니에 든 금화(金貨)를
한 주먹 가득 꺼내
두 여인(女人)의 얼굴에 던졌다.

이어 날카로운 채찍이
두 여인(女人)에게 번갈아 떨어졌다.

일순(一瞬),
마구 떠들어대던 창녀(娼女)들이
약속(約束)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고
싸늘한 공포(恐怖)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렇게 무서운 밤이 지나고 있었다.

‘미르 마핫타’는
자신(自身)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걸 감지(感知)한다.
이제는 더 이상 버텨낼 여력(餘力)이 없음을
직감(直感)한다.


♡.8

더 이상 그의 채찍을 피하지도
고통(苦痛)으로 울부짖지도 않았다.
무표정(無表情)하게 이를 악물고 견뎌내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자
그에게도 자신(自身)도 모르는 변화(變化)가 찾아왔다.
모든 것이 시들해진 것이다.
마치 삶의 목표(目標)와 중심(中心)을 잃은 것처럼......

복수(復讐)의 화신(化身)이 되어,
그 잔인(殘忍)한 불길 속에 자신(自身)을 태우며
복수(復讐)의 비틀린 쾌감(快感)에 젖어 지났는데......

이제 이 미친,
광풍(狂風)과도 같은 변태(變態) 짓을 그만두고
아이라도 낳아볼까 잠시 생각해 본다.
딸이라면 ‘미르 마핫타’ 그녀를 닮은
정말 천사(天使)처럼
어여쁜 아기가 태어날 것이고
아들이라 해도 그녀를 닮은
수려(秀麗)한 외모(外貌)의 아기가 태어날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자신(自身)이 찔러 죽인 ‘바르나지 보하이르’의
망령(亡靈)이 집요(執拗)하게 떠올라
도저히 용서(容恕)할 수가 없었다.

‘미르 마핫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다시금 곰곰 생각해 본다.

그의 입가에 잔인(殘忍)한 미소(微笑)가
일그러지듯 걸린다.

씨종들에게 입히는
짧은 종복을 입혀 ‘미르 마핫타’를
자신(自身)에게 데려오라 하였다.

수척(瘦瘠)해지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의 나이 이제 열아홉...
3년(三年)의 세월(歲月)이 흐른 것이다.

애증(愛憎)으로
늪처럼 질척거리던 3년이
어느새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넌 나의 부인으로 내게 시집 왔으나
정부(情夫)가 있는 채로 와
부인(婦人)으로서의 자격(資格)을 이미 잃었고
종복으로 곁에 두고 일을 시키려 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못하니 넌 쓸모없는 게으른 종이다.
3년간 채찍으로 다스려 봤으나 별 진전(進展)이 없음에...

‘미르 마핫타’
넌 내 소유(所有)이고, 나의 종이니
당연히 밥값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부로 널
내 호위무사(護衛武士) 일곱 명에게 내어준다.

혈기왕성(血氣旺盛)한 젊은이들이니
그들의 잠자리 시중을 잘 들도록 하여라.

추호(秋毫)라도 소홀함이 있다면
널 다시 종놈들에게 내어줄 것이고
그래도 정신(精神)을 차리지 못한다면
이미 네가 본 그 창녀(娼女)들에게 넘겨
창녀소굴(娼女巢窟)로 보내 버리겠다.
끌고 가라!!”

명령(命令)을 기다리고 있던
건장(健壯)한 호위무사(護衛武士) 둘이
그녀를 끌고 무사(武士)들의 숙소(宿所)로 데려갔다.

일곱 명의
젊은 무사(武士)들이 그녀를 에워싼다.

이제는 생명줄을 놓아버려야 할 시간(時間)이
다가왔음을 안다.

‘곧 ‘바르나지 보하이르’를 만날 수 있겠지?‘

그녀의 입가에 희미(稀微)한 미소(微笑)가 걸린다.
언젠가부터 말라버렸던
그녀의 눈가에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13세의 소년(少年) ‘바르나지 보하이르’가
꽃이 가득 핀 들판에서 꽃 화환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를 향(向)해
꽃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여섯 살 꼬마소녀 ‘미르 마핫타’

소녀(少女)에게 방금 엮은
꽃 화환(花環)을 씌워주고는
번쩍 안아 빙글빙글 도는 소년(少年)
하늘도 돌고 꽃도 돌고,

작은 새처럼 사랑스런 꼬마 연인(戀人)들도 돌고
그 둘의 웃음소리가 햇살에 부서져 내린다.

가장 밝고 아름다웠던
‘머무르고 싶은 순간(瞬間)’ 속에서
‘미르 마핫타’의
기억(記憶)이, 숨결이 멈춘다.

그녀의 나이 열아홉 되던 해
연분홍 꽃송이 꽃바람에 떨어져
피지도 못한 채...

꽃비로 내리던 봄 날
꽃향기로 가득한 봄날의 밤이었다.


♡.9

‘바르나지 보하이르’
‘미르 마핫타’와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는
수백 년(數百年)의 망각(妄覺)의 강(江)을 건너

금생(今生)에
아내와 남편(男便)으로 맺어져
표면의식(表面意識)으로는 기억(記憶)하지 못하겠지만
아뢰야식(阿賴耶識 skt. Alaya-vijnana)에
강(强)하게 각인(刻印)되어 있는
전생(前生)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反復)해 살고 있다.

‘바르나지 보하이르’
역시 이번 생(生)에 그들과 같이 윤회(輪廻)했지만
적극적(積極的)으로 그들의 생(生)에 개입(介入)하지는 않았다.
전생(前生)에서의
허무(虛無)한 죽음에 대한 깊은 회한(悔恨) 때문이다.

자신(自身)에게 깊은 상처(傷處)를 주고
젊은 나이에 죽게 만든 ‘미르 마핫타’를
피(避)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번 생(生)의 남편(男便)과 결혼(結婚)하기 전(前)
잠시 그들은 전생(前生)의 기억(記憶)에
이끌려 서로 인연(因緣)을 가졌지만
이런 연고(緣故)로 헤어졌을 것이고

이번 생(生)에
결혼(結婚)이 늦어진 이우(理由)가 되었을 것이다.


♡.10

이 작고 예쁜 연인(戀人)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보며 눈물 짓는다.

전생(前生)과 금생(今生), 내생(來生)을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

인간(人間)이 지닌
가장 크고 질긴 집착(執着)이 사랑인가 한다.
그로인(因)해 질긴 인연(因緣)의 고리로
서로 얽혀들고 또 얽혀드니......

사람들의 아뢰야식(阿賴耶識 skt. Alaya-vijnana)
깊숙이 저장(貯藏)되어 있는,
세세생생(世世生生)의 삶의 편린(片鱗)들을
그들의 필요(必要)와 요청(要請)에 의해서
숙명통(宿命通)을 통해 언듯언듯 들여다본다.


집착(執着)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늘처럼 달도 별도 해도,
천둥과 비바람도, 폭풍(暴風), 한설(寒雪)도,
고운 노을까지 모두 담아내고
흔적(痕迹)도 없이 지워내는
그런 ‘하늘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

해탈(解脫 skt. Vimoksa) 대자유(大自由)는
하늘같은 사랑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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