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9 (22:03) from 183.99.6.123' of 183.99.6.123' Article Number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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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담(前生譚)  <29> 슬픈 사랑-애증(愛憎)의 참혹(慘酷)한 결말(結末), 그 다음
전생담(前生譚) <29> 슬픈 사랑-애증(愛憎)의 참혹(慘酷)한 결말(結末)
그 다음 생(生) 이야기


숙명통(宿命通)을 통해
그녀와 그 배우자(配偶者)가 얽힌 생(生)을
추적(追跡)해 들어간다.
이번 생(生)에까지 영향(影響)을 주는
악연(惡緣)의 고리를 찾아...

이번 생(生)의 전생(前生)과 바로 그 전생(前生),
두 번이나 그들은 질기게 얽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례적(異例的)으로
두 개의 전생(前生)을 풀어준다.

전생(前生)과 금생(今生), 내생(來生)을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

인간(人間)이 지닌
가장 크고 질긴 집착(執着)이 사랑인가 한다.
그로인(因)해 질긴 인연(因緣)의 고리로
서로 얽혀들고 또 얽혀드니......

사람들의 아뢰야식(阿賴耶識 skt. Alaya-vijnana)
깊숙이 저장(貯藏)되어 있는,
세세생생(世世生生)의 삶의 편린(片鱗)들을
그들의 필요(必要)와 요청(要請)에 의해서
숙명통(宿命通)을 통해 언듯언듯 들여다본다.


♡.1

1832년 인도(印度)의
작은 국경(國境) 마을 근교(近郊)의 숲에서 태어난
‘바르나지 보하이르’와
‘미르 마핫타’와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는
애증(愛憎)으로 얽히어 세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요절(夭折)했다.

‘바르나지 보하이르’와 ‘미르 마핫타’의 죽음은
소상(昭詳)히 밝혔다.
여기서는
그들 둘을 질투(嫉妬)로 인(因)해 죽게 만들었던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의 죽음으로부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둘이 죽자
복수(復讐)로 통쾌(痛快)할 줄 알았던 그는
허무(虛無)로 덮쳐오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괴로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두 연인(戀人)의 악몽(惡夢)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자신(自身)의 행동(行動)을 후회(後悔)했고
깊은 회한(悔恨)에 잠겼다.
그러나 ‘미르 마핫타’를 도저히 용서(容恕)할 수는 없었다.
너무도 깊은 애증(愛憎)으로 인(因)해......

‘미르 마핫타’가 죽은 지 1년이 되던 어느 날
독주(毒酒)를 마셔도 취기(醉氣)가 오르지 않는
음울(陰鬱)함으로 거리를 걷다가

창백(蒼白)하고 여윈 창녀(娼女) 하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사납게 그녀를 밀쳐버렸고
그녀는 그의 발아래 쓰러졌다.

그런데 그 창녀(娼女)가 그의 발을 꼭 부여안고
울며 사정(事情)을 하는 거였다.

“제발, 저 애들을 먹일 수 있도록..
빵 한 덩어리만 살 수 있도록..제발..
벌써 이틀째.. 저애들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답니다.
오늘까지 먹지 못한다면..굶어 죽을 거예요.”

그는 발을 빼려했지만
그 창녀(娼女)는 온 힘을 다해 그의 발에 매달렸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올망졸망한 삼남매(三男妹) 아이들이
초라한 행색(行色)으로
서로의 체온(體溫)을 의지(依支)한 채
계단(階段) 옆에 모여 앉아있었다.

아이들의 서글픈 커다란 눈망울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는 손가락에 낀 보석(寶石) 반지를 뽑아주려 했다.

그러자 그 창녀(娼女)는
황급(遑急)히 손사레를 쳤다.

“아닙니다 나리,
이렇게 귀(貴)한 것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이것을 팔수 없답니다.
오히려 도둑으로 몰릴 것입니다.
아이들과 제가 굶어죽지 않도록
몇 덩이의 빵을 살 수 있는
동전(銅錢) 몇 푼이면 족(足)합니다.”

그는 의외(意外)의 반응(反應)에 비로소
그 창녀(娼女)를 눈여겨보았다.
낡고 헤어진 옷을 입은 소박(素朴)한 아낙이었다.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거리로 나선
평범(平凡)한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는 조끼 주머니를 뒤져 동전(銅錢)을 찾아
그 여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微笑)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손사레를 치는 그녀의 거친 손에
지폐(紙幣) 몇 장도 함께 쥐어 주었다.

그녀는 그의 발에 입 맞추며
진심으로 감사(感謝)를 표(表)하고는

“신(神)께서 나리를 축복(祝福)하시길...”

이라고 말하고는
동전(銅錢)을 꽉 움켜쥐고
세 아이들을 불러 나르듯
길 건너편 빵집을 향해 내달았다.

마침 화덕에서 갓 구워낸 빵을 꺼내고 있어
구수한 빵 냄새가 난다.
빵 한 덩이로 행복한 미소(微笑)가 가득한
아낙과 세 아이들을 건네다 보며
그는 자신(自身)도 모르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미소(微笑)를 짓는다.

그가 다시 발걸음을 옮길 때
그를 따르는 음험(陰險)한 그림자가 있었다.

그가 무언가 섬뜩한 기운을 느껴
뒤를 돌아보자
살기(殺氣)로 가득 찬 증오(憎惡)의 눈빛과 마주쳤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얼굴...
‘미르 마핫타’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가 그를 기억(記憶)해내는 순간(瞬間)
그의 심장(心臟)에 비수(匕首)가 깊이 박혔다.

“내 누이, 미르 마핫타의 복수(復讐)다!!”

그제서야 그는
영국(英國)에서 공부(工夫)를 하고 있던
그녀의 오빠를 기억(記憶)해 내었다.

‘삿티바르 아할리바 마핫타’
그의 이름이 왜 이렇게 뚜렷이 기억(記憶)이 날까?

‘삿티바르 아할리바 마핫타’와 ‘미르 마핫타’
그들은 남매(男妹)였고 유난히 사이가 좋았다.

여동생 ‘미르’가
달리 좋아하던 연인(戀人)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부모(父母)님의 생각처럼
좋은 환경(環境)의 신랑(新郞)을 만나
잘 살기를 바랐기에
이 결혼(結婚)에 침묵(沈?)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英國)으로 떠나기 전
잠시(暫時) 만난
여동생의 얼굴에는 수심(愁心)이 가득 했고
어쩐지 행복(幸福)해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무거운 돌로 짓누르듯 답답하고 슬펐다.
여동생의 슬픔이 그대로 화살이 되어
가슴으로 꽂히는 것 같았다.

♡.2

‘미르 마핫타’가 죽었다는 비보(悲報)를
영국(英國)에서 들은 그는 하던 공부(工夫)를 접고
부모(父母)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귀국(歸國)했다.

자꾸만 꿈속에 나타나는 여동생이
예사(例事)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동생은 건강(健康)하고 밝은 아이였다.
결혼(結婚)한 지 삼년(三年) 만에 병(病)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귀국(歸國)하여
그는 동생의 남편(男便)이었던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의 하인(下人)들을
매수(買收)하였고
그들로부터 여동생의 비참(悲慘)한 삶과
죽음의 전모(全貌)를 알게 되었다.

22세의 나이로 억울(抑鬱)하게 죽은
여동생의 원한(怨恨)을 갚기 위해 그는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를 미행(尾行)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
동생을 죽인 원수(怨讐)의 가슴에 비수(匕首)를 꽂아
원수(怨讐)를 갚은 것이었다.

이리하여
애증(愛憎)으로 얽히고 얽혔던
그 세 젊은이 모두는 요절(夭折)하고 만다.


♡.3

셋 다 수(壽)를 다 누린 자연사(自然死)가 아니었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事件)으로 삶이 단절(斷絶)되었고,

강한 집착(執着)과 애증(愛憎)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瞬間)까지
서로 얽힌 감정(感情)의 극(極)한 실타래를 풀지 못했기에
다시 질긴 인연(因緣)으로
다음 생(生)에 바로 다시 얽혀든 것이다.

요절(夭折)로 인(因)해
이 셋은 비교적 빠르게
다시 인간계(人間界)로 윤회(輪廻)하게 되었다.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는
지옥(地獄)에 갈만한 과보(果報)를 지었지만
굶어죽게 된 과부(寡婦)와 세 아이를 도와준 선행(善行)으로
지옥(地獄 skt. Naraka)을 면(免)했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삶이 이어 다시 주어졌다.

‘미르 마핫타’와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는
강한 애증(愛憎)과 집착(執着)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바르나지 보하이르’ 역시
그들의 회오리 속에 휘말리듯 같이 윤회(輪廻)하나
전혀 다른 삶을 선택(選擇)한다.

그는 질긴 악연(惡緣)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4

1879년 12월 대림절(待臨節) 중
금요일(金曜日) 오후(午後)였다.

독일(獨逸)의 한적(閑寂)한 마을 언덕에 위치한
봉쇄 수도원(封鎖修道院) 지원(支院)에
본원(本院)으로부터
젊은 수도사(修道士)가 파견(派遣)되어 왔다.

수련장(修練長)인 요셉신부(神父)님이
계단(階段)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친 바람에
미카엘수사(修士)가 대신
수도원장(修道院長)의 호출(呼出)을 받고
긴 회랑(回廊)을 지나 원장실(院長室)로 갔다.

키가 크고 체격(體格)이 좋은 청년(靑年)이었다.
요한 수사(修士)였다.

수도원장(修道院長)의 소개(紹介)로
다소곳이 내려뜬 눈을 치켜들고
눈이 마주치자

미카엘수사(修士)는
무언가 소름 돋는 듯
불쾌(不快)한 첫 인상(印象)을 받았다.

요한수사(修士) 역시
처음 대하는 미카엘수사(修士)가
비슷한 연령대(年齡帶)임에도 전혀 끌리지 않는,
솔직히 비 호감(非好感)이었다.

냉랭(冷冷)하게
말없이 자신(自身)을 인도(引導)하는
미카엘수사(修士)를 따라가며
어쩐지 그가 적의(敵意)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아니 어쩜 자신(自身)이 그에게
알 수 없는 적의(敵意)를 느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긴 회랑(回廊)을 지나
수련장(修練長)과 첫 대면(對面)을 하러갔다.

직속(直屬) 수련장(修練長)인 미카엘수사(修士)의
창백(蒼白)하게 흰 얼굴과 싸늘한 파란 눈,
엷은 입술이 파르르 경련(痙攣)을 일으키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쩐지 앞날이 순탄(順坦)치 않을 것이라는
불길(不吉)한 예감(豫感)이 스치며
불편(不便)한 심경(心境)을
애써 진정(鎭靜)시키고 있었다.

♡.5

비교적 나이 많은 수도사(修道士)들이,
본원(本院)에서 나이가 많거나 병든 수사(修士)들이
양로(養老)나 요양(療養)을 위해 이 곳 지원(支院)으로 왔다.

젊은 수사(修士)들이 이들을 수발하고 돕기 위해
본원(本院)에서 간병(看病) 일을 배우고
이 지원(支院)으로 파견(派遣)되었다.

요한수사(修士)는
활동 수도회(活動修道會)에 있다가
자신(自身)의 성향(性向)과는 잘 맞지 않아
이 봉쇄 수도원(封鎖修道院)으로 옮겨왔고
이곳이 첫 부임지(赴任地)이기도 한 것이다.

다음 날
긴 회랑(回廊)을 청소(淸掃)하는 것으로부터
고된 일과(日課)가 시작(始作)되었다.

요한수사(修士)와 미카엘수사(修士)가
함께 하기로 했었지만
미카엘수사(修士)는 사이사이
식당(食堂)으로 나올 수 없는 신부(神父)님들의
식사(食事)와 차(茶)를
침대(寢臺)로 가져다주어야 한다며 빠져나갔고
혼자서 청소(淸掃)를 다 해야 했다.

원장(院長) 신부(神父)님이 지나가는
시간(時間)을 맞추어
돌아와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러려니 했는데
그런 일이 계속 반복(反復)되었다.

♡.6

5월의 어느 날
장미(薔薇)가 흐드러지게 피어 장미향 짙은 오후
정원지기인 요셉수사(修士)님이 연로(年老)해
그를 도와주라는
수련장(修鍊長) 신부(神父)님의 명(命)을 받고
장미정원(薔薇庭園)에서 일을 할 때였다.

마른 잎을 떼어주고 흙을 북돋우어 주느라
잠시(暫時)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자
요셉수사(修士)님이 자신이 좀 전까지 손을 보던
장미덩쿨 앞에 서서
이마에 깊은 주름을 지은 채 화가나 있었다.

그가 다가서자
애써 화를 누르며 말문을 연다.

“요한수사(修士)님,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의 손에 들린
목이 짧게 잘린 장미 송이들을 보며
당혹(當惑)해 했다.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장미정원(薔薇庭園)으로 갈 수 없었다.

수도원(修道院)에 들어와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이었는데,
성모님 상(聖母像)을 장식(裝飾)해 드릴 때면
정말 기뻤는데,
아니 흙을 나르는 일조차도 좋아했는데......

그 일로 인(因)해
그는 일과(日課)가 끝난 시간(時間)
성체조배(聖體朝拜)를 하며 반성(反省)해야만 했다.

그때 자신(自身)이 한 일이 아니란 걸
밝혔어야만 했는데...라며
그는 회한(悔恨)에 잠긴다.

‘내가 한 짓이 아니에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당시 장미정원(薔薇庭園)에는
자신(自身)과 미카엘 수사(修士)밖에 없지 않았는가?

그가 꾸중을 들을 때, 억울한 심정(心情)에
미카엘 수사(修士)를 흘깃 건네다 보았는데
겸손(謙遜)하게 손을 모우고 허리를 굽힌
그의 입술 끝이 올라가는 것을 분명히 보지 않았던가?

보일 듯 말 듯
그의 입술 끝에 걸렸던 잔인(殘忍)한 미소(微笑)...

그 이후로도 그와 유사(類似)한 사건(事件)들이
치밀(緻密)하고 교활(狡猾)하게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번번이 변명(辨明)조차 허락(許諾)되지 않았다.

이러다 수도원(修道院)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닐까?
내심(內心) 불안(不安)할 정도(程度)였다.

도대체 사사건건(事事件件) 그가 왜?
자신(自身)을 교활(狡猾)하게, 지속적(持續的)으로
괴롭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7

그렇게 길고 혹독(酷毒)했던 겨울을 끝으로
힘들었던 한해가 지나가고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순절(四旬節)을 지나며
부활축제(復活祝祭)를 준비(準備)하기 위한 장보기에
젊은 두 수사(修士)가 보내졌다.

사람 좋은 정육점(精肉店)의 베드로가
자신(自身)의 과부(寡婦) 딸에게
미리 남겨두었던 신선(新鮮)한 고깃덩이 하나를
더 꺼내오게 하였고
부활절(復活節) 선물(膳物)로 그들에게 내어주라 하였다.

이제 갓 서른이 된 마틸타는
나란히 서있는 두 수사(修士) 중
요한수사(修士)에게 고깃덩이를 내밀었고
요한수사(修士)는 목례(目禮)로 고마움을 표(表)했다.
그녀는 가볍게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人事)를 하고는
수줍은 미소(微笑)를 지었다.

사과처럼 붉은 볼,
건강(健康)한 혈색(血色)의 붙임성 있는
젊은 여인(女人)이었다.

짙은 갈색머리가 곱슬거리며
귀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었고
인사(人事)를 하느라 몸을 숙인 탓에
풍만(豊滿)한 가슴골이 살짝 드러나 보였다.

미카엘 수사(修士)의 눈에
그녀의 가슴골이 유난히 크게 들어온다.

그렇게 그들은 서둘러 장보기를 마치고
수도원(修道院)으로 돌아왔다.


미카엘 수사(修士)는
수련장(修鍊長) 신부(神父)님에게
면담(面談)을 요청(要請)했고..
고민이 깊은 듯 잠시 머뭇거리다
푸줏간집 딸 마틸다에게 받는 고깃덩이를
불쑥 내밀었다.

“미카엘 수사(修士), 그건 고기가 아니요?
오늘 장보아 온? 그걸 왜 여기 들고 왔오?”

수련장(修鍊長) 신부(神父)님의 질문(質問)에
그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최대(最大)한 목소리를
비통(悲痛)한 듯 낮추며 말문을 연다.

“신부(神父)님,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하는
제가 원망(怨望)스럽습니다만
우리 수도 공동체(修道共同體)를 위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 용기(勇氣)를 내어 왔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요한수사(修士)를 위해서도요...”


수련장(修鍊長) 신부(神父)님은
그를 일어나라 손짓하고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푸줏간을 하는 베드로의 젊은 과부(寡婦) 딸
마틸다와 요한수사(修士)가......”로
시작(始作)된 그의 이야기는

“남녀 간(男女間)의 정욕(情慾)에 불타는
시선(視線)이 교환(交換)되고.....
요한수사(修士)에게 이 고깃덩이를
따로 내어 준 것입니다.”

이렇게 끝을 맺었다.
물론 베드로가 딸에게 눈짓을 하여
그 고깃덩이를 내어주도록 한 것은
고(告)하지 않았다.

수련장(修鍊長) 신부(神父)님은
곧바로 원장(院長) 신부(神父)님께
이 사실을 고(告)했고, 요한수사(修士)의 일을
어떻게 처리(處理)할 것이지 의논(議論)하였다.

수련장(修鍊長) 신부(神父)님은
이참에 평소(平素)에도 소소한 문제(問題)를
자주 일으키는 그를 엄벌(嚴罰)하든지,
자질(資質)이 부족(不足)한 것 같으니
내보내는 것이 어떠하냐?는 의견(意見)을 내었고

원장(院長) 신부(神父)님은
좀 더 신중(愼重)하게 처리(處理)하자며
일단 미카엘 수사(修士)의 말을
직접 가서 확인(確認)할 수도 없고

그 과부 딸이 호의(好意)로 준 것을
미카엘 수사(修士)가
오해(誤解)한 것일 수도 있다는
여지(餘地)를 남겼다.

설령 그러한 생각이 잠시(暫時)
충동적(衝動的)으로 있었더라도
그의 나이 이제 스물넷이니...
정욕(情慾)의 문제(問題)는 개인차(個人差)가 있겠으나
백발(白髮)이 되어서도
쉬이 극복(克服)하기 어려운 문제(問題)이니
이번 일은 징계(懲戒)로 끝내고
그를 축출(逐出)할 정도(程度)의
중(重)한 실책(失策)은 아님을 설득(說得)했다.

그 다음날
요한수사(修士)에게
목장(牧場) 일과 복도 청소(複道淸掃) 일을 끝낸 후
성체조배(聖體朝拜)를 하고 성찰일기(省察日記)를 쓰라는
징계(懲戒)가 더 내렸을 뿐...
별 문제(問題)없이 지나갔다.

미카엘 수사(修士)는 하루 종일
불편(不便)하고 화난 심기(心氣)를 애써 감추고는
일과(日課)가 끝난 후
자신(自身)의 방으로 들어와 생각에 잠겼다.

자신(自身)이 처음으로
이 수도원(修道院)에 들어왔을 때는
모든 것이 감사(感謝)하고 평화(平和)로웠다.

수도원(修道院)의 엄(嚴)한 계율(戒律)과
절제(節制)된 생활(生活)조차도
잘 적응(適應)했고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을 잘 지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시작(始作)한 건
바로 그 요한수사(修士)가 이곳으로 온
그 때부터였다.

그를 처음 보는 순간(瞬間)
심장(心臟)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마치 심장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것 같은
짓눌리는 듯한 중압감(重壓感),
불쾌(不快)한 기분(氣分)은 계속 이어졌다.

이상하게도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
쓰라림이 그를 볼 때마다 일어났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 평화(平和)가 깨어졌다.

요한수사(修士)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다 거슬렸고 싫었다.
그냥 그의 모든 것이 다 싫었던 거다.

수도원(修道院)에서
젊다는 이유(理由)만으로
그와 항상(恒常) 얽혀 일하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항상(恒常)
비교(比較)된다는 강박증(强迫症)에 시달렸고
시기(猜忌), 질투(嫉妬)와
경쟁심(競爭心)도 스물스물 기어 올라왔다.

♡.8

그해 늦가을

요한수사(修士)와 미카엘 수사(修士)는
자다말고 한밤중에 깨어
요셉신부(神父)님을 도와 외양간에서 젖소가
송아지를 출산(出産)하는 걸 거들게 되었다.

몇 시간(時間)을 끌다
무사히 건강(健康)한 송아지를 출산(出産)했고
요셉신부(神父)님은 나이 탓에 피로(疲勞)한 듯
그들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먼저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니 벌써 날이 저물어
미카엘 수사(修士)가 등불을 들고 앞장 서
수도원 입구까지 갔다가
이미 저녁 시간이 지난 지 오래라
식당(食堂)에 들러 빵과 우유를 챙겨들고
다시 외양간으로 갔다.

요한수사(修士)가
밤새 잠을 못잔 탓에 피곤(疲困)했던지
새 건초를
송아지 우리에 잔뜩 깔아주고는
그를 기다리다 건초더미에서 잠이 들었다.

“요한 수사(修士)님”

미카엘 수사(修士)는
소리를 죽여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미카엘 수사(修士)는
좀 더 다가가 다시 작은 소리로 그를 부른다.

“요한 수사(修士)님”

그가 미동(微動)도 하지 않자
바로 그의 얼굴 앞까지 다가가
등불로 얼굴을 비추며 다시 그를 부른다.

“요한 수사(修士)님”

등불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진다.
순간(瞬間)
그의 얼굴에서 어떤 얼굴이 스친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알 수 없는 증오심(憎惡心)이 불처럼 일어난다.
살의(殺意)..

미카엘수사(修士)는
화들짝 놀라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인기척에 요한 수사(修士)가 잠결에 눈을 떴다.
그의 눈과 정면(正面)으로 마주치자
온몸에 맥이 풀리듯 등불을 들고 있던 손이 풀린다.

등불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며
순식간(瞬息間)에
요한 수사(修士)의 수도복(修道服) 자락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불길에 놀란
미카엘 수사(修士)가 도망치려하자
요한 수사(修士)의 불붙은 손이
그의 수도복(修道服) 자락을 움켜쥐었다.

순식간(瞬息間)에 그에게로 불이 옮겨 붙었다.
그는 데굴데굴 바닥에 굴렀지만
건초더미로 인해 불길은 더 치성(熾盛)하게 타올랐다.

외양간에서 치솟는 불길을
뒤늦게 발견(發見)한 수도사(修道士)들이
힘을 합해 불길을 잡았지만
때마침 불어온 강풍(强風)과 건초더미들로 인(因)해
외양간이 다 전소(全燒)되고 나서야
불길을 잡을 수가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事故)였고
다행(多幸)히 불길은
외따로 떨어져 있던 외양간만 태우고
수도원(修道院)에 별다른 피해(被害)를 주진 않았다.

그러나 두 명의 젊은 수사(修士)가 타죽었으니
이는 큰 사건(事件)이었다.

그럼에도 수도원(修道院)에서 어찌된 영문인지
하느님의 가호(加護)를 받지 않은 것처럼
주민들을 혼란(昏亂)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이유(理由)로
화재 사건(火災事件)은 비밀(秘密)에 부쳐졌다.

두 명의 젊은 수사(修士)도
병사(病死)로 처리(處理)되었다.


♡.9

불교(佛敎)의 원리(原理)에는

一切 唯心造
일체 유심조

‘모든 것이 오로지 마음으로 지은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이 사례자(事例者)의 전생(前生)을 풀이 하면서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겨보게 된다.

이번 생(生)에서 이런 예기치 못했던 죽음을
맞게 된 것이 과연 우연(偶然)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미카엘 수사(修士)가
실수(失手)로 등불을 떨어뜨려
화재(火災)가 난 것 같지만

요한 수사(修士)의 잠든 모습을 보고
그는 자신(自身)도 모르게
전생(前生)의 기억(記憶)을 떠올린다.

요한 수사(修士)의 모습에서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 순간(瞬間)
시공(時空)의 경계(境界)가 무너지며
미카엘 수사(修士)는 ‘미르 마핫타’가 된 것이다.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가
자신(自身)에게 한 짓을
아뢰야식(阿賴耶識 skt. Alaya-vjnana)으로부터
떠올리게 되고 그에게 복수(復讐)하도록
행동(行動)하게 된 것이다.

미카엘 수사(修士)가 아니라 그 순간(瞬間)은
‘미르 마핫타’가 되어
요한 수사(修士)가 아닌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에게
복수(復讐)를 하기 위해 등불을 고의(故意)로
그의 몸에 떨어뜨린 것이다.

생사(生死)의 기로(岐路)에 선
위기(危機)의 순간(瞬間)에
6식(六識) 현재의식(現在意識) 너머의
8식(八識) 아뢰야식(阿賴耶識 skt. Alaya-vjnana),
장식(藏識)에 입력(入力) 되어있던
전생(前生)의 기억(記憶)이 떠올랐고
그를 죽이기 위해,
그의 몸에 등불을 떨어뜨린 것이다.

자신(自身)의 몸에 불이 붙는
절대 절명(絶對絶命)의 순간(瞬間)을 맞은
요한 수사(修士)는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로 돌아가
자신(自身)을 불태워 죽이려는
미카엘 수사(修士)가 아니라
‘미르 마핫타’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깊고도 처절(凄切)했던
전생(前生)의 애증(愛憎)이 일순(一瞬) 되살아나며
‘함께 할 수 없다면 함께 죽자’라는
절박(切迫)한 심경(心境)으로 그녀를 붙잡은 것이었고

그렇게 그 둘은
불길에 함께 휩싸이게 된 것이다.


♡.10

전생(前生)에서 그들은
원한(怨恨)이 사무친 원수지간(怨讐之間)이었고
상상(想像)키 어려운 극한(極限)의 증오(憎惡) 속에
삶을 요절(夭折)로 마감했다.

그 생(生)에서 그들은 너무도 강(强)한 집착(執着)으로
원한(怨恨)과 원망(怨望) 속에 죽었기에
서로 끄는 힘이 강(强)했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강(强)한 카르마(skt. Karma)로 얽혔기에
내생(來生)의 삶에 함께 윤회(輪廻)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사례(事例)에서 특이(特異)한 점 하나는
전생(前生)에서 얽혔던 네 사람의 젊은이가
한 수도원(修道院)에 함께 윤회(輪廻)한 것이다.

함께 풀어야 하는
공업(共業)의 한 사례(事例)가 되겠다.


미카엘 수사(修士)로 윤회(輪廻)한 ‘미르 마핫타’
요한 수사(修士)로 윤회(輪廻)한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

그리고 그 두 사람 외(外)에
‘미르 마핫타’의 연인(戀人)이었던
‘바르나지 보하이르’는 예레미야 신부(神父)님으로

‘미르 마핫타’의 오빠였던
‘삿티바르 아할리바 마핫타’는 마르꼬 수사(修士)로...

그 두 사람도 그 수도원(修道院)의
신부(神父)와 수사(修士)로 함께 윤회(輪廻)한 것이다.

이들의 관계(關係)와
함께 윤회(輪廻)하게 된 공업(共業)이
특이(特異)한 사례(事例)기에
다시 한 번 정리(整理)해 보면

‘미르 마핫타’와 ‘바르나지 보하이르’는
사랑하는 연인(戀人)이었고
그 사이에 부자(富者)이며 권력자(權力者)였던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가 끼어들었고

‘미르 마핫타’를 차지하기 위해
‘바르나지 보하이르’를 살해(殺害)한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

강제(强制)로 ‘미르 마핫타’와 결혼(結婚)하여
온갖 학대(虐待)를 일삼아 죽음으로 내몰고

‘미르 마핫타’의 오빠인
‘삿티바르 아할리바 마핫타’가 여동생의 복수(復讐)를 위해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를 살해(殺害)하는 것으로 끝난,
그들 네 사람의 전생(前生)이었다.

그러나 그들 네 사람은 약속(約束)이나 한 듯
같은 수도원(修道院)에
신부(神父)와 수사(修士)로 함께 윤회(輪廻)한다.

그렇게 된 원리(原理)는
그들 모두가 자신(自身)의 삶에 깊은 회한(悔恨)을 가졌고
공통점(共通點)은 모두 요절(夭折)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自身)의 삶을 씻고
치유(治癒)해줄 삶을 선택(選擇)하고자
수도원(修道院)을 선택(選擇)한 것이다.

그들 중 은원(恩怨)이 덜한
‘바르나지 보하이르’와
‘삿티바르 아할리바 마핫타’는
그 바로 다음 생(生)에서
예레미야 신부(神父)와 마르꼬 수사(修士)로
수도원(修道院)의 수도사(修道士)로써
충실(充實)히 살면서
전생(前生)의 업장(業障)을 녹였고
그 생(生)에서 얽힌 악연(惡緣)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깊고 깊은
원한(怨恨), 애증(愛憎)으로 얽혔던
미카엘수사(修士)로 윤회(輪廻)한 ‘미르 마핫타’와
요한 수사(修士)로 윤회(輪廻)한
‘바르하산 말라사지하 투미르’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신(自身)들에게 주어진 또 한 번의
윤회(輪廻)의 기회(機會)를 잘 선용(善用)하지 못하고
서로를 불태워 죽이는 것으로 복수(復讐)하여
또 다른 악연(惡緣)의 고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로인(因)해
그들은 그 다음 생(生)인 이번 생(生)에
또 다시 부부(夫婦)의 연(緣)으로 환생(還生)했고
힘든 부부생활(夫婦生活)을 하고 있다.

부디 이번 생(生)에서는
그 악연(惡緣)의 고리를 끊고
보다 더 자유(自由)로워질 수 있기를...

다행(多幸)한 것은
‘미르 마핫타’였던 그녀가 이번 생(生)에
힘든 부부생활(夫婦生活)을 통해
자신(自身)의 전생(前生)에 관심(關心)을 가진
수행자(修行者)로 윤회(輪廻)하여
그 악연(惡緣)의 고리를,
그 엉킨 매듭을 풀려는 의지(意志)가 있다는 것이다.

두 생(生)을 넘나들며
그 수행자(修行者)의 전생(前生)을 풀어 주었다.


♡.11

마치 어린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두 사람이 고무줄을 꼭 잡고 있으면
팽팽히 마주하지만

누군가가 줄을 끊어주던지,
한쪽에서 손을 놓아도
두 손이 자유(自由)로워져 떠날 수 있다는 거다.

이제 팽팽하게 탱겨진 고무줄놀이에 싫증이 났다면
다른 놀이도 한번쯤 찾아봄이 어떨까?

세세생생(世世生生) 윤회(輪廻)하는
이 꿈놀이에 이제 싫증이 났다면
이제는 공(空 skt. Sunya) 놀이로 옮겨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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