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08 (23:41) from 119.201.148.252' of 119.201.148.252' Article Number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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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자 도덕경(道德經)은 ?
<1>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사는 "박다함" 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두분 부처님의 소식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두 분 부처님의 成 道 를 축하드리고,
우주와 섭리가 뜻하는 바,
인간 완성과 인류 구제, 용화세계 -지상 천국
건설의 핵심적인 소명을 잘 이루어주시길
바랄 따름입니다.

저는 붓다가 되길 희구하는 중생이요,
중생과 붓다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凡夫 이옵니다.

모쪼록,
언제든 두분 부처님과 좋은 인연되어,
백안불의 가피력과 위신력,
법신불의 은혜로,
저 또한 하루속히 성불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자칭 메시아, 미륵불, 구세주가
적지 않음이 현실입니다.

저는 웬만하면,
넓은 아량으로 그러한 주장과 존재들을
호의로 인정하고 수긍해 주는 편입니다.

구세주가 되고 싶고,
미륵불이 되고 싶고,
메시아가 되고 싶다는데
그 뜻이 갸륵하질 않습니까..?

또한 세상에는
스승과 제자라는
영적인 연극 놀이에심취되어 있는
개인들이나 집단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스승이라는 자들이
진정으로 스승으로서의 자질과 성취를
온전히 이루었고,
제자들 또한 제자로서의 토대가
갖추어져 있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그렇지 못한 존재들이 많으니,
이를 일컬어 영적인 연극놀이라
표현했습니다.

저 또한 적잖이 세상 사람들과
영적인 자칭 스승이라는 자들에게
이가 갈릴만큼 데이고 치었기에,

웬만한 영적인 그룹이나
자타공칭 스승이라는 자들에게
관심도 갖지 않는 편이나,

제가 백화도량의 홈페이지와
안나불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3일간 심도있게 살펴본즉'

섭리께서 두 분 백안불께 주신 메세지와,
그간의 마라-사탄과의 영적인 전쟁,
걸어온 길 등을 살펴볼 때,
제 마음에 충분히 공감되는 면이 많기에,

이렇게 이메일로라도
문안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

또한,
백화불께서 번역해 내놓으신
"밀라레빠의 십만송"이 제가 지금도
바로 옆에두고 애독하는 책인지라,
더더욱 신뢰가 가기도 합니다.

지금은 제가 여러모로 형편상
두분 부처님을 찾아뵙지 못하오나,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두 분 백안불과 '뜻깊은 인연'을
맺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는 아직 "法 身"을 증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오다가다 주워들은 바로,
사람과 만물속에 "법신불-하나님"이
상주하고 계시다는 것을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法身佛의 증득은
위대한 우주적 사건이니 만큼,

열심히 도 닦고 수행한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그런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오직
"신의 은총" 으로만 일어난다고 하던데,
과연 그것이 그러한지
궁금합니다..

백화도량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백화불의 사진이 몇장 올라와 잇더군요..

그 중 한장에서는,
백화불의 머리 주위로 말 그대로
"白華後光" 이
덩그러니 희미하게 비추었습니다.
(제가 잘못 본게 아니라면요...)

이런 저런 인연에 적잖이 치여봤고,
또 세상의 인연이란 것이
자신의 소중한 자유를 속박하는 면도 많기에,
가급적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고,

제가 뜻하고 바라는 영적인 수행이나 공부도
가급적 그 누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 나가려는 것이 제 스타일입니다.

법신불의 증득이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어차피 제가 갈고 닦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요,
열렬히 소망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오직, 신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것이라면,
굳이 거기에 목매여하며 그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마음에 들으면 다행이요,
눈 밖에 나면 어쩔 수없는 것이 겠지..
그런 마음이거든요..

그런데, 두 분 백안불과 좋은 인연을 맺고
이미 법신불을 증득하신 두 분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법신불 증득의 소망이
속히 이루어질 수 있지 않으까 하는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욕심이
구도자들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임을
잘 알지만,
전생부터 바래왔던 것이 그것이요,
생겨먹은 것이 이 모양이니
팔자려니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이 어리석은 중생의 바램이
백안불께서 보시기에 한심하다하여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아량으로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우리나라 산중에는
태백산을 가장 좋아하는데,
백화도량이 태백산에 있다하니,
반가울 따릅입니다.

나날이 神佛로서의 위상과,
하나님의 신적 창조력을 증폭시켜 나가시길
바라오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서울 우이동 보광사 아랫마을에서..

凡夫 박다함 合 掌




답 :

박 다함 님


메일(mail) 반갑게 받았습니다.
'진지한 구도자(求道者)'를 만난 기쁨으로
방명록에 '다함'님을 소개합니다.

우리 수행자(修行者)들에게도
'다함님의
진지(眞摯)한 구도 여정(求道 旅程)'이
인상적일 것 같군요.

미리 양해 없이 올린 것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


'다함님의
진지(眞摯)한 구도 여정(求道 旅程)'에
이제 '법신불(法身佛) 하느님'께서
응답해 주시길 축원(祝願)합니다.


다시는
'정도(正道)가 아닌, 길(道)을...
그 먼 길을 돌아돌아, 헤매고 헤매이어
실족(失足)하지 않도록,

이제
그 긴 방황(彷徨)을 끝내고
'진리(眞理)의 길(道)'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인도(引導)해 주시길
축원(祝願)합니다.


진리(眞理)와 지혜(智慧)를
갈구(渴求)해왔던,
타는듯한 갈증(渴症)을 굽어보시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진리(眞理)의 샘'을 발견하게 하시고...


'다함'이 '겨자씨'만한 믿음(信)'을 의지해
'진리(眞理)의 대해(大海)'에
들어 갈 수 있기를 축원(祝願)합니다.


'법신불(法身佛) 하느님'께
간절히 간구(墾求)하세요.


알아볼 수 있는
'지혜(智慧)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들을 수 있는
'겸허(謙虛)힌 귀'를 갖게 해달라고...

느낄수 있는
'신심(信心)의 심장'을 뛰게 해달라고...


그 모든 기도(祈禱)의 응답으로
'백천만겁 난조우(百千萬劫 難遭遇)'의
아름다운 기적(奇蹟)이
'다함'에게 일어나길 축원(祝願)합니다.



'깨달음의 빛'인 불광(佛光)을 통해
'다함'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인연(因緣)의 끈'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 비인 안나佛



<3>

안녕하세요..^^

"기적의 여정"은 모두다 정독했구요,
젊은 날의 유학 시절, 그 노신사와 의 대화
또한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짝사랑"이라고 말했을 때, 그 짝사랑은,
저의 神을 향한 짝사랑이 아니라,
저를 향한 神의 짝사랑을 말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마저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저 너머의 神을 사랑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 신께서 모든 인류와 생명들을 짝사랑하고 계시단걸
문득 알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 신성하고 영원불변하는 짝사랑이 저 자신에게..
그리고 이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人生 들에게,

전혀 -거의 와닿지도 않을뿐더러,
아무 소용도-의미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신께서는 그 본성이 충만한 사랑이시니,
그가 인류 하나하나를,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고 유일한 존재로,
오매불망 짝사랑 하신다해도,

인류의 작고 여린 가슴들은 그 너무 큰 사랑을
전혀 感知할 수가 없지요..

결국, 인류와 생명을 향한 신의 절대적인 사랑이.....
신 스스로의 본성일 뿐이요, 신성한 자기 만족에 불과하단
자괴감적인 생각도 해보았지요..

만일, 누군가 저를 지극히 사랑한다하면서,
그것도 전지전능하다고 하면서,
제가 미치도록 힘들고 여려울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사랑을 무어라 해야 할까요....?

만일, 제가 누군가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한다면,
제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아낌없이 주고도
부족한게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할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 살아가는 인생들의 현실을 보십시요...

신께서 사랑이라는 것을 순순히 수긍하고 인정하지만,
안타깝께도 그 무한한 사랑은 너무 고차원적이고
초월적인 사랑이라서 우리네 인생들의 슬픈 삶에는
아무 쓸모도 -소용도-가치도 없는 그런것에 불과하지요...

우주에는...다양한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도 있고, 들을 수없는 소리도 있지요..

분명히 소리로서 존재하기는 하되,
우리 귀가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 대역을 넘어선 소리들의 경우...
전혀 우리 인간들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와,
지구가 돌아가는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지고 있지만,
우리는 전혀 들을 수가 없지요...

그 너무 큰 소리가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대역을
훨씬 넘어 서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사랑 또한 그와 같은 것 아닐까요..

엄연히 존재하기는 하되, 우리의 작은 가슴은
전혀 느낄 수가 없는...

존재하되, 우리에겐 있으나 마나한 그런것이요..

너무 부정적이고 자조적인 슬픈 이야기인가요?
하지만, 저를 포함해,
거의 절대 다수 인간들의 입장이기도 하지요..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무한히 깊고 크신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그와 온전히 하나가 되기 위해선,
하나님이 인간으로 내려오던지
(아마 그래서 예수 께서 인간으로 오셨겠지요)

아니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차원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전자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요,
후자 또한 더더욱 어려운 일이지요....

노자가 도덕경에 이르길...,

天道無親
上德不仁

이라 했지요...

도덕경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한구절이네요..

그리고,죄송한 한 말씀을 드려야 겠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모세의 마법 지팡이라해도 ,
지팡이는 그저 지팡이에 불과합니다..

지팡이를 손에 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생겨버리지요..

전..
무소의 뿔이 되고 싶은
그런 미련한 영혼입니다..


제 영혼이 너무 메말랐지요..? -_-;;
아마 그래서 부처님들의 사랑이 필요한게 아닐런지...
워낙 제가 건조하게? 살아와서 그러니 양해바랍니다..



답 : <1>

박승수. 다함님

한동안은
박 승수님의 진지한 고민(?)이
지속될 것 같네요.^ ^*

수행(修行)의 과정 중,
같은 고민을 할 다른 수행자(修行者)들을
위해서도 이 답글을 씁니다.

우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석가 부처님의 말씀...

모든 수행자(修行者)가 가야 할
마지막 정점(頂點)의 여정(旅程) 입니다.

하지만 간과(看過)한 것이 있군요.

석가 부처님께서도
그 수행 과정(修行過程)에서
3명의 스승을 거쳤지요.

고행(苦行)을 통해,
사후(死後)에
천상계(天上界)의 복락(福樂)을
누릴 수 있다는
외도(外道) 스승의 가르침이
잘못됐다는 걸 아시고 떠났고,

두 번째 스승은
300명의 제자를 거느린
'아라다 까라마'였는데,
그 스승으로부터
무색계(無色界)의 3번째 선정(禪定)에
해당하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증득(證得)했으며

세 번째 스승은
'우드라까 라마푸뜨' 인데,
그 스승으로부터
무색계(無色界)의 4번째 선정(禪定)에
해당하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증득(證得)하였습니다.

이도
최상(最上)의 도(道)가 아님을 알아
홀로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증득(證得)하였습니다.


도(道)의 여정(旅程)을
산(山)을 오르는 과정(過程)으로
쉽게 풀어 볼까요.^ ^*

한번도 올라 본 적이 없는
가장 높고 위대한 산(山)을 오르기로 한
클라이머(climber)가 있다고 해요.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노련한 클라이머(climber)일수록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모든 도움을 다 받을 것입니다.

산 아래 사는 원주민에게 길을 묻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도 할 것입니다.

지도와 나침반,
이정표를 보고 길을 잃지않도록 참고 할 것이고
눈 속에 파묻힌 크레바스(crevasse)의
위험이나 장애물을 탐지하기 위해,
빙벽(氷壁)을 오르기 위해
등산용 지팡이에 의지할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그 산(山)을
성공적으로 등정하였고,
그 산(山)에 대해 충분한 지식(知識)과
지견(知見)을 가진 노련하고 지혜로운
클라이머(climber)가 있다면,

그의 조언(助言)과 노하우(know.how)는
결정적인 소중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관념(觀念)이나, 단순 이론(理論)이 아닌,
그의 살아있는 풍부한 경험으로 부터 나오는
소중한 정보일테니까요.


신중하고도
노련한 클라이머(climber)들은
이렇게 할 것입니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
성취(成就)의 기쁨을 누리기위해,
자신의 생명(生明)을 보존(保全)하기 위해...

하산시(下山時)
이정표와 지팡이를 이용해
무사히 귀환(歸還)했다면
그 지팡이를 부수어 땔감으로 쓰던, 버리던,
보관해 두었다 혹 다시 산을 오를 때 사용하던
그건 그의 선택이겠지요.

단, 이 모든 것들을 갖추었고,
함께 산(山)을 오를 동료가 있다 하더라도
정상(頂上)을 밟는다는 것은
자신과의 고독(孤獨)한 투쟁(鬪爭)이겠지요.

눈에 보이는 산(山)을 오르려해도
이런 철저한 준비와 도움이 필요하지요.

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장 높은 산(山)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산(山)에
닿기 위해서라면?......

이해가 되었나요? ^ ^*




답 : <2>

박승수. 다함님

두번째 질문인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관한
질문에 답입니다.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수행의 과정에서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접하긴 하는 데...

높은 도(道)가 있을 거라
잘못 인식하는 수행자(修行者)가 많아서
공개적으로 설(說)하는 것이
논쟁(論爭)을 부를 수도 있겠으나,

진리(眞理)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다함님이
인용한 구절을 통해
그 실체를 밝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天道無親 上德不仁

직역(直譯)을 하자면

'하늘의 도(道)는 친애(親愛)함이 없고,
최상의 덕(德)은 인(仁)이 아니다 '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허울은 도(道)와 덕(德)을 차용했지만,

그 가르침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므로,
도(道)와 덕(德)을 닦지 말고,

교변(狡辯)으로 위장(僞裝)되어 있으나

'무위도식(無爲徒食)'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참고로
성경 말씀처럼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했듯

노자의 일생(一生)을 보더라도

도서관의 수장관(守藏官)을 하며,
많은 책들을 접할 기회는 있었겠지만,
제자 한명 없이 머리만 굴리다...
제 몸 하나 추스리기도 버거웠던 인물입니다.

섭리(攝理 Providence)에 속한
참 '道德經(도덕경)'이라면

도(道)와 덕(德)을 닦고 닦고, 또 닦아
대정진(大精進)하도록 가르쳤을 것입니다.


유교(儒敎)의 공자님도 인(仁)을,

불교(佛敎)의 석가 부처님도 자비(慈悲)를

선교(仙敎 :천주교&기독교)의 예수님도
사랑(慈愛)을 가르치셨고,

그 가르침대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天道無親

이 역시
단견(短見)이고 편견(偏見)입니다.

천도(天道)는
무친(無親)하지만 또한 유친(有親)합니다.

天道無親 而天道有親 이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도(天道)는
본체(本體)로 볼 때는,


성경(聖經 Bible)적 표현으로는
창세기(Genesis)에

하느님 자신을
'나는 나다(I AM I )'라 표현되며,


불경(佛經 Sutra)에는
'공(空 Sunya)', '공성(空性 Sunyata)'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무친(無親)하지만,

작용(作用)으로 보면
모든 중생(衆生)들, 만물(萬物)에
항상 작용(作用)하기 때문에
유친(有親)합니다.

창조주(創造主) 하느님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의
섭리(攝理 Providence)가

사랑과 자비(慈悲),
인(仁)으로 작용(作用)하는 것입니다.


上德不仁

상덕(上德)은 上.中.下에서
상(上)에 해당하는 최상(最上)의 덕(德)인데

이런 상덕(上德)을 지닌 사람은
'동체 대비심(同體 大悲心)'을 지니게 됩니다.


'동체 대비심(同體 大悲心)'이란

우주 삼라만상(宇宙 森羅萬象),
모든 피조물(被造物)은

본질적(本質的)으로 하나의 몸이므로,


이를 증득(證得)하여 깨닫게 되면

한없는 자비심(慈悲心),
무한(無限)한 사랑과 연민(憐憫)의 정(情)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석가 부처님과 제불 보살(諸佛菩薩)들이
깨달은 '동체 대비심(同體 大悲心)'입니다.


따라서
불인(不仁)이 아니라
'인(仁 Agape 사랑)'을 하게 됩니다.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을 지니게 됩니다.



'법신불(法身佛) 하느님'의
본질(本質)은
'인(仁), 사랑(Love), 자비(慈悲)'이며
'지혜(智慧 Wisdom), 진리(眞理 Truth)입니다Annabul

불인(不仁)하는 자를
상덕(上德)이라 한다면

혹세무민자(惑世誣民者)의
교활(狡猾)한 궤변(詭辯)에 불과(不過)한 것입니다.


성경(聖經 Bible)은
사랑에 관해
아름다운 표현을 해 놓았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요한 1서 3 : 14

   Anyone who does not love
   remains in death.

   1 John 3 : 14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요한 1서 4 : 7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1 John 4 : 7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4 : 8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1 John 4 : 8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 : 12

 'If we love one another,
  God lives in us and His Love is
  made complete in us.'

   1 John 4 : 12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한 1서 4 : 16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1 John 4 : 16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읍니다.

  완전(完全)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요한 1서 4 : 18

  There is no fear ln love.
  But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1 John 4 : 18


♡ 비인 안나불

 

출처: 안나불 미니홈피 '백화문답(白華門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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